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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철 Dec 07. 2023

창안적 철자를 쓸 줄 안다면!

한글 공부, 절대로 시키지 마세요 (7)

그동안 형식적 한글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너무 부정적인 면만 강조한 것 같습니다. 저는, 원칙적으로는, 유아교육기관에서 한글 공부를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원칙을 모든 아이에게 적용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게젤이, 만 5세 이전에는 글자 공부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던 시기는 1920년대였습니다. 거의 1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아이들의 발달 수준은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게다가 아이들마다 발달의 개인차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아이에게 같은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창안적 철자(invented spelling, 발명철자)를 쓸 줄 아는 아이들은 한글 공부를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창안적 철자는, 말 그대로 창안해서 쓰는 철자를 말합니다. 아이들은 관습적 철자(표준철자)를 쓸 수 있게 되기 전에 자기 나름대로 글자를 만들어서 쓰곤 합니다. 예를 들어, 공책을 쓰고 싶은데 ‘공체’라고 쓰거나 다리미를 쓰고 싶은데 뒤집은 모양으로 쓰는 경우, 모두 창안적 철자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아래 사진 참고). ‘공체’처럼 받침을 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해바람기(해바라기)처럼 받침이 없어야 하는데 추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창안적 철자의 예 (출처: 조선화, 2003: 48-50쪽)


위의 예는 표준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례적 철자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 정도로 표준철자와 유사한 모양의 자음과 모음을 쓰거나 알아볼 수 있는 아이라면, 표준철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간주해도 됩니다.


창안적 철자는,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쓰기가 자기 마음대로 써지지 않을 때의 철자를 의미합니다. 소리 나는 대로 쓰거나 글자의 방향을 바꾸어서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정도의 창안적 철자 쓰기가 가능하다면, 단순히 ‘읽기 쓰기에 관심 가지기’ 정도가 아니라 글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안적 철자가 아닌 예 (출처: 조선화, 2003: 80쪽)


그런데 위의 예시는 어떤가요? 원이나 특정 도형을 쓰고 그걸 글자로 읽거나, 문자와 비슷하게 쓰기를 하긴 했으나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기는 어려운 경우, 창안적 철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광의로는, 창안적 철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유사 문자와 긁적거리기식의 글자를 쓰는(그리는) 경우라면 절대 한글 공부를 재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창안적 철자 쓰기가 가능하다고 해서 반드시 한글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그냥 가능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투자 대비 성과의 측면에서 보자면, 적절하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나중에 해도 됩니다. 아이들이 졸라대면, 그때 가르쳐주면 됩니다.


또 한 가지! 창안적 철자를 쓸 줄 아는 능력이 연습과 훈련의 반복을 통해 ‘강제로(?)’ 가지게 된 능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런 경우라면 한글 공부의 중단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조선화(2003). 한국 유아의 창안적 철자 발달 과정 분석.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 청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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