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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Oct 02. 2020

빛나는 나의 우울

'무뎌짐'이라는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우울증에 대이야기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내가 처음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아마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큰 인기 이후에 생긴 변화이지 싶은데,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왜 특별히 더 힘든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점은 반갑고, 그 고통의 크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고 그들도 어쨌든 잘 살아가네' 하며 우울증을 진짜 감기처럼 가볍게 여기게 되었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 같은 거야 - 라는 거짓말


우울증이라는 건 환자들이 잘못해서 앓게 된 것이 아니며 생각보다 흔한 질병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자주 사용 '마음의 감기'라는 말. 하지만 경험해 본 사람들 모두가 알듯이, 우울증은 감기와는 전혀 다르다. 어떤 감기도 3년을 따라다니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고, 일상생활을 완벽히 파괴해 직장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도록 두지 않는다. 병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사람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지 않을 뿐 아니라 죽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살고 싶은 마음에 농락당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붙잡고 견뎌가도록 하지도 않는다. 마음의 감기는 개뿔. 그럼 내가 겪었던 건. 그건 뭐였는데?




나는 기질적으로 우울한 아이였다. 끝없이 내면으로 침잠하고 그럴수록 빛나는 아이. 우울은 나의 적이자 친구였고, 본질이자 수단이었다. 우울은 중요한 순간마다 내 인생의 순항을 방해했으면서도 뻔뻔하게도 지막의 마지막까지 내 곁에 남아 었고, 나만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태어난 것 같아 슬 순간에도 그 무게를 잊고 싶어 쓴 글 다른 사람과 나를 연결해 주었다. 나는 우울을 안고도 살았다. 이유 모를 행복에 들뜨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반짝임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울과 함께 잘 살았다. 그런데 우울증은 달랐다.


그건 침잠할 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부유하는 정신. 나는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처럼 무가에 휩쓸려 다녔다. 아무렇게나 하고 조금 뒤 나의 병을 고백하며 이해해 달라고 빌었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은 언제나 최악인 것 같았고 벗어날 방법은 죽는 것 밖에는 없다고 아주 빈번하게 생각했다. 겨우 최악의 순간을 빠져나오고 나서는 그때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결정을 내렸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유가 뭐였더라? 도대체 뭐가 그렇게 나를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던 거지?


평생 우울을 안고 살았던 나도 버티기 힘들었다. 체력을 길러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로 만드는 것처럼 마음을 운동시켜 마주하는 상황들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겪어본 사람이 한 말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건 심력() 같은 걸 길러서 될 일이 아닌데. 결국 많은 환자들이 그렇듯 절박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고, 어찌 됐든 치료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약을 끊었고, 우울증은 한번 더 나를 덮쳤다. 지금은 두 번째 약을 끊고 약 1년이 지났다. 대부분은 잘 지내고 가끔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누구나 겪을 어쩌다 하루, 쉽게 잠들 수 없는 날에도 나는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후유증 중에서 내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것은 '무뎌짐'이다. 우울함과 예민함은 내가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데에 성가신 장애물이었지만, 동시에 세상을 읽고 쓰는 데에 유용한 밑바탕과 도구가 되어 주었다. 남들이 지나간 자리에 혼자 남아 더딘 내 걸음을 확인해야 하는 건 분명 슬픈 일이었지만, 삶을 스치는 것들에 집중하고 곱씹으며 아주 천천히 인생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우울증을 이겨낸 나는 우울을 안고 사는 사람으로서 낼 수 있었던 빛을 전부 잃어버렸다. 모르고 놓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무던해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동안 나의 온 인생을 들여 가꾸어 온 날카로움이 무뎌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선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나는 평생 내게서 떼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우울을 (대부분) 떨쳐냈다. 이제 어렴풋하게 내 주변을 감싸고 있던 우울을 잃고 대책 없는 낙천을 얻어 모든 일이 시간과 함께 대충 흘러가려니, 한다. 많은 일이 쉽고 가볍다. 버겁고 무거워 나를 가라앉혔던 일들이 '그것 봐, 나 별 거 아니지?' 하며 보란 듯이 나를 놀리고 스쳐간다.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구름이 걷히고, 생애 최고로 명징한 생각들 사이를 걷는다. 그렇게 글을 쓰게 하는 내 눈과 손을 잃었다. 최근에는 거의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몇 주를 보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반, 이 명료한 사고방식을 최대한 즐겨볼까 하는 생각이 반이다. 가볍게 지나쳐버린 것들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어떤 이들은 항상 이렇게 간단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신기하고 부럽다.


많고 많은 우울의 모습 중에 나의 우울은, 구름 낀 하늘에 흐리게 빛나는 별이었다. 태양처럼 환히 빛나지도 않았고, 달처럼 따스히 비추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 별이 뿜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걸었다. 앞으로 걸었는지, 제대로 된 목적지로 향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걸었다. 지금은 그 별을 잃고 잠시 멈추어 서있다. 맑은 하늘 아래 따가운 햇살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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