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놀라고 싶다 _ 선택
*이 작품의 모든 글은 해당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문 대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번역을 존중하되
독자적 영화 해석에 따른 필요로 인해 필자 본인이 되도록 직접 번역합니다.
*조금 더 원활한 설명을 위해 때론 직역하거나
원래 대사의 의미를 차용했음을 감안해주세요*
*작품 제목과 작품에 나오는 대사, 작품 속 고유명사에는 작은따옴표를 달았습니다*
***해석은 얼마든지 바뀝니다.
고로, 절대적이고 완벽한 해석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 언급될 영화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 Sliding Doors : 노트북 _ 한 차례 관람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 The Twilight Saga : 영화관 _ 각각 한 차례 관람, 원작 _ 수차례
- 글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 : 문서화 _ 2주
이보다 최악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문이 내 눈 앞에서 닫혔을 때. 이젠 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문을 통과했을 때.
비루한 비유지만, 인생은 선택 게임이다. 선택이 모든 걸 좌우한다. 그때 그걸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걸 선택했더라면 내 인생은 과연 달라졌을까. 미련은 기실 불만과 원망이다. 불만과 원망이 클수록 선택에 대한 부담감도 덩달아 막중해진다. 선택의 무게는 나날이 버거워진다. 그런데 ‘슬라이딩 도어즈(Sliding Doors)’는 그 무게를 인생에 고루 분산시킨다. 선택은 중요하다, 허나 아무리 중요한 선택도 개중에 고작 하나일 뿐이다.
일단, 해고를 당했다. 그다지 기운 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 와중에 지하철까지 놓친다면? 그렇지 않아도 부글부글 끓었던 속이 폭발할 일 아닌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매치기를 당하고 찰과상까지 입는다. 기가 차다 못해 맥이 빠진다,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인 데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해고당한 것도 가뜩이나 서러운데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는 아르바이트도 해야 한다. 남자 친구는 딱히 도움이 되질 못해도 이러나저러나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의지했는데 몰래 바람을 핀 걸로도 모자라 그 여자를 임신까지 시켰다니, 삶이 이보다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정신적 충격에 당황하다 계단에서 넘어져 수술을 받고 아이를 잃는 산전수전마저 겪고 나니 남자친구에게 인생에서 꺼지라고 말할 정신이 도리어 생긴다. 헛헛하지만 후련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신경이 쓰이는 한 남자를 만난다. 비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속이 답답하다. 지하철을 놓친 비운이 종국엔 남자친구의 외도까지 놓치는 비운을 낳았다는 생각에 통탄스럽다.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삶은 달라졌을까?
일단, 해고를 당했다. 그다지 기운 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이 와중에 지하철까지 놓친다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겨우 탑승한 지하철에서 옆자리 남자가 말을 걸어오는 게 귀찮지만 이참에 울적한 속내를 슬쩍 털어놓는다. 집에 가면 남자친구가 위로를 해주겠지 기대했지만 정작 집에 갔더니 남자친구가 웬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만다.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해고당한 것도 가뜩이나 서러운데 남자친구에게 배신마저 당하다니, 참담한 심정으로 집을 나와 친구네로 향한다. 친구의 집에서 머물면서 감정을 차분히 정리해본다. 과거는 잊고 새롭게 출발하자며 머리를 시원하게 자르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회사를 차린다. 덩달아,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를 술집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고, 사업이 잘되어 어깨가 으쓱거린다. 삶에 다시 자신감이 생기니 전 남자친구의 애걸을 거절하기 쉽고 새 남자친구와의 사랑이 즐겁다. 인생이 좀 풀린다 싶었는데 남자친구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너무 황당하고 좌절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는 오해였다. 남자친구의 아프신 어머니를 위한 하나의 연극이었고 남자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확인하게 되니 더할 나위 기뻤는데, 바로 그때 차에 치여 그 기쁨을 온 생에 누리기도 전에 사망에 이른다. 비운이 도리어 행운으로 이어지고, 도중에 난관을 맞긴 했어도 전반적으로 큰 부침 없이 흘러가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이 삶은 앞선 삶과 비교해서 어떤가? 별반 다를 바 없다.
헬렌(Helen)이 어떤 선택을 했어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만 잘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며 ‘인생 한 방’이란 식의 이야기가 허풍이라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 누군가에겐 그런 선택이 실제일 테니까. 그저 그 선택이 헬렌이 취할 만한 선택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선택은 자기 자신을 전제한다. 헬렌의 꿈이 일확천금이나 슈퍼스타라면 애초에 헬렌이 해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될 필요가 없다. 복권 구매나 노래 연습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흘렀을 것이다. 헬렌이라서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지 않고 택시를 타러 나갔고, 헬렌이라서 기분 전환을 위해 친구와 술집을 갔고, 헬렌이라서 제임스와 연인이 될 수 있었다. 헬렌이 나라면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고, 술집 대신 운동을 가고, 제임스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슬라이딩 도어즈’ 속 두 이야기는 가정법이면서도 헬렌이 헬렌이라서 가능한 추론이다. 고로, 둘 중 어떤 선택이 더 옮다, 더 낫다, 더 좋다 심판하기란 불가능하다. 사람의 삶은 비운과 행운의 개수 혹은, 불행과 행복의 개수처럼 한낱 숫자로 가늠되기에 너무도 숭고하다. 그런 까닭에, 이 영화를 보며 지하철을 놓칠까 잡을까 당사자도 아닌 보는 내가 괜히 더 아슬아슬하고, 헬렌이 게리의 양다리를 도대체 언제쯤 알아챌까 조마조마하는 경험에서 신기하게도 진실이 발각된다. 실은, 생이 안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안달나는 것임을. 분명 곧 있으면 지나갈 소소한 사건일 텐데 마음이 영 진정되질 못하고 안달복달하는 건 그만큼 본인의 인생을 어떻게든 잘 사고 싶다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가 살아있다는 방증일 거다.
이보다 최악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문이 내 눈 앞에서 닫혔을 때. 이젠 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문을 통과했을 때. 그리고 그깟 문 하나 가지고 운명의 계시로 여겼던 내가 어리석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선택했던 바를 후회하지도, 되돌아가서 고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의 나라면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나약한 자의 항변이 아니다. 삶과 세상은 오직 의지로만 살아갈 수 없음을 이해하고 나의 선택에 개입되는 여러가지 우연을 받아들이는 유연적 태도다. 즉, 나는 온전한 의지로만 선택을 한다 믿었겠지만 실은 이 선택도 여러 환경적 요인이나 주변 인물, 심지어 기분에 영향을 받길 마련이다. 예를 들어, 헬렌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선택에 게리의 상황도 한몫했으며, 헬렌이 게리의 배신을 목도한 다음 새로운 시작을 선택하는 행동에도 다름 아닌 친구의 입김이 작용된다. 그러니, 선택이 모든 걸 좌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이 끝이 아니라는 점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선택은 또 온다.
살아가며, 그러니까 나이가 드는 이점은 삶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는 데 있다. 그때는 죽을 것처럼 아픈 실패나 상처, 한탄스러운 선택도 결국 삶의 일부였음을 아주 뒤늦게나마 깨우치게 되면, 하나의 선택이 낳는 극적인 결과도 궁극적으로는 경과에 불과함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슬라이딩 도어즈’는 지하철 하나 놓쳤다고 해서 큰일난다고 호들갑을 떠는 영화도 아니고, 선택 하나가 운명을 결정 지으니 잘 선택하라고 역설하는 영화도 아니다. 선택은 기실 우연이고 그런 우연은 살다 보면 끊임없이 있다고 친절히 일러주는 영화다. 게다가 오히려 영화에서 눈여겨 보아야 하는 건 선택보다는 필연이다. 양쪽의 헬렌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달라도 어쨌거나 게리가 바람 피는 걸 알게 되고 제임스를 만난다. 어떤 우연들이 난립해도 귀착될 인연은 늘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게, 어떤 선택은 필연이다. 따라서 선택은 언제나 본인다워야 한다. 어차피 인생에 비운도, 행운도, 불행도, 행복도 존재할 거라면.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를 보면, 벨라(Bella)가 에드워드(Edward)냐 제이콥(Jacob)이냐 갈팡질팡하던 때가 있다. 한 남자에겐 이런 이유로, 다른 한 남자에게 저런 이유로 마음이 끌리는 벨라가 미래를 보는 뱀파이어인 앨리스(Alice)에게 자신에게 어떤 미래가 놓이는지 묻자, 앨리스는 경쾌하게 대답한다: 두 미래 다 보여. 뿐만 아니라, 벨라가 죽은 줄 알고 에드워드가 생을 마감하는 방법을 고안할 때 앨리스는 에드워드가 마음을 바꿀 때마다 미래가 계속 바뀐다고 했다. 게다가, 볼투리(Volturi) 가문은 컬렌(Cullen) 일가와 그 친구들을 말살하려다가 앨리스가 보여준 미래를 읽고 그 길이 곧 자신들을 파멸할 길임을 알고 마음을 바꾼다. 앨리스는 모든 선택에는 길이 있음을 시사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선택에 앞서 본인의 열의와 의지가 가장 결정적임을 드러낸다. 그 선택에 어떤 배경과 주변의 의견이 간여되어도, 선택은 본인이 한다. 어떤 선택에도 비운, 행운, 불행, 행복, 또 우연과 인연, 필연은 나타난다. 어떤 선택을 해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다. 이왕 불안한 김에, 내가 이겨낼 수 있는 비운과 불행, 누릴 수 있는 행운과 행복, 감사하게 받아들일 우연과 인연, 필연이 존재하는 선택을 한다면 그 삶은 참으로 잘 산 것이 되겠다.
이럴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 문이 내 눈 앞에서 닫혔을 때. 이럴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 문을 통과했을 때. 우린 그저 길을 갈 뿐이다. 문 따위, 우리의 길을 막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의 길은 달라도 끝은 같다. 그러니 지금 당장 무얼 해야 할지 당연 알지어다.
비하인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