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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Dec 11. 2020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뭉크를 만나다.

2017년 5월 러시아, 북유럽 여행(4)

스톡홀름 관광을 마치고 DFDS 크루즈를 타고 '북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노르웨이로 향했다. 노르웨이인은 금발, 파란 눈, 흰 피부색을 가진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게르만족이다. 과거에는 경작지가 국토의 3%에 불과해서 늘 굶주린 생활을 해 왔다. 5개월의 긴 흑야의 겨울로 인한 일조량이 절대 부족한 쓸쓸하고 외롭고 우울한 국가였다.  그렇게 어렵게 살다가, 지금은 세계 3대 유전이라는 대규모의 북해 유전이 발견됨으로써 국민소득 세계 1위의 복지국가가 되어 잘 살고 있다.

'하나님의 푸른 초원'이라는 의미의 수도 오슬로는 인구 50만의 항구도시이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 뭉크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뭉크는 1943년 유언을 통해 그의 모든 작품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였다. 뭉크 탄생 100 주년 기념으로 건립된 시립 뭉크 개인 박물관에는 유화, 판화, 조각 등 그의 작품 1,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작 '절규'는 그의 나이 30살부터 8년에 걸쳐 유화, 파스텔화, 판화, 텐프라 등 4개 작품을 시리즈로 남긴 것이다. 이 중 파스텔화 절규는 미국에서 한 개인 소장가에게 경매 단가 1,335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가격에 팔렸다.

'노르웨이의 모든 것을 한 작품에 담았다'는 '절규'에서 뭉크는 그림 상단에 붉은색으로  밤늦도록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표현했다. 그림 중간에 흰색으로 빙하의 피오르드와 긴 겨울철을,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한 노르웨이 오슬로의 생활을 감청색과 녹색으로, 자신의 깊은 우울을 흠칫 놀라는 자아로 표현했다. 대학시절 다방에 걸린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난 '경악'이라고 이름 붙이고 '어떠한 행위가 저토록 스스로를 놀라게 만들까?'라고 고민했다. '되돌아봐서 놀라지 않는 삶을 살자'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여, 이 작품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뭉크가 살아온 고독하고 쓸쓸한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자 친구가 모델이 된 마돈나 등 뭉크의 많은 작품에서 우울과 고독과 심지어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를 짙게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판화작품과 여섯 점밖에 되지 않는 조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특별했다.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의 650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10만 평 규모의 비게란 조각공원에 방문했다. 비겔란(1869 ~ 1943)은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조각가로 청동, 대리석, 화강암을 소재로 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걸작 중 가장 큰 작품인 '모놀리텐' 화강암 조각품은 16.4m의 한 덩어리 화강암에 3명의 석공이 14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각 조각상마다 인생의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인생의 지혜를 배워가고, 다시 찾아와서 인생의 의미를 곱씹는다.

조각 탑에는 정상을 향해 안간힘을 쓰며 기어오르는 남녀 121명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The Wheel of Life' 조각품의 원의 형상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의미와 사후의 윤회,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삶에 대한 의미를 함축하여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인간의 삶, 공존, 윤회는 이 조각공원 전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The Wheel of Life. 4명의 성인과 2명의 어린이가 고리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조각상들은 인생의 긴 여정을 지혜와 교훈으로 쉽게 표현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를 들어보면 여자는 자기를 이해하는 남자를 선호하지만, 남자는 당당하고 목소리 큰 여자보다는 순종하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설명한 조각상이 있다. 그는 조각상을 통해 여자가 사랑받을 수 있는 지혜를 전달하고 있다.

공원 정문 앞에도 많은 작품이 나열되어 있다. 그중 남녀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역경과 유혹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교훈을 주는 작품이 있다. 뱀 또는 용을 악의 화신을 표시하면서 남자는 역경과 유혹이 닥쳐왔을 때 강하게 버텨내야 하는데, 굴복하면 악과 더불어 사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고, 여자는 옷을 벗어던지고 유혹에 물들거나 정숙하게 의연히 물려 치는 경우가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왕궁, 대학교, 행정관청이 있는 오슬로의 대표적인 번화가와 중심지인 칼 요한슨 거리에 시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1901년부터 매년 12월 10일에 노벨 평화상이 주어지는데, 노르웨이가 아닌 도시가 주관하여 노벨상을 주는 것이 특이했다. 알고 보니 막대한 재산을 남겨 자신 이름의 상을 제정한 노벨이 평화상만은 잦은 폭력과 시위가 발생하는 스웨덴 스톡홀름이 아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상하자고 제의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1901년부터 이곳에서 수상해 오다가, 1905년에 노르웨이가 스웨덴 연방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후에도 전통에 따라 오스로 시청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노르웨이의 자연을 만끽하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려갔다. 5월인데도 눈이 녹지 않은 산등성이, 눈이 녹아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와 흐르는 강물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왔다. 목적지 라르달 호텔에 도달하기 직전에 들린 곳에는 1,150년대에 지어진 목조 성당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800년 된 헤달 목조 교회는 스칸디나비아에 살던 바이킹들이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목재와 판자 조각을 정교하게 짜맞춘의 전형적인 목조건물이다. 카톨락 교회로 사용되다가 16세기 종교개혁 후 루터파 개신교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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