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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다시 만나기까지, "아가야 반가워"

평범한 엄마의 평범하지 않은 임신, 출산 스토리

by 김이플


너를 다시 만나기까지.. "아가야, 반가워"


지난 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첫 번째 임신은 유산으로 실패하고 다시 아기가 생기기까지 슬픔의 연속이었다.


두 번의 소파수술은 역시나 몸에 큰 무리였는지

자궁도 회복하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두 번째 소파수술을 집도해주신 교수님은

자신이 다시 임신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피임 더 신경써야 한다고 하셨다.

그후로 6~7개월을 한 달에 한 번씩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회복에 집중했고,

반년이 지나고야 이제 다시 임신 시도해도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계획하고 하는 임신은 마음처럼 될 리가 없었다.


매달매달 임테기의 노예의 삶이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의 무한 루트였다.

무언가를 그토록 간절하게 바란 적이 있었나 싶을만큼 아기를 기다렸다.


피임하면서 자궁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길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임신까지 그렇게 1년이 흐르자 조금은 지쳐갔다.


(물론 시험관을 하는 부부들 입장에서

내가 보낸 시간은 엄살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너무 긴 시간이었다.)


매달 마법의 주기가 찾아올 때면, 호르몬 마저 날뛰어서

잃어버린 우리 아기가 더 크게 생각이 났고

첫 임신하자마자 가입했던 맘카페에 "아기에게 쓰는 편지" 게시판에

아기 태명을 부르짖으며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면서 감정을 토해냈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그 맘카페 게시판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안 생기면 우리 둘이 살면 되지" 마음으로,

반쯤 포기해야 하나 생각도 들면서..

여전히 임산부들 보면, 갓 태어난 아가들을 보면

그렇게 부럽고 예쁠 수가 없었던 시간들을 보내던 중

언제였을까.


친정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신혼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무언가 다른 '촉'에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결과는.. 두 줄이었다.

친정 부모님이 신혼집에 데려다주셔서

당시 다같이 있는 자리에서 임밍아웃이 이루어졌다.


너무너무 떨리고 설레서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태명도 다시 찾아온 복덩이라고 해서 또복이로 지었다.


"우리 또복이, 엄마가 꼭 지켜줄게."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야했고 지키고싶었다.


그래서 병원을 정말 밥 먹듯이 다녔다.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전문 교수님으로 옮기고

대학병원은 응급실이 아닌 이상 딱 정해진 예약 진료일에만 진료를 볼 수 있었기에

동네 산부인과를 돌아다니며 아기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어느 날은 아기집 모양이나 위치가 불안해서,

집에서 태아 심박수를 확인할 수 있는 하이베베 심박수가 잘 안 잡혀서,

입덧이 덜해진 것 같아서 등등 핑계를 만들어 아기를 보러다녔다.


하지만 엄마의 그 불안감이 아기한테도 전해진 것인지

중기쯤 지나자 자궁경부길이도 짧아지고 살살 배도 아픈 것이 조기수축 증세가 나타났다.

결국 입원해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고

이후로도 또 한 번의 입원 위기가 있었지만 정말 입원만은 피하고 싶어서

집에서 침상 안정을 약속하고 집에서 밥먹고 누워서 쉬는 생활을 반복했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하루의 낙은 '태동'을 느끼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태동의 느낌은 정말 잊을 수 없고 신비스러웠다.

첫 태동이 빠른 사람들은 16주만 되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22~23주쯤 이게 태동인가? 싶은 뱃속에서 물방울이 뽀글 하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아기가 조금씩 크면서 정말 뱃속에 물고기가 기어다니는 것 같았다.

우리 또복이는 낮에 조용하고 밤에 정말 태동이 활발했다.

덕분에 이 엄마는 임신 후기부터는 늘 밤잠을 설치고 화장실을 왔다갔다하며 보내야 했다.


22살부터 일을 시작하면서

밥먹고 쉬는 생활은 정말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34주, 35주, 36주.. 늘 쉬기만 하니 시간은 더디게만 느껴졌다.

당시 교수님이 최대한 34주까진 버텨야 한다, 36주 이상은 되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그렇게 조기수축으로 불안했던 와중에

예정일은 아직 한 달 정도 남았는데 36주가 딱 되자마자 "이제 됐다" 싶은 것인지

빨리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36주가 되면서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산책도 하고, 유튜브를 보며 출산 요가 같은 것도 따라하면서

아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37주 무렵, 이른 아침 양수가 터졌고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험난한 출산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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