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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Jul 03. 2020

울릉도 옛 기억을 더듬다.

울릉도, 첫 번째 이야기

동해 바다 가운데 솟아 있는 울릉도는 2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되었다. 마지막 폭발은 5천 년 전에 있었다. 최고점은 해발 984m의 성인봉이다.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직선거리로 130.3km 떨어져 있다. 독도와의 거리는 87.4km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큰 섬으로 주민 수는  약 1만 명이다. 섬 순환도로는 약 56km쯤 되며, 약 4시간 동안 도로를 따라 달리며 주변을 살펴볼 수 있다.  


포항에서 뱃길로 3시간쯤 걸리는데, 오늘은 전날의 태풍 주의보 영향으로 4시간이나 소요되었다. 바다가 거칠 여울이 있어 많은 승객들이 아침에 먹은 음식물을 토했다. 더러는 배 좌석 간 이동통로를 제 안방인양  엎드려 뱃멀미의 고통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견딜만했지만, 예전 엄청난 뱃멀미로 고생했던 기억이 되살아 나서 속이 메슥거렸다. 대학 2학년 때 친구 둘과 울릉도에서 한 열흘 놀다가 포항으로 돌아가는 배였다. 그때는 울릉도에서 포항까지 8시간이나 걸렸다. 태풍 주의보 발령에도 배가 떴고, 바다가 비바람과 함께 크게 출렁거렸다.  처음에는 음식물을 토하고, 이어 똥물이라 일컫는 시큼한 노란 물이 올라왔다. 이마에 땀이 차고  콧물 눈물이 범벅이 되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어쩔 줄 몰랐다. 속을 모두 비웠는데도 계속 헛구역질이 반복되었다. 땀이 바짝바짝 났다. 체면이고 뭐고 아무 곳에나 발을 뻗어 엎드렸으나 잠은 잘 수 없고 멀미 고통만 확대될 뿐이었다. 헛구역질만 나더니만 나중에는 속에서 까만 물이 올라왔다. 몹시 썼다.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고, 배가 포항에 닿는 시간은 너무도 많이 남았다. 배가 처음에는 앞뒤로 울렁거리더니만 나중에는 옆으로 뒤뚱거렸다. 요동을 쳤다. 침이 흐르고 멀미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자 결국에는 배가 침몰해서 모두 죽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 버리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겠지... 어떻게 어떻게 해서 배가 11시간이나 걸려 포항에 도착했다. 배에서 기다시피 해서 겨우 내렸는데 이번엔 육지가 출렁거렸다. 결국 포항에서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버스 타고 대구로 이동했다. 그날 아침까지 울렁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배가 도동항에 도착했다. 여행사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든 사람들과 렌터카와 민박을 권유하는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관광객을 기다렸다. 코로나로 인해 줄어든 수입을 만회하려면 호객행위를 할 수밖에 없으리라. 몸을 실은 스타렉스는 빽빽한 도동 상가 건물 골목을 비집고 비탈길을 올라가더니 산 중턱 울릉 호텔 앞에 멈춰 섰다. 몰려드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신축 호텔과 리조트들이 땅값이 싼 산 중턱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탁 트인 전망, 반짝이는 바다. 모두 좋은데 숙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마트에도 들리고 특산품 가게라도 기웃거리고 싶으면 택시를 불러야 될 위치이다. 어쩌면 번잡한 곳을 벗어나 조용히 쉬려면 이런 곳이 좋을 수도 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홍합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소형버스를 타고 시계 역방향으로 순환도로를 따라 관광을 시작했다. 언덕을 넘어 저동항 촛대바위를 지났다. 대학시절 열흘간 머물던 옛 친구 집이 가물가물 하다. 저동항 어디였지. 시간이 되면 찾아 가보리라. 어떻게 변했을까?

30여 년이 지났는데. 그때에 중 3, 중2 꼬마 둘을 할머니가 대구 객지에서 학교 다니도록 수발하셨다. 난 경북대학교 다니면서 옆방에서 자취하던 것이 인연이 되어  이곳을 방문했었다. 지금은 의연한 중년이 되어 울릉도 사회의 주역들로 일하고 있겠지.

전체구도를 위해 촛점을 멀리 잡았더니 관음도를 이어놓은 다리가 잘보이지 않는다.

젊은 부부가 더덕 농사를 짓는다는 죽도를 거쳐 삼선암 앞에 잠시 차를 멈췄다. 멀리 관음도가 보인다. 울릉도 본섬과 관음사를 다리로 이어놓았다. 그림이 좋다. 돌아서면 삼선암. 날씨가 좋아 사진발을 잘 받는다. 짙은 바다와 푸른 하늘이 조화롭다.

삼선암앞 절벽의 무늬가 화산 용암이 분출되어 굳어진 지형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옛날 수박으로 유명했던 천부에서 차는 비탈길을 치고 올라갔다. 가파른 구비를 몇 번 휘감아 돌아가니 나리 분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전엔 땀을 흘려가며 올랐던 나리분지를 이젠 차로 쉽게 를 수 있어 좋다. 노인 내외가 거처하시던 한집뿐이던  우데기 집이 이젠 보존 가옥으로 보호되고, 나리분지 내에 제법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울릉도 전체에서 유일하게 평지인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명이나물, 부지깽이나물 등을 농사지으며 살아간다. 관광객을 위한 식당에 들러 이곳 전통주 시껍데기 술과 부지깽이나물 무침을 주문했다. 막걸리는 전주에서 오신 어르신 부부  내외가 마시고, 난 부지깽이를 맛보았다.  

예전엔 지붕을 나무 널판지로 이었다. 처마를 길게 늘려뜨리고 나무가지로 외벽을 쳐서, 눈이 지붕위까지 쌓이면 집 내부에서 거동할 수 있도록 했다.

울릉도에서만 나는 특별한 향기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백리향이라는 허브의 정향을 모아 향수와 비누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 들려 그 향기를 맡았다.

천부에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수력발전소가 아직까지 작동되고 있다. 울릉도에는 그만큼 수량이 풍부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겨울 나리분지에 수 미터씩이나 쌓이는 눈이 녹은 물이 백록담같이 화산 분출구에 고이지 않는 것은 물을 스며 들이는 토질 덕분이다. 울릉도에서는 사시사철 계곡에서 물이 흐른다. 대학시절엔 수력발전소 앞에서 수영을 즐기고 마지막에 발전소에서 내려오는 민물로 몸을 씻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시멘트가 발리고 바다가 매립되어 건물들이 들어찼다.


멀리 울릉도 장가계라 불리는 송곳봉이 보인다. 한 20년 전에 창건된 성불사 아래에는 시드니 야외공연장을 흉내 낸 건물 등이 아기자기하게 들어 서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금 지나면 선창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바다에 코를 박고 있는 코끼리 섬이 보인다. 바위 표면은 주상절리들이 발달해 있다. 화산에서 분출된 뜨거운 용암은 공기나 물을 만나  빠르게 식으면서 수축한다. 수축에 의해 암석 표면은 일정한 간격으로 갈라진다. 갈라진 틈이 길게 이어져 진 기둥으로 만들어진 것을 주상절리라고 부른다. 주상절리의 긴 방향은 용암이 분출된 방향과 같은데, 코끼리 섬의 주상절리가 여러 방향으로 자란 것은 용암 분출 시 지형의 기복이나 다른 용암의 유입으로 용암이 여러 방향으로 식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긴 코와 눈, 펄럭거리는 귀가 코끼리를 닮았다. 바위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코를 바다에 쳐박고 있다.
마그마의 통로인 화도가 굳어서 형성된 높이 약 200미터의 바위. 암석 표면의 절리들이 노인의 주름처럼 보인다고 해서 노인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넘친 것이 틀림없다. 외길 도로를 2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구간이 많았다. 1차선 좁은 도로인지라 터널을 지나거나  노견이 없는 길에서는 불가피하게 반대쪽에서 진입하는 차량을 위해 잠시 멈추고 양보해야  한다.  양보하는 불편을 없애고 빠른 이동으로 많은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도로를 확장하는 모양인데, 코로나가 진정되더라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꺼나? 코로나가 우리 일상생활로 들어와서 늘 조심하고 대면접촉을 줄여야 하는 생태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측했다. 과연 우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길 수 있을까? 관광객들로 복잡해지는 울릉도가 될 수 있을까? 관광객들이 넘쳐나서 과연 예정대로 소형 비행기를 띄울 비행장을 만들 수 있을까?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순환도로 곳곳에 시선이 머무는 아름다운 풍치가 있다. 간혹 객지인들이 낚시를 드리우기도 한다.

길가 옆에 더문더문 호박엿이나 명이나물, 배에서 말린 오징어를 파는 가게를 차려놓고 관광객을 부른다. 울릉도에서 흔한 호박엿과 명이나물은 나름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둘 다 예전엔 구황작물이었다. 논농사가 거의 불가능한 이곳에서 잘 자라는 호박이 주식 대신 먹을 수 있는 대체 작물이었다. 집집마다 호박을 삶고 고아 두고두고 먹던 엿이 '울릉도 호박엿~'이 되어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산마늘이 표준어인 명이나물도 못 먹어 주릴 때, 나물 죽이라도 끓여 겨우 목숨을 연명했다고 해서 '명'을 이어 주는 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오늘 하루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안구를 정화했다. 사람이 적어 유유자적했고, 오염 없는 청정 공기를 마셨다. 다행히 덥지도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특별한 것은 없지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좋다. 내일도 부디 날씨가 좋고, 바다가 잠잠해서 독도 가는 바다가 열리고, 부디 배가 독도에 접안하길 빈다.


저녁은 오삼 불고기를 먹었다.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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