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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Dec 28. 2023

1984 이야기: 어휘 수가 사고 수준을 결정

말놀이로 시작해보세요 (2)

외국어 학습에서 어휘력이 70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60퍼센트라고 해도 상관없고, 80퍼센트여도 좋습니다. 어차피 어느 누구도 정확한 퍼센트를 산출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어쨌든 어휘력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문법을 몰라도 어휘만 알면 생존 외국어 정도는 구사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모국어 습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휘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한 단어가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을 익히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던 단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게다가 그나마 남아있는 단어들도 오직 한 가지 뜻만 가지게 된다면, 그렇다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오래전에 그런 상상을 했던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지 오웰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설, ‘1984’에서 새로운 사전을 소개합니다. 신어사전이 완성되는 2050년이 되면,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는 모두 사라질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개념이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되어 부수적인 의미가 모두 지워지고 사라져 아주 엄격하게 정의되는 단어만 사전에 담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1984'의 영문판 표지


당의 명령에 따라 신어사전 편찬을 맡고 있는 사임(Syme)은 주인공 윈스턴(Winston)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말을 없앤다는 건 멋있는 일이야. 물론 버려야 할 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명사에도 수백 어(語)는 되지. 없애는 건 동의어뿐만 아니지. 반대어도 있어. 정말 단어라는 게 단순히 다른 말의 반대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낱말에는 그 자체 내 반대말을 포함하고 있네. 예를 들어본다면 <좋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세. <좋다>라는 말이 있으면 <나쁘다>는 말이 필요 있겠나? <안 좋다(ungood)>로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그게 다른 말보다 더 정확한 반대어지. <좋다>는 것을 더 강조하려 할 때 <훌륭하다>라든가 <멋있다>라는 말들이 필요할까? <더 좋다>라는 말이면 충분하고, 그것을 더 강조하고 싶으면 <더욱더 좋다>로 하면 되지. 물론 이런 형태의 단어를 이미 사용하고는 있지만 신어사전 최종판에서는 이 말 한마디만 남을 걸세. 결국 좋다는 것과 나쁘다는 것에 대한 모든 개념들은 다만 여섯 개의 낱말로, 실제로는 단 하나의 말로 표현되는 거지. 멋있지. 윈스턴, 이건 물론 처음부터 대형(Big Brother)의 아이디어야(Orwell, 1984: 57쪽).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합니다.     


신어의 목적이 생각의 폭을 줄이는 것이라는 거 알고 있나? 드디어 우리는 사상죄도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세. 왜냐하면 그걸 표현할 말이 없어지니까. 필요한 개념은 단 한마디 말로 표현되며, 그 말은 정확히 정의되어 필요 없는 뜻은 없어져 버리고 말지. 제11판에서 우리는 벌써 그 정도로 해놓았어. 그러나 그 과정은 자네나 내가 죽고 난 후에도 계속될 거야. 어휘는 줄어들고, 그럴수록 의식의 한계도 좋아지겠지. 물론 지금도 사상죄에 대한 이유나 구실이 있을 수 없지. 그것은 단순히 자기 훈련이나 현실 통제를 못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결국 그나마 필요 없게 돼. 혁명은 언어가 완성될 때 완성돼(Orwell, 1984: 58쪽).     


영화, '1984'에서 단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빅 브라더가 단어 수 줄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단어 수가 줄어들면 사람들의 사고가 제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체주의적 통제가 매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른바 ‘이중사고’1)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에 반역할 생각을 못합니다. 마음먹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되는 입니다.     


빅 브라더아이디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어휘를 많이 알고 있으면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집니다. 알고 있는 어휘의 수는 사고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Orwell, G.(1984). 1984 (한바람 역). 서울: 을지출판사.

1984 (Nineteen Eighty-Four, 1956년, 마이클 앤더슨 감독)

    




1) 살면서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저는 그 잘못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알지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페스팅거(Festinger)가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던 현상입니다. 유쾌하지 못한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게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조지 오웰 식으로 말한다면 이중사고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알지만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아예 모른다면, 그러니까 아예 원래부터 이중사고를 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생각하는 바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이 모두 발가벗겨진다면, 힘을 가진 자의 통제는 매우 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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