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나 죽음과 같이 ‘부정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그림책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곰인형 오토(Ungerer, 2001)’는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우리 할아버지(Burningham, 2017)’에는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을 다루고 있고, (권장연령이 13세 이상이고, 우리말로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히로시마의 섬광(Maruki, 1980)’이라는 그림책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격의 비극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체 자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politically correct)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주제 전개과정에서 폭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고, 부정적인 정서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에도 불행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전쟁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전쟁이라는 불행 속에서 사랑의 꽃이 피기도 하고 행운의 여신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최연철, 2024. 2. 13 (wrtn으로 그림)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봐 덧붙입니다. 저는 전쟁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군주나 정치가의 욕심에서 비롯되곤 했습니다.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동원되기도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날벼락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애꿎은 백성이나 국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군주나 정치가가 전쟁에 따른 희생을 감당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건 아니지만) 우리도 수많은 전쟁을 치른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정말 헤아릴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단지, 이야기의 소재와 주제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행복,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행복한가 싶으면 어느새 불행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떨까요? 항상 행복,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겠죠!. 아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힘들고 치열하게 인생을 헤쳐 나갑니다. 다른 아이들의 신체적. 언어적인 공격을 견뎌내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선제공격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폭력적이어야 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폭력적인 이야기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고 무시하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삶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폭력이 사라지진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역설적일 수 있지만, 이야기가 상처를 줄수록 그 이야기를 읽는 우리의 삶은 더욱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래 행복, 행복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었던, 예기치 않게 찾아온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감동을 얻습니다. 처음엔 행복했다가 불행이 찾아오고 그 불행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감동을 받게 됩니다. 행복, 행복한 이야기는,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Burningham, J. (2017). 우리 할아버지. 서울: 비룡소.
Maruki, T.(1980). Hiroshima No Pika. Sydney: Lothrop, Lee & Shep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