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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an 21. 2023

노모에게 드리는 설날 선물

수채화 그리기

올해로 어머니는 아흔 살이 되셨다.


풍채도 좋으시고 마음도 넉넉하시던 어머니는

위암 수술 후 육체가 많이 줄어들어 왜소해지셨고

민첩했던 거동도 이젠 귀찮아하시고

소파에 오랫동안 앉아 계시거나

방바닥에 누워 TV를 쳐다보시는 경우가 많아지셨다.



늘 빗자루와 걸레로 주변을 깔끔하게 유지하시던 습관도 잊어버리신 듯

옆으로 밀어 놓거나 방 한 곳으로 던져 놓아

거실과 방바닥에 간식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고

드시다가 방치해서 말라붙은 과일  조각들이 어지럽게 뒹군다.

냉장고에는 여러 가지 음식과 재료들이 난잡하게 널려있고

주방의 버리지 않은 음식물 찌꺼기 위에는

하루살이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있다.

  - 동생이 세스코와 계약을 맺어 주기적으로 방역을 하고 있어 더 이상 벌레들은 없어졌다.


어머니는 매주 2일, 7일 장날 아침에

생선과 야채, 과일을 사러 시장에 가신다.

지난주에 사신 생선은 냉장고 깊은 곳에 넣어 두셨고

간식과 과일은 건너 방 선반 위에 남아 있지만

당장 눈에 띄지 않아서 캐리어를 끌고 장에 가신다.

움직이는 것이 성가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가시는 것은 마다하지 않아 하신다.


연세가 아흔이 되시고 육체가 노쇠해져서

만사가 귀찮아지고 기억이 명료하지 않으실 때가 많으시다.

애정 표현이나 관심이 많이 줄어드셨다.


그래도 매번 명절 때는

당신이 모든 음식을 준비해서

객지에서 올 자식들을 기다리신다.


어쩌면 필요한 일이나 해야 할 일이 없어지는 한가함과 권태로움이

노년의 활동과 사고를 축소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을 하실 때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어머니의 생기를 볼 때

자식들은 반갑고 즐겁다.


화초를 유난히 좋아하셔서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거실에 빽빽하게 화분을 두고

창가 문틀 위에서 꽃이 피고 아이비 넝쿨이 자라게 하셨는데

이제 연세가 드시니 화초  키우는 것조차 예전과 같지 않으시다.

여전히 화분  돌보기를 원하시나

화분 주변으로 물이 흘러나오고 흙이 튀어 올라 지저분해지는 것을 보고

자식들이 억지로 계단과 거실에서 화분을 치워 버렸다.

  - 대신 계단을 오르는 벽과 화장실 벽에 미끄러짐 방지용 손잡이를 설치했다.


수채화 116.8 * 91.0(50P호). 2023. 1.20 완성.  어머니께 드릴 선물로 그리다.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에게 드릴

수채화를 선물로 준비해서 고향을 찾아간다.

당신이 매일 정성을 들여서 키운 꽃만큼이야 하련마는

자식이 정성 들여 그린 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좋아하지 않으시겠나?


어머니!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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