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체적으로 쓴다

by 이남희

좋은 글과 평범한 글의 차이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에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강조하는 게 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글 잘 쓰는 비법이 있다고들 하지만 내가 첫 번째로 꼽는 것은 구체적으로 쓰기입니다.”

질문이 날아온다.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쓰라는 겁니까?”

상식적이거나 피상적인 표현은 안 되고…… 설명이 자꾸 길어진다.

그래서 적당한 답을 마련해보았다.

“쓸 때 왜 내가 말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지? 하고 고개가 갸웃해질 정도로 씁니다.”

어려운 요구인 모양이다.


사실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건 ‘용건만 간단히’라는 우리의 일상적인 습관과는 배치된다. 특히 남성들이 그렇다. 우리 사회에선 자랄 때 어른들에게 이런 잔소리를 듣는다. 과묵해야 한다. 공산당이냐, 왠 말이 그렇게 많냐? 말 많으면 미움받는다 등등. (사실 남녀 불문하고 변명이 많으면 비호감이긴 하다.) 심지어 길게 설명하면 중간에 끊으면서 “됐고, 그래서 요지가 뭐야?” 라며 요약해서 말하라고 추궁당하기도 한다. 이건 청소년기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맞닥뜨리는 현상이다. 결론만 산뜻하게 내놓으면 스마트하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알게 모르게 이런 식으로 훈련받기 때문인지 몇 줄 쓰지 않았는데도 할 이야기를 다 했다고 느껴서 더 이상 뭘 더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남성이고 학력이 높을수록 심한 것 같다.

뭐 나쁘진 않지만, 이 국면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사항이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다. 내 의견을 알린다거나 논문 리포트 같은 걸 쓴다면 이 정도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상에세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목적이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감정이입을 하게 되어야 하는데, 그건 구체적인 정황이 독자의 머릿속에 그려졌을 때 일어난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라는 것은 통상적이고 상식적인 의견을 내놓지 말고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정황을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특히 일인칭 ‘나’ 주어 문장으로 엮어지는 일상에세이에서는 구체적인 경험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① 나는 매일 어학원과 집을 오가며 영어공부에 매진하느라 놀 시간이 없었다.

막연한 내용이다. 독자는 열심히 공부했다는 정보만 얻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자.

② 친구들을 불러 노는 건 엄두도 못냈다. 영어를 익히기 위해 평일 하교 후에는 3, 4시간 주말에는 6시간 이상 현지방송을 들으며 공부했다.

나아지긴 했으나 대략적인 어학연수 생활을 알려줄 뿐이다. 독자가 감정이입 하여 공감하기엔 애매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구체적으로 그려서 독자가 마치 그 경험을 하고 있는 듯이 느끼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 혹은 사진 한 컷을 글로 보여준다고 가정하자. 그러려면 내가 보여줄 장면의 틀을 메모하여 머릿속에 그리면서 써야 한다.

장면을 그릴 때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장소, 시간, 등장인물들, 갈등이나 문제. 이 4가지를 창작노트에 메모해보자.


시간. 2005년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할 때라고 하지 말고 특정한 그 중 특정한 하루를 잡는다. 계절, 날짜, 시각까지 세밀하게 짚을수록 묘사가 강력해진다.

장소, 막연하게 나라 이름이 아닌 도시, 거기서도 내가 살았던 동네의 거리, 그 가운데 내가 살았던 집, 방까지. 그 방은 어떤 모습인가? 벽은 페인트칠이 오래되어서 누렇게 변색 되었고, 방의 대부분을 차지한 침대는 다리가 짝짝이라 몸을 내려놓으면 삐걱거렸고, 책상은 손바닥만해서 책 두 권을 놓으면 남는 공간이 없었으며……

그런 상황에서 어학원 친구들이 나타난다. 해변으로 피크닉 가자고 찾아온 것이다. 떠들썩한 그들의 말소리에 집주인이 눈치 주러 등장한다. 그 순간 나의 심정은 당황스럽고, 아쉽고, 괜히 화도 난다. 아니면 놀기를 거절하고 공부에 매진하는 자신에 대해 뿌듯하다……


아래 희곡에서 설정을 참고하자.

등장인물 : 조, 닐, 맥……

때 : 밤 아홉 시 경

장소 : 런던 부둣가의 싸구려 주점.

벽에 걸린 석유램프의 희미한 불빛이 더럽고 어수선한 실내를 비추고 있다. 왼쪽으로 바, 그 앞에는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 나 있고 오른쪽으로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널려있고 뒷켠으로는 외부 출입문이 나 있다.

게걸스러운 여급 하나가 술에 취한 채 테이블 위를 걸레로 문지르고 있다. 기계적으로 팔만 앞뒤로 움직일 뿐 눈은 반쯤 감긴 채이다.

바 한쪽 끝에 뚱뚱한 주인 초가 서 있다. 붉고 울퉁불퉁한 얼굴 속에 실눈이 가려져 거의 안 보일 정도다……. <긴 귀향 항로/유진 오닐>


이처럼 창작노트에다 정황을 준비한 다음 그때 거기서 일어난 일을 그림 그리듯 쓴다.


③ 오후 3시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 앞에 앉아 라디오를 켜고 노트를 펼쳤다. 방송에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를 제대로 알아들으려고 귀를 곤두세웠다.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고, 노트에는 몇몇 단어들이 맥락없이 늘어놓일 뿐이었다. 초조해졌다. 책상을 탕탕 쳤다. 노트에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벨이 울렸다……


이렇게 구체적인 정황을 특정하여 그 시절의 내 삶을 대표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순간을 모두 다 이렇게 글로 쓸 수 없다. 내가 경험한 모든 순간을 그대로 다 그린다는 건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일대일(1:1) 지도 이야기처럼 현재를 압도해버릴 것이기에 불가능하다. 그 시절을 떠올렸을 때 내가 느꼈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순간을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라는 의미일 뿐이다.

나의 그런 감정을 독자들이 공감해주기를 바라기에 우리는 글을 쓰는 것이다. 슬펐다, 기뻤다는 정보만 알리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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