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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31. 2020

운남성 여강, 옥룡설산에서 펼쳐진 인상여강쇼

중국, 리장 대리 여행 셋째 날

식사를 위해 호텔 내 식당으로 가기 위해 아침 산책을 했다. 어제 저녁에 인터콘티넨탈 특급 호텔에 도착했다. 배정받은 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카트를 타고 가야 했다. 카트를 청하고  기다리는 것이 귀찮아 산책하듯 걸었다. 아침식사는 융숭했다. 저녁 뷔페 메뉴같이 각종 음식이 풍성히 차려져 있었다. 몇 명 주방보조들이 과일을 자르고 쌀국수를 말아 주었다. 크고  넓지만 정갈한 식당에 앉아 여러 가지 음식을 즐겼다.             

호텔 룸 배치도

방으로 돌아와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시 나가서 호텔 여기저리를 산책하며 사진을 찍었다. 50층 고층빌딩을 자랑하는 소피텔과 같은 여타의 호텔과 달리 인터콘티넨탈은 넓은 호텔 구역을 여러 블락으로 구분하여 리조트 형식으로 룸을 배치했다. 4개의 룸을 가진 2층 집들 사이를 정원으로 꾸몄다. 2층 집과 정원은 독립된 하나의 별장과 비슷했다. 룸도 넓고 티 나지 않는 장식, 침대는 아늑해서  편히 잠자기에 최적이었다.


소수민족은 복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검은 옷을 즐겨 입는 장족, 흰옷에 둥근 모자를 쓰는 백족. 리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시족의  여자는 보름달을 상징하는 장식을 이마에 달고, 등에는 북두칠성이 수 놓인 복장을 두른다. 나시족 여자들은 별이 뜨는 새벽에 일어나서 달이 뜨는 밤늦게 까지 일을 한다는 피성대월의 삶을 살고 있다. 나시족은 모계 중심 사회로 여자들은 끝없이 일하고 남자들은 한가하게 빈둥거린다. 물론 남자는 집안내에서 발언권도 약하고 중요 결정은 반드시 아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시 사회는 여자의 천하, 남자의 천당이라고 한다. 나도 나시족 남자로 태어났으면 빈둥거리며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나시족의 성지인 만년설을 즐길 수 있는 옥룡설산을 가기 위해 호텔에서 8시에 출발했다.
                      

나시족에게 설산은 특별하다. 나시족은 자유연애를 선호한다. 그러나 결혼만은 반드시 부모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자유연애로 사귄 애인을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과감히 동반 자결을 한다. 설산 위에는 운삼평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결혼 승인받지 못한 연인들이 자살 후 옥룡 삼국이라는 다음  세계에서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전설이 담긴 곳이다. 운삼평은 옥룡 삼국으로 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알려져  이곳에서 자살하는 커플이 많다고 한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설산을 오르는 입구는 안개로 자욱하다. 고산이라 추위를 막기 위해 파카를 빌려 입었다. 산소통을 옆에 끼고 케이블카를 타고 가파른 산등성이를 올랐다. 3km나 되는 거리를 빠르게 올라가는 케이블카 안에서도 숨이 가빠져 여러 번 산소를 흡입해야 했다.            

해발 4,550미터에서 케이블 카를 내렸다. 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후달리는 고산병 증세는 없었으나 자주 산소통으로 공기를 흡입했다. 접근이 가능한 4,680미터 고지를 오르는 동안 다리가 휘청거리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산소를 흡입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겨우 130미터를 오르는데도 여러 번 멈춰 휴식을 취하여야 했다. 전문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하루 200, 300미터 밖에 전진할 수 없는 경우는 어렴풋이 이해할 듯하다. 옥룡설산 4,680미터 이정표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왔던 길로 하산했다.

점심  식사로 먹은 토종 오골계탕은 육질이 쫄깃거리고 맛이 구수했다. 중국 닭에 토종이란 단어를 붙이니 조금 이상하다. 중국은 매 끼니마다 국물이 있는 탕이 나오는데 어제 저녁엔 야크 샤부샤부를 먹었다.


설산 옆 대규모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아침부터 계속된 비가 내리는 중에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여강쇼'를 보았다. 수십 마리의 말과 500여 명의 나시족 주민들이 마방으로서의 고단한 삶을 재현하고, 사랑에  실패하여 자살하러 떠나는 여자를 전송하는 전설 등을 보여 주었다. 대서사극에서 나온 문장 몇 개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신의 자손이다'. '우리는 바람의 형제이다'. '인생을 즐기자'. '술이 없으면 어찌 친구를 청하여 함께 즐길 수 있겠는가?'



설산을 내려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나시족의 동파 문화 유적지를 방문했다. 나시족은 동파 종교를 통해 불교와 자연의 신을 포함하여 만신을 믿는다. 놀라운 것은 나시족 기념관에서 다수의 소수 종족의 상형문자가 진열되어 있고, 지금도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갑골문자 하나만 있는 것으로 알아 왔던 상식의 틀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종족마다 문자가 있어 그들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다만 중국이란 강대국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고 언어 통합정책에 의해 그들 고유의 문자 사용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공식적 문자로 사용은 못하더라도 축원문과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윈난 성 거리의 대자보에서 그들의  상형문자는 여전히 살아남아 버젓이 사용되고 있었다.

삼겹살로 저녁식사를 하고 짧은 시간에 여강고성의 야경을 둘러보았다. 낮과 달리 현란한 조명과 노래와 춤이 고성의 밤거리를 메꾸고 있었다. 이탈을 즐기려 모이는 자본주의에 물든 중국인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다음날 곤명에서의 일정을 위해 밤 11시 반 비행기로 여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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