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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Feb 03. 2024

사건의 ‘건너뜀’에 주목하기

사건만 나열하는 이야기는 어떤가요? (2)

사건만 나열하는 이야기도 훌륭합니다. 아이들의 사건 나열식 이야기를 고쳐주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이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 이야기라면, 사건 나열식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라도 항상 원본 그대로 보관(저장)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수정하더라도 원본이 있어야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 교사와 부모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에서는 아이들의 사건 나열식 이야기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아이들의 사건나열식 이야기에서는 ‘건너뛰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사건을 나열하다가 건너뛰어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잘 구성된 플롯에서도 ‘건너뛰곤’ 합니다. 개연성 있는 사건만 강조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삭제하려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건너뛰어주어야 이야기 구조가 튼튼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건너뜀은 의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사건을 빼다 보니 건너뛰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머릿속 생각의 흐름에 따라, 연상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다 보니 건너뛰게 되는 것입니다. 유의미한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든가, 이어지는 사건끼리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너뛰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생각의 흐름에 이야기를 맡기다 보니까 건너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계획하지 않은 건너뜀이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연성 없는 사건을 주-욱 나열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시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는 떠오르는 이미지를 연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시에서는 앞의 이미지와 다음의 이미지가 논리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중간단계가 생략된 연상작용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폴 발레리 말대로, “산문은 걷기이고, 시는 춤추기”1) 입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미지 역시, 건너뛰고 건너뛰면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미지를 건너뛰면서 이야기로 이어간다면, 청자는 이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교사와 부모는 그 부분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특별히 도와줘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섣불리 “왜?”라고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이미지가 계속 이어지는 흐름을 끊게 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몸에 익히게 하고 싶다면 ‘왜?’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상의 흐름을 방해할 여지가 있다면, 이야기 구조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심상이 자유롭게 흐르게 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 수단에 불과하다. <중략> 기존의 말이나 다른 기호들 (추측컨대 수학적인 것들)은 이차적인 것들이다. 심상이 먼저 나타나서 내가 그것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다음에야 말이나 기호가 필요한 것이다. (Root-Bernstein & Root-Bernstein, 2008: 25쪽)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심상의 흐름을 막으면 결국 아무것도 산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이야기를 고쳐주기  위한 목적으로 또는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명목으로,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면 안 됩니다. 이야기 분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을 수 있습니다. 

 

최연철, 2024. 2. 12 (Prompt Search로 그림)


하지만 상황이 적절하다면!

아이에게 적합하다면!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건너뛴 사건의 앞뒤 사건이 개연성 있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건너뛴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여 설명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즉 건너뛰었지만 건너뛴 흔적을 남기지 않게 솔기 없이 연결하든지, 아니면, 건너뛰지 말고 아예 구체적인 설명을 추가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Root-Bernstein, R. & Root-Bernstein, M.(2008). 생각의 탄생. (박종성 역). 서울: 에코의서재




1) “Poetry is to prose as dancing is to walking.” 폴 발레리가 1932년 Oxford 대학교에서 ‘Poetry and Abstract Thought’라는 주제로 강의할 때 했던 말입니다. 맥락을 제공하기 위해, 관련 내용을 영문으로 소개합니다.

Prose was language in its unreflective mode—utilitarian and interchangeable, moving toward some goal, language that “perishes once it is understood, and because it is understood.” In poetry, by contrast, language could become an end in itself. Prose, for him, was walking, or running; poetry was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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