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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Feb 15. 2024

수용해야 한다는 말은 수용하기 어려움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으면 어떻게 하죠? (9)

아이들은 천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동심천사주의(또는 천사동심주의)’라는 말은, 아이들이 순진무구하면 좋겠다는 어른들의 바람을 담고 있는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 말을 처음 사용했다는 소파 방정환 역시 자신의 문학에 ‘지혜로움, 용기, 동정심, 희생정신과 같은 현실적인 덕목(박지영, 2005: 175쪽)’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방정환 님의 소설 속 주인공 역시 사악한 어른들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방정환 님이 활동하던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주인공이 악에 맞서 싸우는 건 당연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당시 문학이 계몽주의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주장한 ‘동심천사주의’가 무색하게도, 그의 문학에 표현된 어린이들이 착하고 순진무구하고 맑은 아이가 아니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아이들은 천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니 포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순수와 순진이 서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을 ‘순수’와 ‘순진’에 가두어두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항상 밝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또한 정말 헛되고 헛된 소망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이들 이야기에 부적절한 내용이 담기는 건 영 개운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에서는 동심천사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심정적으로는 ‘동심천사주의’를 믿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밝은 이야기만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매우 역설적인 해결책입니다만, 적절하지 않은 이야기일수록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용인하고 수용해 주어야 합니다. 다소 행동주의적인 처방이긴 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용해 주면 사라집니다. 정말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려고 합니다. 우리는 자물쇠를 걸어둔 일기장에 일기를 쓸 때도 자기 검열을 하곤 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인데도... ‘이런 말을 써도 되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검열은, 한 편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습관을 기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최연철, 2024. 2. 15 (midjourney로 그림)


만약 어느 누가 검열해도 그 검열에 통과할 수 있는 글을 썼다면?


그 글은 읽어볼 가치가 없는 글입니다. 읽어보나 마나입니다. 아무 내용도 없는 밋밋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심지어는 일기를 쓸 때도 검열이 발목(, 아니 손목)을 잡곤 합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할 때도 검열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표현은 이래서 안 되고 저런 표현은 저래서 안 된다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망설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수용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수용해 줘야 한다는 말을 수용하기가 쉽진 않습니다!




박지영(2005). 방정환의 '천사동심주의'의 본질: 잡지 '어린이'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제51집, 14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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