망고 맛을 잊지 못한다. 동남아로 여행 갈 때마다 한 바구니씩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매일 몇 개씩 잘라먹는다. 나무에서 막 따서 파는 노란 망고는 자르는 순간 노란 주스가 흘러내린다. 그 달콤함은 국내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맛이다. 국내 수입 망고는 덜 익은 푸른 망고가 수송 기간 동안 숙성된 것이다. 그래서 현지의 망고에 비해 수입된 후숙 망고는 맛이 많이 떨어진다. 물론 동남아 현지에서도 그린 망고를 먹는다. 깎아서 소금에 찍어 먹으면 제법 싱그러운 맛이 난다. 그린 망고를 얼음과 같이 갈아 주스로도 먹는다. 새콤달콤한 맛이 골프치다 그늘집에서 마시면 그만이다.
지난여름엔 애플망고로 행복했다. 친구 집에 머물면서 마이애미 뜨거운 햇빛 속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친구 어머니는 애플 망고가 가득 든 바구니가 거실에 놓아두셨다. 수시로 거실을 오고 가면서 잘 익은 애플망고를 잘라 노란 속살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어머니는 매일 망고주스를 내주셨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쯤 그 많던 망고를 담은 바구니가 바닥을 보였다. 원 없이 먹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오랫동안 애플망고의 달콤한 맛이 입에 남아 있었다. 국내에서는 망고를 사 먹지 않는다. 수입한 후숙 망고로 내 입이 기억하고 있는 망고 본래의 달콤하고 향긋한 맛을 망치기 싫기 때문이다.
집에서 즐겨 먹는 과일은 사과다. 어릴 적엔 새콤달콤한 홍옥과 단단하고 단맛이 강한 국광을 먹었다. 고등학생 시절 이후부터 후지 사과를 먹어 온 것 같다. 요즘은 홍옥과 국광 품종은 거의 사라진 듯하고 후지사과가 주종을 이룬다. 후지사과가 오랫동안 보관도 할 수 있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후지사과는 이름에 들어간 일본어에 거부감이 있어 부사라고 불러지기 시작했다.
정년퇴직 후 누이 부부가 고향 문경으로 귀향하여 사과 과수원을 한다. 사과농사에는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는 이른 봄부터 수확하는 늦가을까지 수 십 번의 일손이 들어가야 한다. 어설프지만 사과꽃을 따내는 때와 사과를 수확할 때 일손을 보탠다. 가끔씩 하는 일이라 재미난다. 정이 많은 누이는 집에 사과가 떨어질 때가 되면 사과 한 박스씩 자주 보내준다. 여름에 먹는 푸른 아오리, 이른 가을엔 홍로, 중 가을엔 감홍, 늦가을엔 미얀마와 일반 부사를 택배로 보내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직접 마트에서 사 먹을 때보다 사과를 덜 먹는 것 같다. 사과가 냉장실 가득 보관되어 있어 보는 것으로도 흡족히 맛을 즐길 수 있나 보다.
누이가 보낸 사과를 택배로 받는 날엔 냉장실에 남은 사과로 사과칩을 만든다. 껍질을 깎아내고 0.5 ~ 1 Cm 두께로 잘라 건조기에 넣는다. 70도 온도로 이틀을 말리면 수분이 모두 달아난다. 당도가 높은 사과칩이 된다. 과자처럼 간식으로 먹으면 좋다.
사과잼도 만들어 보았다. 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돌아오는 길에 누이가 주는 사과를 냉장실에 넣으려고 보니 사과가 많이 남아 있었다. 단맛이 강한 여러 개의 감홍이 썩어 있었다. 썩은 부분을 도려나고 작은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 약한 불위에 올려놓았다. 깍둑 사과 위에 누런 설탕을 수북이 붓고 뚜껑을 닫아 중불 위에 한 30분을 둔다. 사과에서 물이 배어 나와 끓기 시작한다. 숟가락으로 저어 익지 않은 사과를 냄비 아랫부분으로 밀어 넣는다. 이때쯤에 계피 가루 한 숟가락 넣으면 향긋하고 맛 좋은 사과잼을 얻을 수 있다. 제법 흥건한 사과즙 위에 깍둑 사과가 둥둥 떠서 끓고 있으면 뚜껑을 열어 둔다. 눍지 않도록 숟가락으로 휘휘 젖는다. 사과즙이 졸아 들고 깍둑 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면 쨈이 완성된 것이다. 사과잼의 당도는 취향에 따라 설탕량을 조정하면 된다. 식빵 위에 쨈을 올려 먹어 보니 맛이 좋았다. 사과는 당도가 높은 편이니 맛을 봐가면서 설탕량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비빔밥 위에 얹는 고추장을 만들 때 설탕 대신 사과잼을 넣었더니 감칠맛이 흘씬 더해졌다. 특히 계피 향이 입맛을 돋군다.
사과의 또 다른 쓰임새는 풋사과로 액기스를 내는 것이다. 꽃 핀 지 65일째 되는 사과는 시고 떫은맛이 강하지만 비타민과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 플로리진 함량이 높다. 덕분에 노화방지, 체중감량, 변비, 피부와 혈관 건강에 좋다고 하니 풋사과를 먹어 볼 만하다. 초여름에 수확한 풋사과는 보관하기 어려우니 액기스를 내는 것이 좋다. 누이에게 부탁했더니 풋사과 액기스를 담아 한 병 주었다. 최근 운동부족으로 늘어난 체중 감소에 효과가 있으려나? 매일 한 컵씩 마셔 보리라.
사과는 식후에 깎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과수원을 하는 누이 덕분에 사과를 이렇게 저렇게 먹는 방법을 달리해 보았다. 싱그러운 사과를 깎아 먹거나 유기농 사과를 껍질채 먹는 것도 좋지만, 말려서 칩을 만들거나 쨈을 만들어 먹는 것도 별미다. 건강과 미용을 위해서 이른 여름에 떪은 풋사과를 먹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