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은지 Aug 11. 2017

2-7. 장판

파도 없이 서핑


1.

날씨가 흐려진다면

차라리 바람이라도 거칠어졌으면...


하늘만 잔뜩 어두워졌을 뿐이었다.

지구가 멈췄다는 듯이

날씨는 그렇게 멈춘 것 같았다.


바람도 약하고 파도도 약한...

아니, 없는!


바다는 한 장의 장판이 되었다.



2.

수상스키를 타기 가장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 일몰 직전.

강의 표면이 가장 잔잔한 때가 적기이다.


수상스키는 고속으로 달리는 보트 뒤에 매달려 주행해야 하기 때문에

잔잔한 물 표면이 깨끗한 라이딩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웨이크보드(수상스키 포함)는 물살이 거칠거나 파도가 높을수록 라이딩이 힘들어진다

 / 2017년 7월/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캡처


서핑도 이름 아침, 일몰 직전의 '물결'이 좋다는 건

지난 시즌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태풍이 왔을 때보다도 더 최악의 상황이다.


"장판"


서퍼들은 파도 하나 없는 평평한 수면을 그렇게 부른다.

바다가 "장판"인 날은 서핑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다.

최악이다.


'파도를 타는 것'이 서핑.
파도가 없는데 서핑이 될 리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글 '13. 바다결'의 3, 4번 참고



3.

일생에 처음 보는 동해 바다의 상태였다.


동해로 휴가 올 때마다 태풍이어서 괴로웠는데

이제 와서 잔잔한 바다라니!


아쉬운 대로 서프보드를 바다에 '띄웠'다.

동행하신 어머니께서도 튜브를 '띄우'셨다.

사실상 수영장에서 떠있는 상태와 같았다.

날은 또 여름이라고 뜨거우니

그렇게 모녀가 물 위에 동동 떠 있었다.


...

'패들 연습이라도 해 볼까?'

너무 잔잔한 파도가 패들 연습을 지루하게 했다.


전에 인터넷으로 둘러봤던 서핑스쿨에서

기초 훈련을 수영장에서 하던 게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스탠딩 연습?'


내 서핑의 걸림돌, 스탠딩.

이날의 잔잔한 파도 덕에 스탠딩 연습이 가능했다.

파도가 있는 상태에서의 스탠딩 연습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튜브에 몸을 의지하시던 어머니께서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스탠딩 시간에

박수를 쳐주셨다.


파도 없는 바닷가. 다들 바다위에 둥둥 떠있다/ 하조대 서피비치/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4.

스탠딩이 수월해지기 시작한 지점은

서프보드가 아닌 먼 정면을 보는 순간이었다.


"멀리 보세요~"


처음 서핑을 배울 때

강사님들이 그렇게 애절하게 외치던 그 말.

그거 하나 지키지 않아

여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체력, 서핑 이론...

서핑을 배우는 데,

서핑을 잘 하는 데에

많은 기술과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작은 부분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서핑이었다.

이번 시즌, 계속 부딪치는 부분이었다.



5.

'내가 창문을 닫고 출근했던가?'

출근길의 이런 의문들은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렇듯 우리의 대부분의 행동들은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서핑은 작은 동작 하나도' 의식'하게 만들어줬다.


물 위에 서고 싶다.
그렇다면
신체가 아닌
 시선부터 통제해야 한다.


인간이 두 다리로 버티고 선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한 메카닉의 산물이라는 걸

서핑을 통해 다시 배웠다.

근력, 자세... 시선까지 필요했다.


하조대 서피비치/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1. 다음 글, 2017년 8월 13일(일) 발행 예정.

2. Cover Photo by Ryan Jacobs on Unsplash

3. 2017년 8월 17일, 4번 글의 단어 수정.

매거진의 이전글 2-6. 서핑 없는 서핑라이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