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제목 붙이거나 사진에 이야기를 담거나 사진의 내용을 동시로 표현해 보는 놀이를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제목 붙이기 자체가 이야기일 수 있으니 제목 정하기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이란 적국”이라면서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박지원a, 2007: 129-130쪽). 제목은 궁극적으로 장악해야 하는 대상이니까 제목부터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제목 짓기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미리 제목을 정해도 되지만, 이야기(시)를 완성한 다음에 제목을 달아도 좋습니다(김춘수 님의 말을 안도현, 2009: 141쪽에서 재인용).
제목 정하기는 (처음이 아니라) 마무리 단계에서 중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은 다음에 제목을 정해도 좋고, 사진을 찍기 전에 제목을 정해도 좋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진에 이야기를 담아도 좋습니다. 사진에서 영감 받은 내용을 시로 지어도 좋습니다.
① 사진 찍고 이야기(시) 만들기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도 좋고,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도 좋습니다. 사진(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이야기를 담는 놀이입니다.
(자기가 그린 그림에 제목을 붙이고 이야기를 담는 놀이도 좋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그림표현이 아니라 이야기 만들기를 강조하고 싶어서, 그림보다는 사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대학생들과 사진 찍고 제목 짓기, 이야기 담기 활동을 해왔습니다. 다음은 한 대학생 작품입니다.
제목: “안녕히 가세요.”
사진에 날짜(2012. 11. 17.)가 찍혀있군요. 제목은 “안녕히 가세요.”입니다. 주차고깔이 꺾여있는 모양이, 마치 화살표 방향으로 떠나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이들은 이런 놀이에 즐겁게 참여하는 반면 성인들은 상당히 부담스러워합니다. 제가 매일 이런 과제(?)를 해오라고 하니까 다음과 같은 사진을 찍어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제목: 아무리 쥐어짜도 안 나오는 ‘한계나무’
제목은 “아무리 쥐어짜도 안 나오는 ‘한계나무’”입니다. 저에게 직접(또는 간접)적으로 항의하는 겁니다. 사진 찍고 이야기 만드는 과제, 그만하자고 말입니다.
2023년 10월 1일, 속초 물치해변
2023년 10월 1일, 속초 물치해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날씨가 추운데도 서핑을 즐기는 분들이 많더군요. 카페 안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재미있게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해변 가까이 가보니 사정이 달랐습니다. 서퍼들의 치열함이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파도가 되어버린 굵은 땀방울을 연신 훔치던 서퍼가 급박하게 소리치더군요.
가까이 가야 들리는 것
"빨리 병원 가봐!
해나 누나 119에 실려갔어!" (최연철)
그동안 ‘사건나열식 이야기’에 대해 말했잖아요. 여러 개의 사건이 아니라 단지 한 사건을 중심으로 문어발식 문장을 만드는 놀이도 생각해 봤습니다
첫 문장 카드 1장을 뽑은 다음, 그 문장에 이어지는 문장을 계속 만들어보는 놀이입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 카드를 뽑았다면 다음과 같이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와 연결될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보는 겁니다. (굳이 첫 문장 카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이 만든 문장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
아빠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시나 봐요.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냄새인가요?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
된장찌개가 아니었군요.
맛있는 냄새가 났어요.
동생 방귀 냄새였네요.
어떤가요? 재미있지 않나요!
박지원a(2007). 연암집 (상). (신호열, 김명호 역). 파주: 돌베개.
안도현(2009).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안도현의 시작법. 서울: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