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급한 탓에 웬만해서는 유명한 맛집도 잘 가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게 너무 싫기 때문이에요.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그걸 끝마칠 때까지는 다른 일에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책도 무조건 사서 봐요. 대기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짧게는 몇 주에서 몇 달을 기다려야지만 예약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게 너무 싫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피할 수 있는 기다림은 모조리 피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피해 갈 수 없는 기다림에 딱 걸리고 말았어요. 저희 부부는, 난임입니다.
햇수로 결혼 3년 차. 슬슬 아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전부터 함께 만들 가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으므로 크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게 된 후,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일상을 상상하면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 곁에 아이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 같았어요. 그렇게 몇 개월쯤 자연임신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급할 건 없지만 기왕 결심한 것 빨리 아이가 생기면 좋겠다 싶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서 정해주시는 숙제 날짜를 받아서 자연 임신을 시도하기를 세 달, 그래도 소식은 없더라고요. 이번엔 과배란 유도제를 먹으며 두 달가량을 노력했지만 여전히 기다리는 기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남편과 저 두 사람 모두 검사를 받았어요. 남편 쪽이 난임이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수치라고요.
결과를 듣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제가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라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도 저에게만 "그러니까 좀 편하게 생각하고 모든 걸 대충 넘겨버리라"고 조언했었고요. 솔직히 좀 울컥했습니다. 그간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마음 졸였던 게 억울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남편의 마음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속상할까, 얼마나 미안할까. 실제로도 남편은 저에게 너무 미안해했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잘못한 것도 아닌데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참 짠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은 뒤로하고 저희 두 사람은 난임 시술을 받기로 결정했어요. 아이를 가지려면 어차피 해야 하는 거니까 씩씩하게 이겨내야지, 했죠.
약 좀 먹고, 주사 좀 맞고 하는 건데. 뭐 별 거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난임 시술은 참 힘들었습니다. 그동안은 난임 휴직이 그저 회사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그게 얼마나 한심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죠. 약을 먹으며 제 몸은 빠르게 변했습니다. 평생을 마른 체형으로 살아온 저였는데, 불편할 정도로 온 몸이 부어 들어가는 옷이 없었습니다. 결혼반지도 맞지 않았어요. 옷이야 펑퍼짐한 옷으로 새로 사 입으면 된다고 해도 아픈 배는 정말로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물어도 "원래 그렇다, 생리할 때쯤 되면 나아진다"는 말뿐이었으니 배란기 즈음부터 생리 전까지는 타이레놀을 먹으며 버티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어요. 소화가 잘 되지 않고 항상 가스가 차는 것은 덤이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정신적으로도 지쳐갔습니다. 체력이 좋은 편인 저에게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견디는 걸까 매일 생각했어요. 와, 이거. 할 짓이 못 되는구나 했죠.
몸이 힘든 것도 문제였지만,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을 찾아야 하는 것도 참 지치는 일이었어요. 인공수정을 결정하고 나서 약을 먹고, 주사를 타러 매일 같이 병원을 드나들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나면 날짜를 잡기 위해 병원에 갔고, 시술을 하러 또 병원에 가야 했죠. 2주에 5~6번은 병원을 찾았던 것 같아요. 주말부부인 탓에 혼자 병원을 찾아 가만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으면 왜인지 모르게 슬퍼졌어요. 병원에 오는 게 뭐 별 일이라고 이렇게 속상하고 짜증이 나는지. 남편에게 하소연하고 드잡이를 해도 나아지는 건 없을 텐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와중에 남편은 왜 이렇게 착해 빠져서 '미안하다', '고생이다' 하는 말들을 달고 사는지. 내가 스스로 주사를 놓을 때면 왜 미안하다며 눈물짓는지. 화도 못 내게!
원인이 내게 있지 않은데도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뭔가 준비해야 하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도 저를 괴롭게 만들었어요. 남자는 할 수 있는 게 술/담배 줄이기, 운동 꾸준히 하기, 영양제 챙겨 먹기 정도밖에 없더라고요. 남편은 원래 생활 습관이 좋은 편이라서 딱히 신경 쓸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반면 저는 호르몬제를 먹으며 불편한 몸을 오롯이 감당해내야 했죠. 남자가 먹거나 맞아야 하는 호르몬제는 연구도 하지 않고, 만들지도 않았던 건 지금껏 남자 의사들이 의학계의 주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일까요! 이글거리는 분노가 마음속에 들어찼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만 고생해야 해! 유치한 생각으로 짜증이 났어요.
자연스럽게 임신 사실을 알게 돼도 마음이 복잡하다는데, 인공적으로 임신을 준비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기분을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임신으로 몸이 변하기 시작하면 이전의 체형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무서워진다고들 하던데, 저는 과배란 주사를 맞으며 이미 퉁퉁 불은 몸을 확인하게 되었으니까요. 운동을 꾸준히 해왔고, 몸을 소중하게 관리해 왔기 때문에 매일 조금씩 더 붓는 몸을 보면 이상하게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얼굴도 퉁퉁 부어 못 생겨지는 것 같았고요. 제가 내린 결정이었지만 참 슬펐습니다. 매일 저녁 주사약 냄새를 맡으며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저의 자신감을 확인했고, 제 정신은 조금씩 더 피폐해졌어요. 결국엔 저도 난임 휴직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고문에 가까웠어요. 몇 번이고 도전할 수 있는 일이라면 조금 나았을까요. 저에게 주어진 임신의 기회는 1년에 12번밖에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난포가 잘 자라지 않는 달에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더 잘 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은 정말 견디기 힘들더군요. 이렇게 해서까지 꼭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걸까, 울며 생각하다가도 인터넷에서 육아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읽어보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면 나도 모르게 아이를 당연히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잡해졌어요. 포기하고 싶지만 그 결정마저도 쉽지 않더군요.
아직 저희 부부의 고통스러운 기다림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혹시 모를 소식을 두근대며 기다리지만, 또 한 번의 실망이 찾아와도 잘 이겨내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마침내 아이가 찾아와 주었을 땐 그만큼 더 큰 기쁨이 있겠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려고요. 기다림 가운데 쓴 오늘의 이 기록도 얼마 후엔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과거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