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영 Sep 06. 2021

더위가 물러가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코로나 상황이라 어디 갈 만한 곳도 없었으나

한여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 땐 사무실이 최고라고 여겨

퇴근 시간 후에도 늦도록 사무실에 남았었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사무실로 출근했었다.


그러다가 태풍이 불고 며칠째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더니만

서늘해진 새벽녘에 덮을 두꺼운 이불을 장롱에서 꺼내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긴팔 T 셔츠를 입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짧은 셔츠 선택했다.

도시인은 사람들이 착용한 의복으로 계절의 변화를 깨닫는다고 했던가?


멀리 보이는 황령산과 백양산 자락은 여전히 푸르고 푸른데

절기는 때를 맞추어 찾아오고 과일들이 영글어

가을이 깊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을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한 다음부터

지난 봄에 심었던 고추, 고구마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유난히 비가 잦았고 아침에는 서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교차가 심해졌으니

올해는 송이버섯을 많이 딸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문경 누이 텃밭에는 고구마 순이 자라 고랑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해졌고, 나는 유튜브에서 본 대로 고구마 순을 걷어올려 능쿨을 뒤집고 고랑을 확연하게 구분시켰다.  고구마 순이 자라 형성된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을 걷어 주어야 고구마도 숨을 쉬고 열매도 굵게 자란단다. 고구마 순과 잎이 웃자라는 것은 막기 위해 치는 것이 좋다고 해서 구입한 특별한 영양제는 이미 시기를 지난 것 같아 뿌리지 못하고 능쿨만 뒤집어 주었다. 한 달쯤 후에 고구마가 얼마나 더 크게 자랄지? 수확량이 얼마나 많아 질지 자뭇 기대가 된다. 구입한 영양제는 내년 7월쯤 적기에 뿌려서 올해 수확량과 비교해 봐야겠다.


집 뒷밭에는 땅콩이 잘 자라고 있었고, 내가 두 번이나 가지치기를 해 준 고추나무에는 붉은 고추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부지런한 누이가 틈틈이 따고 세척하고 말린  붉은 고추를 큰 비닐봉지 4개에 가득 담아 놓았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방치한 뒷밭에는 붉은 고추가 푸른 것들보다 더 많이 달렸다. 수확을 기다리는 붉은 고추를 내가 따내기로 했다. 고추 따기가 쉽지 않았다. 고추나무의 줄기는 굵지 않는데, 가지만큼 굵은 붉은 고추 꼭지가 가는 줄기에 견고히 붙어 자양분을 제공받고 있었다. 붉은 고추를 위로 재켜 따내려고 했지만 꼭지가 질겨서 분리가 잘되지 않았다. 더러는 가지 채로 꺾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수백 평 고추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수확을 할까 생각하다가, 누이집으로 돌아가서 가위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엉덩이에 방석을 대고 주저앉아 땄다. 나중엔 고추꼭지를 가위로 잘라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나중에 한꺼번에 주워 바구니에 담았다. 왼손으로 고추를 잡고 오른손으로 꼭지를 자르는 것에 비해 시간이 절반 이상 절약되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일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홍고추 10 바구니나 땄다.


탁구공보다 조금 큰 루비에스 사과는 온통 빨간색을 띠고 맛도 훌륭하다. 왼쪽이 부사이고 오른쪽이 홍로이다.

사과도 여러 품종이 있다. 여름에 수확하는 푸른 사과 아오리, 9월 상순에 수확하는 홍로는 주로 추석 선물용으로 판매한다. 문경에서 개발되었다는 감홍은 신맛이 적고 단맛이 높은데, 10월 10일경에 수확한다. 11월에 수확하는 가을 사과 후지는 사과 전체 수확량의 70%를 차지한다. 신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후지는 전 세계의 과일가게에서 비교적 비싼 값으로 판매되는 대표적 사과 품종이다. 이외에도 700여 종의 사과 품종이 있다고 하나, 누이 과수원에도 상기 4종류의 사과가 자라고 있다. 물론 후지 사과가 70%를 차지한다. 단 한 그루뿐인 소형 사과 품종인 루비에스는 유난히 빨갛게 달라 올라 있다. 이번 주말 동안 홍로 60여 박스를 따서 문경 사과 공판장에 냈다.

9월 초순 부사는 여전히 푸르지만, 홍로는  붉게 물들고 맛이 들어 수확을 기다린다.

지극히 계산적으로 따지면, 사과 농사로 홍로를 심는 것이 최고의 선택인 것 같다. 수확시기가 짧고 사과값도 높다. 11월에 수확하는 후지에 비하면 2달 정도 일하는 기간을 줄이고, 추석 대목 선물로 인기 높은 홍로는 사과값도 높다. 물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홍로는 저장 기간이 짧아 오래 보관할 수 없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과육이 물러진다. 9월 초에 수확하여 추석 전에 전량 공판장에 내다 팔면 된다. 부사는 11월에 수확하여 저장 창고에 보관하면서 1년 내내 내다 팔 수 있는 저장성이 강한 품종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문경의 야산도 여전히 푸르고 푸르렀다.

하지만 절기를 속일 수 없는 법.


송이버섯과 능이버섯. 제일 능이, 제이가 송이라고 하지만 송이버섯이 향기와 맛, 식감에서 단연 뛰어나다.

습기를 머금고 있는 숲 속에서는 싸리버섯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송이와 능이가 누이와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낙엽 위로 머리를 내밀려고 힘을 쏟고 있다.  

성급한 누이와 나는 앞산에 올라 원하는 버섯을 볼 수 없었지만

다음 주말부터는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을 딸 수 있으리라.

지난 기록에 의하면 작년 9월 12일엔 능이버섯이 녹아내렸고

재작년 9월 12일엔 송이버섯을 많이 땄다.  


고추와 가지, 자연은 곳곳에서 돌연변이를 허용한다. 유독 인간만이 나와 다른 인종과 생김새를 차별한다.  

올해 가을에도

두 개가 붙은 듯 보이는 자줏빛 가지도 있었고

홍고추를 따던 손길을 멈추게 했던 고추 돌연변이도 있었다.

봄에 가지를 친 대추나무에는 새 가지가 돋았고

새순에는 옹기종기 대추가 자라고 있었다.

내 어릴 적, 꽃잎을 찢고 백반을 넣어 손톱 위에 얹어 놓고

하룻밤을 뒤척임 없이 자고 나면 손톱을 분홍빛으로 물들게 했던

채송화도 자라고 있었다.

내 기억에 채송화는 분명히 홑잎 꽃이었는데

누이 집 뜰에는 겹꽃 채송화가 자라고 있다.  

처음 보는 겹잎 채송화이다.

이상도 하여라.

보통의 홑잎 채송화. 처음 보는 겹꽃 채송화가 자라고 있았다.


이렇게 올해의 가을도 영글어 가고 있다.

며칠이 지나면 단풍으로 나뭇잎들이 물들면서

가을은 더욱 더 깊어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륙도, 이기대 해안길을 걷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