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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Feb 14. 2024

이야기는 깨달음을 선물해줄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있음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어떻게 하죠? (8)

프란츠 카프카가 어릴 적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종류의 책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때려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요? (...)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하는 재앙과 같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과 같은, 멀리 떨어진 숲으로의 유배와 같은, 그리고 자살과 같은 책이 필요합니다. 책은 우리 내면에서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어야 합니다(Kafka, 1977: 16쪽). 1)


최연철, 2024. 2. 14 (midjourney로 그림)


카프카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아이들의 이야기에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인공이 상처를 입고 마침내 죽고 마는 소설을 읽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그 이야기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설이 내 머리를 강타하는 로켓펀치가 되기를, 그 이야기가 나를 짓누르는 커다란 내면의 빙산을 깨는 쇄빙기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스트라서 그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사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도끼와 같은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들은, 다듬어지길 바라는 거친 대리석 덩어리인지도 모릅니다. 도끼로 대강 잘라내고 조각도로 세심하게 다듬어야 하는 옹이 많은 나무 조각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도끼와 같은 소설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책이 우리 머리를 세게 때린다니까... 이상한 상상을 해봅니다. 책을 세로로 세워서 맞아보신 적 있나요? 상당히 아프니까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돌 수도 있습니다. 책은 그렇게 망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카프카가 말한 ‘상처를 입히는 종류의 책’은 날카로운 책이나 무기가 될 만한 책은 아니겠지요!  진짜 도끼가 아니고 상상의 도끼입니다. 물리적 충격이 아니라 내면적 충격을 말한 것입니다. (이런 설명... 화니시죠!)


물리적 상해와 내면적 충격을 비교하기 위해 신체적 공격과 언어적 공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어린아이들도 공격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그렇습니다. 칼과 총을 가지고 노는 아이도 남자아이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공격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아이들의 공격성은 상대방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신체적인 상해는 표면적으로 눈에 띄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이 공격적이라고 믿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말로 그럴까요? 신체적 공격성 프레임에서 벗어나 언어적 공격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습니다. 여자아이의 공격성은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인, 신체적인 손상을 수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만...) 언어적 공격의 경우, 공격의 결과에 따른 가시적인 손상이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격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죠! (언어적 학대를 포함하여) 언어적 공격은 신체적 공격보다 훨씬 더 지속적이고 훨씬 더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언어적 공격성에 대해서는 연구조차 별로 없습니다. 신체적 공격은 양화(수치화)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형태를 특정할 수 없는 언어적 공격은 양화하기 곤란해서 양적연구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공격은 공격의 횟수와 강도를 숫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적 공격은 숫자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어떻게 보면 공격인 것 같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공격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물리적 상해와 내면적 충격을 비교하려고 예를 가져오긴 했는데, 설명을 마치고 나니까 원래 하려던 이야기보다, 예에 대한 설명이 더 장황해져 버렸군요.


사실 언어적 공격과 신체적 공격에 대한 제 이야기도 한쪽에 치우친 감이 있습니다. 신체적 공격에 대해선 모두 알고 있지만 언어적 공격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 한 것 같아서 공정을 기하려던 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편파적인 주장을 하고 말았군요.




Kafka, F.(1977). Letters to Friends, Family, and Editors. (trans. Richard and Clara Winston). New York: Schocken.




1) 카프카가 친구 폴락에게 보낸 1904. 1. 27자 편지의 원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I think we ought to read only the kind of books that wound and stab us. If the book we are reading doesn't wake us up with a blow on the head, what are we reading it for? (...) We need the books that affect us like a disaster, that grieve us deeply, like the death of someone we loved more than ourselves, like being banished into forests far from everyone, like a suicide. A book must be the axe for the frozen sea inside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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