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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Jan 02. 2024

언어유희는 각자의 모국어에서만 이해 가능

말놀이로 시작해보세요 (7)

외국어로 된 아재개그(Die Amond)와 우리말과 외국어를 결합한 아재개그(사과 한 입 먹으면 파인 파인애플)의 예를 살펴보았습니다. 외국어로도 아재개그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다만 특정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해당 언어의 언어유희(아재개그, 말놀이, 말장난)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번역도 불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일해라, 절해라, 참견하지 마세요.”를 영어로 옮기는 게 가능할까요? 오죽하면 버지니아 울프가 “외국어로 옮기면, 유머라는 선물이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된다(Woolf, 1948: 57쪽)”1)  말했겠습니까?  

    

언어적 상상력, 또는 언어적 유희를 가장 잘 표현한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들곤 합니다. 1865년에 출판된 이후 17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고전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본에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번역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음은 우리나라 번역본의 일부이고 괄호 안은 영어 원본 내용입니다.

    

“난 형편이 좋지 않아 기본 과목밖에 못 배웠어.”

가짜 거북이 한숨을 쉬었다.

“기본 과목이 뭐였는데요?”

앨리스가 물었다. (179쪽)

“처음엔 당연히 막말하기와 악쓰기를 배우지(Reeling and Writhing, of course, to begin with,”

가짜 거북이 대답했다.

“그다음엔 수확의 일종인 더 일하기, 힘 빼기, 꼽꼽하기, 나누어 먹기를 배웠지(and then the different branches of Arithmetic—Ambition, Distraction, Uglification, and Derision.).”(Carrol, 2007: 180쪽)    

 

읽기(Reading) 대신 막말하기(Reeling),

쓰기(Writing) 대신 악쓰기(Writhing),

산수(Arithmetic) 대신 수확(Arithmetic),

더하기(Addition) 대신 더 일하기(Ambition),

빼기(Subtraction) 대신 힘 빼기(Distraction),

곱하기(Multiplication) 대신 꼽꼽하기(Uglification),

나누기(Division) 대신 나누어 먹기(Derision)를  사용한 것입니다.


원래 Reading(읽기)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Reading과 발음이 비슷한 Reeling(막말하기)이라는 말로 대치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겁니다. “학교에서 읽기를 배운 게 아니고 막말하기를 배웠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번역하다 보니까 언어유희에 담긴 즐거움을 전혀 살릴 수 없었습니다. 언어유희는 사실 번역이 불가능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삽화 가운데 하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길고도 슬픈 이야기야!(Mine is a long and a sad tale!).”

쥐가 앨리스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꼬리가 길긴 하네(It is a long tail, certainly,).”

앨리스는 쥐의 꼬리를 이상하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꼬리가 왜 슬프다는 건데?(but why do you call it sad?)”(53쪽)     


tale(이야기)과 tail(꼬리)의 발음이 같다는 것에 착안한 영국식 아재개그입니다. 그런데 그걸 번역하니까 언어유희의 원래 맛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언어유희는 번역이 불가능합니다. 2)      


이번엔 알파벳 그림책(Escoffier & Giacomo, 2015)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Take Away the A'의 그림 가운데 하나


Without the A, the BEAST is the BEST. (A를 빼면, 동물이 최고!)

Without the B, the BRIDE goes fo a RIDE. (B를 빼면, 신부가 타러 가!)

Without the C, the CHAIR has HAIR. (C를 빼면, 의자에 머리가 생겨!)       


괄호 안은 제가 어설프게 번역한 내용입니다. 어떤가요? 그림을 보니 직관적으로 이해되었는데, 해석을 보니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지 않으신가요? 이런 언어유희를 ‘제대로’ 번역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언어유희는 각자의 모국어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자명해집니다. 왜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을 활용해서 언어적 상상력을 길러주어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학교에서 이민자 자녀들에게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정책이 바뀐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영어가 아니라 각자의 모국어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모국어를 잘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모국어의 수가 무척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방향은 옳았습니다. 모국어를 잘해야 영어도 잘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저도 번역어플을 사용하곤 합니다. '왜 번역이 엉터리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말을 바꿔보곤 했습니다. 한국어 표현이 정확하면 번역 수준이 높아지더군요. 인공지능의 번역이 완벽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의 우리말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24년 현재에는 한 문장씩 번역해 주는 어플이 대부분입니다만 문장의 분량과 관계없이 동시통역이 가능한 어플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통역 완성도가 더 높아질 것입니다. 외국어능력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때가 임박했습니다. 그때 필요한 능력은, 려한 우리말 구사능력입니다.


게다가 외국어를 잘하려면 모국어를 잘해야 합니다. 국어성적은 낮은데 영어점수만 높은 학생이 가끔 있긴 합니다. 그래도 국어를 잘하는 친구가 영어도 잘합니다. 우리말을 잘해야 외국어도 잘할 수 있습니다.




Carrol, L.(200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권혁 역), 서울: 돋을새김.

Carrol, L.(200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김양미 역), 서울: 인디고.

Escoffier, M. (글), Giacomo, K (그림) (2015). Take Away the A. Enchanted Lion Books.

Woolf, V. (1948). The Common Reader. London: Hogarth Press.     




1) “(Thus) humour is the first of the gifts to perish in a foreign tongue, and when we turn from Greek to English literature it seems, after a long silence, as if our great age were ushered in by a burst of laughter(Woolf, 1948, ‘On not knowing Greek’ 장(39-59쪽)의 내용 가운데 57쪽)”의 앞부분만 해석했습니다.     


2) 번역이 불가능한 영어의 언어유희를 우리말로 번역해 낸 번역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번역본이 많은데, 번역하시는 분마다 나름대로 언어유희의 맛을 살리기 위해 정말 애를 많이 썼습니다. 번역자마다 어떻게 다르게 번역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또 다른 번역본에서는 비틀거리기(Reeling), 뒤틀기(Writhing), 야망(Ambition), 주의 산만(Distraction), 추해지기(Uglification), 조롱(Derision)이라고 번역했습니다(Carrol, 2004: 152쪽). 단어의 원래 의미대로 번역하다 보니 언어유희가 사라지게 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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