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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Nov 16. 2022

제주도 한라산 영실을 그리다.

수채화 그리기

지난 4월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차를 렌트하지 않고 대중교통 수단을 사용하면서

제주의 여러 아름다운 길을 걸었습니다.


작년에 다 걸지 못했던 거문오름 10km를 걸으면서

제주의 여러 용암 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로 알려진 거문오름의 분화구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군사시설과

제주민의 애환이 녹아 있는 숯가마터와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의 숲과 다양한 식생을 만났습니다.


제주의 20여 개의 올레 코스 중 해안의 절경과 자연 생태계로 유명한 제7코스를 걸으면서

화산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외돌개에 얽힌 고려말 충신 최 영장군의 전설과

한라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돔베낭골 계곡에서 물장구치는 아이들과

해군기지 건설과 맹꽁이, 붉은 발 말똥게를 보호하려는 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는 강정마을과

달을 바라보는 정취가 일품이라는 망다리 언덕과

해녀문화로 유명한 법환포구의 동가름물 빨래터를 만났습니다.


서귀포 올레시장 근처 호텔에서 알통이 밴 종아리와 찌뿌둥한 온몸의 여독을 풀어 버리고

다음 날 한라산 등반을 위해 영실 입구로 향했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한라산의 텃새인 오목눈이와 동박새의 휘파람 소리가 함께 등반했습니다.

전날 강행군으로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높은 계단을 오를 때 허벅지가 땅기고 떨렸지만

영실기암과 오백 나한에 깃든 설문대 할망의 슬픈 전설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구상나무 군락과 낮은 키의 조릿대가 펼치지는 벌판을 지나

웅장한 위세를 떨치며 우뚝 솟아 있는 백록담의 남쪽 직벽을 만났습니다.

수 천 개의 기암괴석과 석탑이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습니다.

백록담 남벽 분기점을 찍고 용출수가 솟아나는 방아오름 샘을 지나

윗세오름을 거쳐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탐방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길은 한라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코스 중 가장 완만하고 여유로운 길입니다.

돌길과 나무데크 길을 따라 내려오다 사재비 동산 샘터에 들려 목을 축일 수도 있습니다.


영실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사진을 수채화로 옮겨 보기로 했습니다.

하얗게 고사한 구상나무 군락과 키 작은 조릿대와 낮은 언덕을

조화롭게 그려내는 것이 이 그림의 핵심이었습니다.


2022년 11월 15일 완성. 제주도 한라산 영실에서 어리목으로 내려 오는 길


케치를 끝내고 나니  

구상나무가 지나치게 컸고

고동색으로 표현된 나무가 전체를 압도해서

그림의 균형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성을 드렸지만

여전히 표현방법이 서툴고

그림내 중심과 소실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서

완성품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수채화를 그릴 때마다

새롭게 배우고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이 많다는 것은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만,

언제쯤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앞이 깜깜하기만 합니다.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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