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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May 24. 2020

어머니가 차려 주신 봄나물 비빔밥

지난 3월, 어머니가 계시는 함창에서 가까운 예천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홀로 계신 어머니가 걱정되어 미리 사둔 마스크를 들고 고향을 방문했다. '나가마시고 집에만 계셔라', '나가실 때 꼭 마스크를 써야 하신다'라고 당부 당부하고 돌아왔다. 그 후 직접 찾아뵙지는 못하고 전화로만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그냥 집에 꼼짝도 않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들만 조심하면 된다'라고 하셨다.


올해 87세이신 어머니는 동네 노인회관에서 총무 일를 맡고 계신다.  한 달에 만원씩 회비를 받아 마련하는 공동자금을 관리하신다. 생선이나 육고기, 야채 등을 시장 봐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저녁을 해 드시고 늦게까지 노시다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한 달에 한두 번 생신을 맞이 하시는 어르신이 한턱을 내서 건하게 외식을 할 때도 있고, 가끔씩 찾아오는 자식들도 어르신들을 식당으로 초대하거나 치킨이나 과일 등을 보내 주기도 다. 그때마다 '내 자식이 잘 났다'느니, '어느 집 자식이 무엇을 해 줬다'느니 자랑과 얘깃거리가 넘쳐 다. 노인회관은 어르신들이 시간 보내기에는 최고의 장소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와 윷놀이나 십 원짜리 내기 화투 치는 재미로 한 나절을 보내셨다. 그 덕분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적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도하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어머니는 성당에 참석하셨다. 내 어릴 적 할머니께서 잠시 성당을 나가셨는데, 어머니도 그 연세에 이르시니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셨다. '당신 사후가 걱정되어 자리를 마련하시는구나' 싶었다. 언젠가 고향을 찾았을 때 안방 머리맡에 십자가와 마리아 상이 안수례 받던 날 신부님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놓여 있었다. '잘 결정하셨다'라고 공감을 표시해 드렸다. 시골에 홀로 계셔서 걱정이 많은데 어머니를 보살피고 신경 써 줄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찬성을 했다.  


전국을 얼어붙게 한 코로나는 어머니의 생활 반경도 위축시켰다. 어머니 일상의 중심지인 마을회관과 성당이 문을 닫았다. 어머니는 갈 곳 없어 집에만 갇혀 지내실 수밖에 없었다. 거실과 안방에 TV를 크게 켜놓고 자식들이 보내 준 사과나 석류를 쪼개 먹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어머니는 가끔씩 동네 어귀로 홀로 봄나물을 뜯으러 나가셨다. 코로나로 답답해진 생활에서 벗어날 기회를 찾으신 것이다. 어린 쑥은 된장국을 끓어 당신이 드셨다. 날이 따스해지면서 거세진 쑥을 뜨거운 물에 데쳐 냉동실에 보관해 두신다. 자식들이 가면 얼려놓은 쑥 뭉치를 몇 개씩 꺼내 들려주신다.


4월 말 석가 탄신일, 노동절과 어린이 날로 이어지는 긴 연휴를 맞아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를 뵈로 고향을 찾아가기로 했다. 함께 가기로 한 아내는 중학생 온라인 학습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고향을 방문할 수 없다고 해서 아침 일찍 나만 홀로 차를 몰고 고향으로 향했다. 갑갑하게 혼자 집에만 계셨던 어머니가 객지에서 온 아들을 반갑게 맞이 해 주셨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었다. 부추김치, 더덕구이, 땅콩조림, 배추전과 애호박전과 된장찌개... 어릴 때 먹던 반찬과 먹는 아침밥은 배가 부른데도 계속 더 먹게 된다. 식사 후 어머니는 봄 내내 뜯어 데쳐놓은 쑥 뭉치와 물에 불린 쌀을 큰 대야에 담고서 떡 방앗간에 가시겠다며 집을 나서셨다. 꽤 부피가 나가고 상당한 무게로 느껴져 내가 들겠다며 함께 따라갔다. 이미 방앗간에는 여러 분의 아주머니들이 떡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계셨다. 다들 연휴라 고향을 찾는 자식들에게 나눠 줄 떡을 하러 오신 모양이다. 차례가 되어 쑥절편이 기계에서 길게 빚어져 내려왔다. 절편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 대야에 옮겨 담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대접에 참기름을 붓어 절편에 참기름을 발랐다. 참기름은 떡이 서로 붙는 것을 막아 줄 뿐 아니라 떡 맛을 고소하게 한다. 냄새조차 향기롭게 만든다. 옆에서 절편 한 줄 집어 입에 넣으니 쑥떡이 찰지고 감미로웠다.


오후에 대전에 사는 형님이 도착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문경에 사는 누이 집으로 출발했다. 자형이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한 후, 누이는 자형의 고향인 문경으로 내려와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편히 살림만 꾸려왔던 서울내기가 과수원의 그 많은 일을 다 감당해 내는 것이 신기하다. 닥치면 다 해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지 모르겠지만 고된 일을 하는 누이가 안쓰럽다. 나는 가끔 시간을 내어 문경으로 내려와 일손을 돕는다.

고사리, 머위, 취나물, 산미나리

문경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산에 봄나물 뜯으러 가자고 재촉하셨다. 우리는 송이버섯이 나는 누이네 소유의 뒷산 아래에서 두 패로 나눠 어머니와 형수는 산 아래에서 봄나물을 채취하고, 형과 나는 산 허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고사리를 꺾기로 했다. 고사리는 땅에서 순이 올라와 잎이 피기 전,  줄기 끝이 돌돌 말릴 때 꺾어야 한다. 이때 줄기가 가장 통통하고 부드러워 맛이 좋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고사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름 요령이 있다. 지난해 활짝 자라 말라버린 고사리밥을 먼저 찾고, 그 자리 인근에서 바닥을 세밀히 살펴보면 된다. 그 인근 여기저기에서 고사리의 새순이 고개를 내밀기 마련이다.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은 꺾고 또 꺾고, 다시 뒤를 살펴보면 그 자리에 또 고사리가 솟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가 아침나절에 산을 먼저 올랐는지 군데군데 고사리가 꺾여나갔고  대궁에 진물이 맺혀 있었다. 결국 한 움큼 고사리를 꺾고 난 후 산 아래로 내려와 어머니와 합류했다. 함께 취나물과 산미나리를 채취했다. 비탈진 곳에 자라는 두릅을 등산지팡이로 잡아당겨 꺾기도 했다. 봄나물 한 자루 가득 채취하여 누이 집으로 돌아왔다. 형수가 채집한 산나물을 다듬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담장 아래 옹기종기 파랗게 피어 오른 돌나물을 채취해 오셨다. 집 뒤켠에서 자라고 있는 두릅과 엄나무 순, 머위 순에 어머니의 눈길이 머무는 순간, '아침에 따놓은 거 많으니 따지 말라'라고 누이가 말렸다. 순간 어머니의 눈빛에는 실망감이 스쳐갔다.               


누이는 끓는 물에 소금을 한 움큼 넣고 휘저은 후, 채취해 온 두릅, 취나물과 산미나리를 데쳤다. 나물 빛깔을 더 푸르고 곱게 해 주기 때문에 나물 데칠 때 소금을 넣는 것은 필수다. 다음 순서로 고사리를 데쳤다. 고사리는 푹 무를 때까지 데쳐야 한다. 아니 삶는다는 표현이 맞다. 오래 삶아야 부드러워지고 고사리 제 맛을 즐길 수 있다. 살짝 데쳤다가는 질기고 뻣뻣한 고사리가 씹히지가 않아 입안에 남아 있게 된다. 더러는 맛이 없다고 뱉어버리기도 한다. 고사리 탓이 아니라 사람들이 고사리 데치는 법을 몰라 발생하는 경우다. 고사리는 한참을 삶은 후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물에 담가 두어야 한다.             

돌나물 고추장 초무침과 물김치

누이가 산나물을 데치는 동안 어머니는 수도꼭지를 약하게 털어놓고 돌나물을 흐르는 물에 씻고 소금을 살짝 뿌려 숨을 죽인 다음, 물끼를 빼기 위해 채반에 받쳐 두셨다. 돌나물은 워낙 약하고 부드러워 살살 다루지 않으면 짓이겨져 풋냄새가 나기 때문에 애기처럼 살살 다루어야 한다. 어머니는 바로 먹을 수 있는 돌나물 물김치를 담글 작정이셨다. 어머니의 레시피는 간단하다. 찹쌀가루를 풀어 묽게 죽을 끓여 식힌 후, 멸치∙디포리∙다시마∙무와 양파로 넣어 뽑은 육수와 섞고 물을 추가한다. 찹쌀죽과 육수를 섞어 만든 국물에, 고춧가루와 약간의 청양 고춧가루에 신 김치 국물을 부어 불려 놓은 양념을 베보자기에 싸서 넣고 조물조물 풀어 준다. 연한 주홍빛을 띈 김치 국물에 돌나물과 미나리, 얇게 쓴 양파를 넣는다. 소금과 매실청을 조금씩 넣어가며 간을 맞춘다. 짜면 안 된다. 약간 심심하고 간간하게 맞춘다. 그리고 돌나물 물김치의 풍미를 돋우기 위해 믹서로 간 마늘과 양파. 사과와 배 즙을 마지막으로 넣는다. 신김치 국물을 넣어 바로 먹어도 새콤하고 맛이 싱그러워 입맛이 되살아 난다.


어머니가 팔을 걷어 부치고 봄나물을 요리하셨다. 누이가 데쳐놓은 취나물을 찬물에 한번 헹구어 낸 뒤 물기를 적당히 짜 낸다. 물기를 꼭 짜면 맛이 없다고 하셨다. 취나물 줄기가 굵은 것들은 마늘 찧는 망치로 한번 살살 쳐 준다. 그러면 방금 채취한 나물이라 취향기가 올라와 맛을 더 좋게 한다. 된장∙고추장∙깨소금∙다진 마늘과 약간의 매실청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준다. 어머니는 소금 간을 하지 않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소금은 물이 생겨서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넣고 버무린다. 취나물 향기를 즐기려면 참기름을 적게 넣어야 하지만 우리 가족은 입맛으로 취나물 향기를 즐기는 편이다. 산미나리도 같은 방법으로 무친다. 같은 양념으로 버무린다고 하더라도 산미나리는 취나물과 다른 독특한 향기와 맛이 난다. 나물 주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이 다른 나물 맛과 차별화한다.

다래순 덩굴과 다래순 복음. 취나물과 된장 취나물 무침

이때 누이는 작년에 따서 냉장고에 챙겨 두었던 다래순을 꺼냈다. 경북에서는 다래순을 봄나물 중 으뜸으로 친다. 그만치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 4월 중 하순에 동로 높은 산에 올라 치렁치렁 널려진 다래 덩굴을 찾는다. 파릇한 새싹이 돋은 다래 능쿨을 당겨 가지 중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면 손하나 가득 다래순이 뜯겨진다. 그래서 다래순은 다른 봄나물과 달리 채취하기가 쉬운 편이다. 운 좋게 다래 군락지를 발견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다래순을 자루 한 가득 딸 수 있다. 그렇게 채취한 것을 끓는 물에 데치고 봄 햇볕에 말려 묵나물로 준비한 다래순을 누이가 꺼내 놓은 것이다. 어머니는 마른 다래순을 미지근함 물에 담가 불리셨다. 불린 물과 함께 냄비에 담고 소금을 살짝 넣어 삶는다. 물이 끓어오르면 다래순을 꺼내 찬물에 헹군다. 물기를 꽉 짠 후 팬에 넣고 다진 마늘과 깨소금을 넣고 들기름에 볶다가 약간의 매실청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신다. 멸치 육수를 조금 붓어 자작하게 맞춘 뒤 뚜껑을 덮어 몇 분 동안 익힌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볶은 통깨를 뿌려 잔열에 볶아 맛있는 다래순 볶음을 완성하셨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강된장을 만드셨다. '된장이 맛있으면 그 집 인심도 후하다'라고 하는데 어머니가 만드는 된장은 빛깔도 노랗고 맛도 좋다. 당신이 직접 콩을 삶고 메주를 띄워 만든 된장을 들기름에 달달 볶다가 똥 발라 바싹 말린 멸치를 빻아 만든 당신의 특제 조미료를 넣고 쌀뜨물을 붓고 오랫동안 끓이셨다. 양파와 버섯, 무와 애호박을 잘게 깍둑 썰어 넣고, 다진 마늘과 약간의 고춧가루를 넣고 끓여내어 맛있는 강된장을 완성하셨다.

엄나무 순과 두릅.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봄을 그대로 먹는 기분이 든다.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 간 음식이 하나 둘 완성되는 것을 돕던 누이가 상을 차렸다. 살짝 데친 두릅과 엄나물 순이 나오고, 고추장∙참기름∙통깨∙매실액∙간장과 식초로 무쳐 낸 돌나물 고추장 무침이 식욕을 돋웠다. 누이가 올해 초봄에 간장∙식초∙설탕물에 담근 머위장아찌가 쌉쌀하고 사각거리는  식감 좋은 맛으로 종 쟁이 그릇에 담겨 있다. 어머니가 손수 준비한 취나물∙산미나리∙다래순이 대접에서 식구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상 가운데 팔팔 끓는 강된장이 자리 잡음으로써 식사 준비가 끝났다. 큰 대접에 밥을 조금 떠서 가족이 둘러 아 식사를 한다. 먼저 돌나물 물김치로 입을 적신 후 취나물과 다래순을 집어 맛을 본다. 입 하나 가득 봄나물 향기가 넘친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두릅은 알싸한 맛을 내고 사각거리는 식감이 좋다. 그리고 밥이 조금 남은 대접 그릇에 다래순∙취나물∙산미나리와 잘게 쓴 두릅을 넣고 강된장을 떠 넣은 후, 참기름 한 숟가락 붓고 밥과 나물을 섞어가며 비볐다. 밥보다 봄나물이 흘씬 많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연휴를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산과 들에 나아가 봄나물을 채취했다.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당신의 솜씨를 발휘하여 가족이 둘러앉아 봄나물 비빔밥을 나눠 먹었다. 어머니가 해 주신 봄나물 비빔밥은 그 맛이 꿀맛이었다. 내 어릴 적에 먹던 바로 그 맛이다. 잊지 못할 맛이다.


올해 87세. 연세가 높으시고, 몇 해전에 다치신 곳이 아파서 자주 허리를 펴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또 언제 함께 봄나물을 채취하러 갈 수 있을까? 당신이 직접 뜯은 봄나물을 무치고 볶아 준비하신 비빔밥을 다시 함께 둘러앉아 먹을 수 있을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슬픈 감정이 일었다.


전국을 마비시킨 코로나가 맹위를 떨칠 때,  우리 가족은 함께 모였다. 어머니의 맛있는 봄나물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참으로 귀하고 즐거운 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어머니가 내내 건강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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