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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Dec 05. 2023

춤추고 싶지 않은 고래

한글 공부, 절대로 시키지 마세요 (5)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은 어릴 때부터 글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물론 그 이전에도) 그랬다고 합니다. 다음은 연암 박지원 님의 글입니다.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글을 읽는 것이다. 어린 아들이 글을 읽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도 글을 읽으면 부모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자 없다. 아아! 그런데 나는 어찌 그리 읽기를 싫어했던고.

<박지원(2007). 연암집 (하). (신호열, 김명호 역). 파주: 돌베개. 377쪽>      


글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바람은 과거나 현재나 한결같고, 그걸 하기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도 어쩌면 그렇게 변한 게 하나도 없을까요!     


그런데 가끔은 부모의 간절함에 기꺼이 응답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한글을 뗀 아이들! 그런 자녀를 둔 부모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 시켰는데 얘가 그냥 한글을 떼어 버렸던데!”


정말 부럽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요? 정말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을까요?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이 스스로 한글을 떼는 경우는 그리 흔할 것 같지 않습니다.   

   

칭찬이 있었고 보상이 있었을 것입니다. 꾸중도 있었겠지요!


Image by Alexas_Fotos from Pixabay


꾸중과 칭찬이 동시에 들어있는 동시 한 편, 만나보겠습니다.      


내 공책

          전남 완도 신나일      


이날은 왜 그랬을까?

삐뚤삐뚤 공책 글씨

알고 보니 부모님께

꾸중 듣고 썼어요.      

이날은 웬일일까?

깨끗한 공책 글씨

알고 보니 선생님께

칭찬받고 썼어요.

         (이오덕, 1993: 71쪽)     


이오덕 님이, 머리로 쓴 글이고 어른이 쓴 시라고 혹평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시의 수준이 아니라 시에 아이들의 바람(꾸중받고 싶지 않은 마음과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부모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스스로 한글을 떼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겁니다. 뭐라도 했을 겁니다. 꾸중이라도, 칭찬이라도, 보상이라도 했을 겁니다.     

 

칭찬이나 보상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저도 ‘보상’ 좋아합니다. ‘칭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며칠 동안, 제가 얼마나 칭찬과 보상에 집착하는지 깨닫게 되어 매우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브런치에서도(는) 칭찬과 보상이 매우 중요하더군요. 브런치에 글을 올린 다음부터 구독 수와 조회 수를 점검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원래 속물이었지만, 점점 속이 꽉 찬 속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농담입니다, 아시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농담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2023년 12월 5일 브런치 글 랭킹 화면 캡처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님의 칭찬에 매우 취약합니다. 칭찬은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기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받으면, ‘아! 내가 이 집단(가족)에 소속되어 있는 게 맞구나!’라는 생각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성인(부모)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 정말 안간힘을 쓰곤 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성인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매우 오래전에 프로이트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칭찬은,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절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 오늘 가방을 새로 하나 샀습니다. 새로 샀으니까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잖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싶은데... 웬일인지 아무도 새 가방을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세웁니다. 가 먼저 칭찬을 해 주기로! “너 머리 스타일 너무 멋있다!” 이렇게 말입니다. 칭찬을 받은 친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느닷없이 칭찬을 받아 당황하긴 했지만 칭찬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를 스캔해 봅니다. ‘아! 가방!’ 바로 칭찬 들어갑니다. “야! 네 가방 정말 세련되었네!”     


가방을 자랑하고 싶은 목적! 달성했습니다. 타인을 통제하려는 목적! 달성했습니다. 칭찬으로 말입니다!   

  

성인이 아이들에게 하는 칭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이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칭찬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혹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칭찬을 받은 아이는 자신의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그 칭찬 값을 하기 위해 노력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칭찬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결국 칭찬은 아이를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칭찬과 보상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다만 칭찬과 보상‘만’으로 아이를 움직이려고 하는 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아이들을 멍들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최연철, 2023. 12.5 (Microsoft Bing Image Creator로 그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Blanchard 외, 2014)’라는 책 아시죠? 저는 그 책 제목이 정말 마음에 안 듭니다. 정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것 같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고래는 도대체 왜 춤을 추어야 하는 걸까요? 고래는 고래대로 할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난 춤추고 싶지 않았는데!”





박지원(2007). 연암집 (하). (신호열, 김명호 역). 파주: 돌베개.

이오덕(1993). 어린이 시 이야기 열두 마당. 파주: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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