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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pr 09. 2021

천경자의 미인도

종이에 채색

자식을 몰라 보는 어미가 있을까? 시간이 흘러 기억 위에 세월이라는 두꺼운 망각의 두께가 켭켭히 쌓이고, 갓난 아이였던 자식의 얼굴이 중년의 얼굴로 변모했다면 어미의 눈에 자식이 낯설고 이방인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의 경우는 다르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관찰하고, 기본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하고 몇 번의 덧칠과 수개월간의 수정과 보완의 과정을 거친다.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인고의 과정을 거친 자신의 작품을 몰라 볼 수 없다. 미술 작품은 사람같이 변하지 않고 처음 완성했을 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그 작품 제작 과정 얽힌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부터 위작 논란의 대상이 된 <미인도>, 29 X 26cm

 대중적 인기가 높은 천경자의 미인도는 위작 논란에 휘말렸다. 작가가 위작임을 주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화랑협회와 전문가들이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를 내놓았다. 작가 천경자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현실에 상심하고 분노해서 절필을 선언하고 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아는 작가 천경자의 작품에 얽힌 슬픈 이야기이다. 그리고 가끔씩 식당 벽면에 걸린 액자 속 꽃으로 장식된 여인의 얼굴이나 엽서에 담긴 원시적 여인의 나체 그림을 보면서 화가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막연한 작가가 천경자이다.


서울로 출장을 가는 길에 시간을 쪼개어 정동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렸다. 마침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상설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세계와 그녀의 다채로운 삶과 이야기를 가까이서 보고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가졌다. 작가는 시민들이 자신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제작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미술관은 20여 점의 작품을 상설 전시함으로써 작가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황혼의 통곡> 종이에 채색, 96 X 129cm, 1995 서울시립미술관

천경자는 꽃과 나비와 더불어 원시적이고 강렬한 여인을 대상물로 하는 시리즈를 작품으로 남겼다. 꽃은 여성의 감수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나비와 함께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특유의 여인상을 완성해 왔다. 작가는 장미처럼 자신을 방어하는 가시를 예술에 비유했고, 가시에서 핀 장미를 안고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담아 화려하고 향기 그윽한 작품을 남기고자 했다.

<생태> 종이에 채색, 51.5 X 87cm, 1951 서울시립미술관

작가는 처절한 삶의 현실에 대한 저항을 형상화시킨 “생태(1951)”을 발표함으로써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얽히고 설킨 35마리의 뱀을 통해 고통과 슬픔, 분노 등의 내면 감성을 표현해 낸 “생태”는 삶의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1974년 이집트 파라오 무덤에서 왕들의 이마에 있는 코브라 장식과 다양한 형태의 뱀 그림을 보고 모티브를 얻는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구원의 의미로,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화관처럼 이마 위에 쓰고 있는 여인을 그려냈다. 고독과 슬픔, 한을 넘어선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종이에 채색, 43.5 X 36cm, 1977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회 천경자의 모든 작품 설명서에는 ‘종이 위에 채색화’로 표기되어 있었다. 수채화를 배우면서 늘 물감의 농도 선택에 주저하고, 적정 덧칠의 횟수를 고민하는 나는 ‘종이 위의 채색화’라는 단어에 꼬쳤다. 안경을 벗고 그림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고 손으로 만져 보았다. 천경자의 종이 위에 그린 작품은 수채화의 기법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절간의 법당 안 천정이나 벽을 화려한 색깔로 장식하기 위해 광물질 색채를 안료로 사용하는 단청기법과 유사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 작가의 채색화 기법을 확인했다.  그녀의 색깔과 기법은 1940년 초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 가서 배운 일본 채색화의 기법에서 나온 것이다. 암채(岩彩)라는 재료를 통해 색을 겹으로 쌓는 방법이었다. 화면의 제일 바깥에 보이는 색깔은 여러 겹의 색이 축적되면서 밑으로부터 우러나오지만 즉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색깔들의 은은한 총체였다. 그녀의 채색화 기법은 미인도의 위작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도 사용되었다. ‘백반, 아교, 호분’ 성분으로 바탕 칠을 하고 육안으로 보이는 색과 다른 색의 안료가 그림 밑층에 중첩되어 채색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원시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가진 여성들을 그려냈다. 관객들은 그 신비로움에 끌렸고 비평가들은 `한국적 한(恨)` 또는 `한국적 채색화`라고 평가했다.    

<장미와 연인> 1981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작가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작품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와 자기 고백적 기록을 보면서 화가이자 글 쓰는 작가의 영역을 넘나드는 문학예술인 천경자의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을 확인했다. 천경자는 저서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에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 물감을 으깨고 붓을 놀리고 하는 것이 나의 일상생활이니 노상 꿈을 파먹고 산다고 할 만도 하다. 웬일인지 해가 갈수록 성미가 더 꼼꼼해져서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무던히도 맴돌고 헤매야 한다. 나의 타고나지 못한 비 천재의 탓을 한탄도 해 보지만 그러나 나일론 깔깔이 같이 기계에서 쉽게 다량으로 쏟아져 나온 것보다는 누에가 뽕을 먹고 자라 실오라기를 뿜어내는 누에고치가 되어 명주나 비단이 짜여 나오는 식으로 모체의 태반 냄새가 나는 것이라야 한다고 나는 늘 자위해 보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림 그리기를 더욱 사랑한다. 글 없는 나는 있을 수 있어도 그림 없는 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재 모차르트를 질투한 평범한 재능의 살리에리가 신의 불공정함에 분노를 느껴 모차르트를 살해했다는 살리에르 증후군은 범부이면 누구나 갖은 한탄이며 불평이다. 하지만 한국 화단의 대표적 작가인 천경자도 자신의 비 천재 재능에 한탄을 했다. 재능이나 탁월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습에 연습을 더하고, 시간과 세월을 투자해야만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평생을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온 노연주가가 매일매일 연습하는 까닭은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바이올린 음색과 향상되는 연주 솜씨를 깨닫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몇 년째 수채화를 배우고 있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나의 그림 그리기에도 희망을 안고 그치지 않는 연습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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