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링어Stringer
1.
고질적 문제, 스탠딩.
어느 정도 스탠딩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밀어 타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중 달리기- 보드 위로 올라가- 스탠딩
원래 없던 수중 달리기까지 더해지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패들을 하는 것도 아닌데
팝업, 스탠딩이 힘들어졌다.
조금 더 하다 보니
보드 위로 올라가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점점 느려지는 수중 달리기,
힘겨워지는 보드에 오르기,
아무리 교정해도 오른쪽으로만
균형이 깨져나가는 스탠딩.
'시선'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끝으로
이 날은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밀어 타기- 처음 서핑을 배울 때, 서핑 강사분들이 밀어주시는 걸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발이 닿을 정도의 수심에서 파도에 맞춰 보드를 민 후 올라가 타는 방법이다(너무 수심이 낮으면 핀fin이 나간다). 보통 파도가 다 부서진, 거품이 생기는 곳에서 하게 된다. 수심이 낮기 때문에 부담이 덜 하며, 라인업을 나가거나 파도를 잡기에 무서운 초보라면 이 방법으로 서핑을 즐기기 좋을 것이다. 또한, 파도를 잡을 줄 안다고 해도, 파도가 너무 상태가 안 좋은 경우에 아쉬운 대로 서핑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의 경우 밀어 타기를 이로부터 2년 후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왕초보일 땐 이 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2.
누가 보면 거대 파도와
사투라도 벌였다 생각했을 것이다.
기운이 쭉 빠진 채로
파도도 없는 모래사장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 속에 모래가 들어갈까 봐
아예 드러눕지도 못하고 말이다.
선크림과 선스틱을
떡이 되도록 발라도
화상을 입기 쉬운 곳이 바닷가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힘들어
그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앉은 채로 움직일 수 없었다.
**서핑과 화상: 해변에선 선케어 제품, 미러 선글라스가 필수다. 서퍼들은 선케어 제품을 피부가 안 타려고 바르는 게 아니라, 화상을 안 입으려고 열심히 바른다. (참고로, 고성능 제품을 매우 두껍게 발라도 얼굴이 탄다.) 서핑의 자외선이 일본 연예인 '기무라 타쿠야'의 미모를 앗아간 가장 큰 주범으로 추정된다고 하니(듣기론 서핑광이면서 선케어를 전혀 안 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더 못생겨지고 싶지 않다면 열심히 선케어를 해야 하지 않을까...
3.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원해진 바람.
그 바람에
정신이 든 건지
이 날의 서핑 마무리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무거운 스펀지 보드***...
있는 대로 지친 상태여서
옮기기 귀찮다는 생각으로
멍하니 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
'라인이 왜 이래??'
***스펀지 보드Sponge board: 쉽게 '스펀지 보드'라고 부르며 보드 주 재료가 '스티로폼'이다. '스펀지 보드'는 쉽게 부르는 말일뿐이다(그렇다고 표면이 스펀지 같지도 않은데...). 개인적으로 '소프트 보드 Soft boar'가 차라리 더 나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보드에 대해선 시즌4(;;;)에서 설명 예정이다.
****스트링어Stringer: PU, 에폭시 보드 등 단단한 소재의 보드 제작 시 주로 쓰이는 구조물이다. 파도 등 외부 충격에 의해 단단한 보드가 뒤틀려 손상되는 걸 방지하는 게 목적인 장치이다. 주로 나무 소재이며 표면으로 보이는 건 긴 선 형태다. 보드의 좌우 레일 사이 중앙, 노즈부터 테일까지에 위치한다. 한 개, 많으면 그 이상도 들어간다. 소프트 보드에는 없으며 이용자가 균형 잡기 쉽게 센터에 스트링어'라인'을 인쇄하는 경우가 있다. 참고 링크 'surfer today' 클릭. 지난 글 '4. 비기너의 탄생'의 4번 참고.
4.
두 눈 씻고 보아도
내가 타던 보드의 라인이 이상해 보였다.
노즈 가장 뾰족한 부분과
스트링어 라인이 맞지 않는 것이었다.
왼쪽에서 보나,
오른쪽에서 보나,
노즈에서 보나,
테일에서 보나...
스트링어 라인이 잘못 인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스탠딩 내내 오른쪽 레일이 가라앉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스트링어 라인에 기준을 두고 스탠딩을 하니
그쪽으로 보드가 가라앉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서핑을 처음 배울 때에
강사님들이 주는 팁 중에 공통적인 것이 있다.
"보드에 엎드려있을 때에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보드 위의 무늬를 기억하라."는 것.
왕초보로선
가장 유효한 팁이었다.
그리고 그 감을 잃지 않고 싶어
가급적 한 가지 보드만 타려고 한 것도 있었다.
5.
그런데 이렇게 보드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뭔가 재밌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수준에 맞게 지식을 가르친다.
무늬를 기억하라는 것,
모래사장에서 균형점을 잡아 주는 것,
얕은 수심에서 보드를 밀어주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서핑에 대한 지식과 경험, 센스가 없는 사람에게
'쉽게 가르치기 위한 방법'일뿐이었다.
초심자가 '재밌는 서핑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왕초보를 대상으로 한 가르침의
한계를 스스로 깨닫다니!
항상 틀리기만 하다가
답을 맞춘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이건 정말
스스로를 칭찬할만한 일이었다!
너무 늦은, 2년 만의 업데이트 죄송합니다.
글을 기다려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1. 다음 글, 2019년 05월 15일(수) 발행 예정.
2. Cover photo by Dendy Darm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