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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Dec 29. 2023

‘취득시효’는 옳고 ‘동대문’은 옳지 않음

말놀이로 시작해보세요 (3)

알고 있는 어휘의 수, 그리고 어휘의 다양한 용례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사고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도대체 어디에서 쌓을 수 있을까요?

    

유아의 경우, 그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그림책입니다. 만화영화나 게임도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게임은... 게임에서는 단어의 의미를 왜곡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많이 접하는 매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유감입니다.

     

그런데 그림책, 만화영화, 게임보다 더 중요한 원천이 있습니다. 말놀이는 어휘 용례를 풍부하게 익힐 수 있는 훌륭한 원천입니다.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책, 만화영화, 게임을 접할 때는 아이들이 매체의 수용자로 기능하지만, 말놀이를 할 때는 어휘의 다양한 쓰임을 직접 표현해 보는 생산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놀이에는 아이들의 경험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글자를 익히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년∼1997년)와 쉴러 애쉬톤-워너(Sheila Ashton-Warner, 1908년∼1984년) 등이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페다고지의 표지 (1979년,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출판)


프레이리는 브라질 농민의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선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가 1950년대였습니다.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농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활용하면 매우 효과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름대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그가 가르쳤던  학생(농부) 대부분은 30시간의 교육만 받고서도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도 놀랄 게 없습니다. 언어교육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활용한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요? 그런데 그때는 대단한 생각이었습니다.

        

     

1970년대 쓰기 교과서 표지


혹시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이런 노래 아시나요? 제가 초등(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국어 교과서에 바로 그 노래가 실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동대문을 본 적이 있었을까요? 지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동대문을 구경한 적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노래의 멜로디도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었던 것입니다. 교과서 삽화도 그랬습니다. 정말 영희 같이 생긴, 정말 철수 같은 아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프레이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농부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동대문’을 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닫게 됩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문맹을 퇴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농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을 채택합니다.


브라질 말은 모르니까 우리나라 용어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혹시, ‘용수’, ‘배수’ 이런 말 알고 계시나요? ‘여수’는 요? 남쪽의 여수 말고요. ‘인수’는 요? 박인수 씨 말고요.


모두 농사지을 때 필요한 물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농지 임대차’, ‘사용대차’, ‘취득시효’, 이런 용어는 알고 있나요? 이런 용어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농민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용어입니다. 그런 단어로 글자를 배우니까, 글자를 쉽게 깨우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프레이리에게 배우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경험이 반영된,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한 말놀이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프레이리가 실천한 문맹퇴치 프로그램은 유래 없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페다고지’입니다. 그 책의 부제는 오프리미도(oprimido)입니다. 억압받은 자, 피억압자, 영어로는 ‘oppressed’입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문맹 퇴치와 피억압자들의 교육학? 이상합니다. 우리나라 독재정권이 두려워했던 학자라는 점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그 책이 금서였습니다. 단지 그의 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1973년에 출판된 우리나라 번역본에는 ‘민중교육론’이라는 부제가 있었습니다만 그 이후 번역본에서는 부제를 찾을 수 없습니다.)

농민들이 단지 문자만 배운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문자를 알게 되면서 자신을 둘러싼 억압의 구조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용수와 배수 같은 말만 알게 된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소작농’이나 ‘착취’와 같은 용어도 알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문해교육이었으나 자신을 둘러싼 억압의 구조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게 되면서 ‘의식화 교육’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독재정권이 ‘페다고지’라는 책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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