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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Feb 02. 2024

약간의 균열만으로도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사건만 나열하는 이야기는 어떤가요? (1)

아이들의 이야기는 일련의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그리고 나열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라는 게 원래 사건을 모아놓은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연결하면 안 될 것 같은 일련의 사건조차 “∼했고”와 같은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면, 그건 좋은 시작입니다. 게다가 사건을 나열하는  가장 ‘정직한’ 서술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상당히 재미없는 기술 방식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상상해보세요. “아침에 늦잠 자서 허겁지겁 학교로 뛰어가는데 수철이를 만나서 수다를 떨다 보니 더 늦어버렸다.” 이런 식의 나열식 이야기는, 한 마디로 재미가 없습니다.


‘오늘은 듣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고 기필코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고야 말 거야!’라고 다짐하며, 사건 나열식 이야기를 만드는 아이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화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사건나열식 이야기를 듣는 청자는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척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피소드만 모아놓은 이야기야말로 최악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한 플롯과 사건들 중에 최악은 에피소드만 모아놓은 것이다. 사건이나 행위가 개연성이나 필연성 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나는 ‘에피소드적 플롯’이라고 부른다(Aristoteles, 2021: 37쪽).


사건 나열식 이야기는 듣는 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


그런데 우리 일상을 살펴보세요. 사실 우리는 그렇게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사건이 주-욱 이어지는 일상을 반복하곤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일상이 깨질까 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율배반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고, 수철이 만나고, 멍멍이도 만나고, 학교에 갔다.”는 반복되는 일상이 답답하고 단조로워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꿈을 꾸곤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건이 생겨 평범한 일상이 깨질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새로운 일이라는 건 좋은 일일 수도 있지만 나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평온한 일상이 깨질 수도 있다면 그리 반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일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 일상이 무너지는 건 원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일상은 무너져도 됩니다. 더구나 그 다른 사람이 내 이웃도 아니고 이야기 속의 가상 인물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 속의 다른 사람 일상은 무너져도 됩니다. 무엇보다도 안전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사실 다치거나 상처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야기 속의 다른 사람이라면, 길을 가다가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만나도 좋고(너무 흥부전인가요?), 자동차 사고를 당한 강아지를 만나도 좋고, 하수구에서 나온 악어가 책가방을 물어도(Burningham, 1996) 좋습니다.


Image by Astrid from Pixabay


이렇게 일상이 무너지는, 약간의 균열만으로도 재미있어집니다. 우리 일상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면, 정말 특별한 사건이라고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반복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그 평범한 에피소드의 모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하나도 재미없겠죠! 약간의 균열만으로도 이야기는 재미있어집니다.




Burningham, J. (1996). 지각대장 존. 서울: 비룡소.

Aristoteles(2021).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박문재 역). 파주: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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