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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n 27. 2020

제주도, 김정희를 흠모하다

추사, 제대로 알기

지난번  제주여행 때 들리지 못한 지라 벼루다가 결국 이번에 방문했다.


서귀포 대정읍에는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 와서 생활했던 집을 복원한 제주 전통가옥이 있다. 옆 건물로 나란히 세운 그의 기념관에서 명필 추사를 만났다. 지극히 단순한 기념관 외곽에 소나무 몇 그루가 무심히 심어져 있다. 완당의 세한도에 그려진 바로 그 모습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역작 세한도와 서필, 현판 등 다양한 추사체 사본과 유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은 3개의 전시공간으로 구분된다. 그중 전시장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긴 계단은 아주 특별한 느낌이 든다. 추사가 한양에서 유배지 제주까지 걸었던 긴 고난의 여정을 간접 경험하게 하는 건축가의  의도된 설계로 보인다. 이름하여 '고행길'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한양에서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에 이르러 초의선사를 만나고, 험한 뱃길을 헤쳐 제주도에 다 달아 서귀포 대정현에 도착한 남루해진 추사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지극히 단순한 기념관 외곽에 소나무 몇 그루가 무심히 심어져 있다. 세한도에 그려진 모습대로 지어진 추사 기념관


추사는 제주에서 9년간 힘든 유배생활을 보냈다. 추사는 영조 왕의 사위였던 김한신을 증조부로, 판서를 지낸 막강한 권세가였던 김노경을 아버지로 두었다. 조선시대 명문가 경주 김 씨 가문에 태어나 성균관 대사성, 이조참판을 역임하였으나 정쟁에 휘말려 정적 안동 김 씨의 탄핵으로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여 우리나라 금석학의 일대 성과를 내었고 명필로 많은 서화를 남긴 실학자 추사는 제주 유배기간 동안에도 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로는 흥선대원군, 이상적, 강위 등이 유명하며, 대정현 유배 중에도 강도순, 김여추, 김좌겸, 이시형, 홍석우  등에게  학문을 전수하였다. 그의 서화 중에서 이상적에게 남긴 세한도에 담긴 얘기가 감동적이다.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수묵화다.

제자 이상적이 북경에서 귀한 서적을 구해와 유배지 제주도까지 가져다주었고, 추사는 1844년 대정현 유배지에서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주었다. 제자의 변함없는 의를 날씨가 추워진  뒤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했다. 그림 끝에는 이 서화를 그린 경위를 적은 추사의 발문과 세한도를 보고 느낀 청나라 16명의 명사들의 찬시와 낙관이 찍혀있다. 이어서 추사의 문하생 김석준의 찬문과 오세창, 이시영의 배관기가 함께  붙어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화면은 직업화가들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를 배척하는 문인화의 특징으로 추사의 농축된 내면세계의 문기와 서화 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우리나라 사람이면 추사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부터 김정희의 추사체를 많이 들어왔고, 집집마다 제사 시 사용하는 병풍 한쪽 면에도 추사의 글씨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추사체를 알지 못한다. 유명하다고만 배워왔지 특성과 명필인 이유를 우린 배우지 못했다. 하여 이번 기회에 추사체에 관해 탐구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블로그와 지식IN 등을 통해 공부하고 나니 어렴풋이 추사체에 대해 이해가 된다. 인용에 인용을 더한 내용이라 원작자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 밝히지 못하고 인용한다. 파악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추사체의 일반적인 인식 수준

추사체는 대단히 개성적인 글씨로 평범한 미감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괴이하고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그 괴이함이 추사의 예술적 개성이자 높은 경지의 아름다움이다. 추사는 정통적인 아름다운 미가 아니라 반대로 추한 미를 추구했다. 파격의 아름다움, 개성으로서의 괴상함을 나타낸 것이 추사체의 본질이자 매력이라 할 수 있다.


2. 추사체의 미적 특질

제주도로 간 추사는 평소의 청고고아한 서풍을 일변하여 기골분망한 자태의 글씨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글씨는 예절과 형식을 무시한 장난꾼처럼  보인다. 추사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그대로 붓을 통해 표현한 것이며 개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추사의 작품은 점과 획의 운용이 강철 같은 힘을 가졌고, 공간배치에 대한 구상은 평범을 초월한 창의력이 현대회화와 공통되는 조형미를 갖추었다.


3. 서예사에서의 추사체 위치

조선시대 4대 명필로 안평대군 이용, 봉래 양사언,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를 꼽는다. 우리나라 4대 명필로는 신라의 김생, 고려의 대감국사 탄연, 조선 전기의 안평대군, 조선 후기의 김정희를 꼽는다. 그중 둘을 고르라면 김생과 추사가 남고, 한 명만 꼽으라면 추사 김정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서예사에서 추사의 업적은 낡은 법첩을 따라 쓰는 매너리즘과 향토색에 젖어있던 촌티 나는 조선의 글씨를 비문 글씨의 예스럽고 소박한 멋과 준경한 기품을 간직한 개성적인 서체를 구현하여 국제적  감각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4. 추사체에 대한 설명의 예

아래 url에서 설명하고 있는 추사체의 해석과 변천과정 중 일부를 그대로 복사해서 싣는다. 작자의 탁월한 해석으로 추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감사드린다. 작자의 존명은 알지 못하나 널리 추사를 이해시키는 훌륭한 자료라 생각하여 허락없이 이곳에  올린다.


ㅇ 추사체에 대한 분석


ㅇ 다양한 추사 서체와 설명

한 가지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추사가 제주로 유배 가는 길에 해남에 들렸다. 그 지역에서 제법 글씨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쓴 현판을 졸렬하다고 평하며 내리게 하고 추사가 대신 써 주었다. 대둔사 현판이다. 그러다가 제주 유배 9년을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남 대둔사에 들려, 자신이 쓴 현판을 내리고 이전 현판을 다시 걸게 했다는 얘기가 구전된다. 신의 경지에 이르면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게 된다는 얘긴가?

이 정도 공부하고 나니 추사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그의 글씨를 감상할 수 있는 얕은 지식을 얻게 됨에 감사하다.


추사가 유명한 것 같이 그에 대한 연구와 해석자료는 방대하다.

좀더 자세하고 완전한 추사체 해석을 원하면 다음 링크를 접속해 보세요.


https://yoonsang33.tistory.com/m/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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