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어떻게 하죠? (5)
이오덕 님의 말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린이는 정직합니다. 어린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거짓스러운 행동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어린이가 거짓말을 한다면 어른을 닮아서 하는 것이죠. 어린이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함께하려 하고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욕심을 부리는 어린이가 있다면 어른을 따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 어린이는 언제나 약한 이들의 편입니다. 그래서 짐승이나 벌레를 함부로 죽이지 않습니다. (이오덕, 1993: 174쪽)
이오덕 님의 말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폭력적인 미디어에 아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오덕 님의 말이 맞습니다. 돈을 벌어보겠다는 어른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 그렇게 폭력적인 아이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이야 어쨌든, 이오덕 님이 아이들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건 확실합니다. 폭력적인 미디어에 노출된 적이 (별로) 없었던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도 그렇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려 들었던 부정직한 친구,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던 아이, 강한 자의 편에 서고 싶어 기를 쓰던 녀석이 항상 있었습니다. 아니... 그건 저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는데!’ ‘전쟁, 칼, 총, 죽음 등과는 멀리하면 좋겠는데!’라는 바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입니다. 아이들의 이야기에는 폭력적인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어른들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지곤 합니다.
놀이에서도 그렇습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하니, 놀이에 긍정적인 면만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놀이과정에서 항상 긍정적인 것만 배우진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놀이에서 시기와 질투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질투하면 안 된다는 걸 배우면 좋겠다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독자님들의 과거 놀이 상황을 떠올리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질투했는데 사회적 배척을 당한다면, 질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질투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세련되게 질투해야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질투를 적절하지 않게 드러내면 안 되니까,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을 정도로 적절하게 포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포장하되, 마음속에는 칼을 숨겨놓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오덕(1993). 어린이 시 이야기 열두 마당. 파주: 지식산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