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놀라고 싶다 _ 우연과 해석
*이 작품의 모든 글은 해당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문 대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번역을 존중하되
독자적 영화 해석에 따른 필요로 인해 필자 본인이 되도록 직접 번역합니다.
*조금 더 원활한 설명을 위해 때론 직역하거나
원래 대사의 의미를 차용했음을 감안해주세요*
*작품 제목과 작품에 나오는 대사, 작품 속 고유명사에는 작은따옴표를 달았습니다*
***해석은 얼마든지 바뀝니다.
고로, 절대적이고 완벽한 해석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 나는 여전히 놀라고 싶다 _ 우연과 해석
- 중점적으로 다룰 영화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 : 영화관 _ 한 차례, 영화 채널 및 노트북 _ N차 관람
- 글을 완성하기까기 걸린 시간 : 문서화 _ 2개월
내가 이 경험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하여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 )한 우연을 겪고 난 뒤부터. 그 우연은 우연으로 머무르지 않고 어째서 나에게 인연으로 남아 경험이 되어야 했을까? 경험이 준 두려움에 매일을 떨고 있다. 경험이 있어서 그 다음에 비슷한 사건이 닥치면, 심지어 사건의 해결자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을 시엔, 이렇게까지 위축되느니 차라리 땅속으로 영영 꺼져버리는 게 낫겠다고 기도할 정도로 두려움이 목을 옥죈다. 숨이 막히는 경험을 나는 ‘살아낸 바’라고 풀어 쓴다. 난 그렇게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낼 수밖에 없도록 의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사실에 억장이 무너진다.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이렇게까지. 이 상처 많은 삶을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팀(Tim)도 뭔가 내세우긴 커녕 지우고 싶은 기억만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새해 전야에도 귀엽긴 하지만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기도 민망한 실수를 또 저지른 팀이 21살이 되자 아버지는 가문의 비밀을 알려 준다. 바로, 본인의 과거로 돌아가 살 수 있다는 것. 팀은 반신반의하면서 아버지가 말씀한 대로 장롱에 들어가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떠올린다. 놀랍게도 전날 밤인 새해 전야로 돌아가고 팀은 실수할 뻔한 순간을 무난히 넘기고 후회할 뻔한 순간을 만회한다. 이 어마어마한 능력의 힘을 막 맛본 팀에게 아버지는 그 힘으로 앞으로 뭘 하고 싶으냐고 묻는다. 팀은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대답한다. 신이 그 의욕에 보답하듯 때마침 팀의 앞에 여신과도 같은 여자를 보낸다. 기회다! 그런데 팀은 소망을 이루지 못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소심한 팀은 샬럿(Charlotte)에게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두 달 간의 시간만 어정쩡하게 허비한 끝에 마지막날, 그것도 밤에 겨우 용기를 낸다. 샬럿의 대답은, ‘진작 말하지 그랬어!’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지만 침착하자.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그걸로 끝이었겠지만 팀에겐 시간을 거슬러 가는 능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시간을 냉큼 한 달 전으로 되돌린 팀은 이번엔 우물쭈물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샬럿에게 고백한다. 과연 샬럿의 대답은? ‘마지막 날에 물어봐 줄래?’ 결국 팀은 사랑 대신 교훈을 하나 얻는다: “시간여행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를 날 사랑하도록 만들 수 없다. (All the time travel in the world can’t make someone love you.)” 속절없이 사랑의 가능성을 떠나보낸 팀의 시간은 다시 하릴없이 흐르는 것만 같다. 시간은 뜻대로 흐르지 않고, 팀은 어쩔 수 없이 기다린다. 그렇지만 시간이 뜻대로 흐르지 않기에, 또 그만큼 간절하기에, 어떤 우연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삶 속에선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우연이 존재한다. 착하지만 눈치 없는 친구 제이(Jay)를 따라서 블라인드 데이트가 이루어지는 레스토랑에 간 날 암흑 속에서 만난 사람이 하필 그 누구도 아닌 메리, 그 많고 많은 메리 중 팀이 사랑에 빠질 메리(Mary)일 확률을 한낱 인간이 매길 수나 있을까? 시간이 꼭 팀의 소원에 응답한 모양새다. 그토록 기원한 여자친구가 생길 기미에 팀은 신나도 너무 신난 나머지 극작가인 해리(Harry)에게 굳이 베풀지 않아도 되는 (친절인지 오지랖인지 모를) 시간 여행의 수고를 베푼다. 덕분에 살 떨리는 시간 여행인 동시에 시간의 원리를 몸소 경험하게 된다. 메리와 처음 만났던 시간 다른 장소에서 해리가 쓴 연극이 배우의 실수로 엉망으로 끝나는 걸 바로잡기 위해 팀은 메리와의 만남이 있을 시간에 극장으로 향하고, 그 선택의 여파로 메리와의 만남은 아예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우연의 역학 관계야 알 리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연도 결국 선택의 일부였다. 또한 우연은 기회이며, 모든 우연이 다르듯 같은 기회는 없다. 그러니 이대로 있다간 사랑을 잡을 기회는 물 건너 가겠지만, 그 우연에 인연의 씨앗이 있다면 이야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메리를 마음에서 지울 수 없던 팀은 증발한 우연을 되살리려 모색하다 뜻밖에 케이트 모스의 사진 전시회를 발견한다. 메리의 케이트 모스를 향한 애정은 다른 이들에게는 별 대수겠냐마는, 팀에겐 우연을 인연으로 발전시킬 필수 요건이다. 고대하는 우연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인내심, 마침내 찾아온 우연의 작은 특징마저 기억하는 노력과 시간 여행 능력까지 더해져 드디어 팀은 메리의 남자친구가 된다. 행복한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메리에 대한 사랑이 팀의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 가령, 지나간 우연이 다시 찾아온다면? 샬럿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다니 이게 무슨 신의 장난인가? 역시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른다. 희한하게도 샬럿은 그 여름 때와 달리 적극적이다. 게다가 은근 여지를 남기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크게 뒤흔들리는 가정법을 이용한다.
샬럿 (Charlotte) : “그 여름을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You know, I’m starting to think we slightly wasted that summer.)”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을 거야. (If we could travel back in time, maybe I wouldn’t have said ‘no’.)”
우연은 신의 점지가 아니다. 우연은 마치 인연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팀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여자들과 같다. 따라서 특정 우연에 마음이 동한다면 그건 인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그 우연이 지닌 특성이 본인에게 얼마나 간절한지 확인하는 것뿐이지 아무 의미도 아니다. 팀이 샬럿을 사랑, 그러니까 인연이라 착각한 연유는 팀이 여자친구를 원하는 당시 여자친구가 될 수 있는 대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만약 팀이 남자를 좋아했다면 샬럿의 등장은 연인이 될 가능성의 의미조차 못 지닌다. 그러므로 욕망을 품은 동물은 그 고기가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고 일단 물기 급급하고, 그 동물이야말로 인간이다. 한데,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아무 우연에 대고 소중한 인연이라 해석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우연을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 우연은 인연이 될까? 이 우연은 나에게 소중할까? 이렇게 질문만 했다간 아마 팀은 샬럿의 집에 들어갔을 것이다. 팀이 샬럿의 집에 들어가지 않은 대신 곧장 메리에게 청혼하러 달려 갈 수 있었던 결심은 다름 아닌 샬럿과의 여름에서 온다. 그 여름 팀이 시간여행에도 샬럿과의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주요인은 팀을 사랑하지 않은 샬럿에게 있다. 샬럿과의 여름은 인간이 후회하거나 아쉬울 때마다 들먹이는 가정법을 무색하게 만든다. 만약, 그랬다면, 달라졌을까? 아니다. 사랑할 사람이었다면 어느 시기에 만났든 사랑한다. 팀의 경우, 그 사랑할 사람이 메리인 것이다. 메리는 첫 만남부터 통했다. 애시당초 팀이 굳이 해리를 돕지 않았더라면 조마조마한 시간여행은 필요도 없었다. 더구나 샬럿 앞에서는 왠지 작은 행동도 큰 실수로 번지곤 했지만, 메리는 다른 사람이라면 갸우뚱할 팀의 어수룩한 표현도 귀엽게 봐주고, 하물며 똑같이 짓궂게 굴며 대화를 형성한다. 그들은 서로 통한다. 인연의 조건은 상통(相通)이다. 비로소 적극적 해석을 마친 팀은 메리와의 사랑을 결실로 이룬다. 그 사랑을 위해 축배를 드는 날, 그러니까 아주 완벽해야 할 것 같은 날 비바람이 불고 팀은 몇 번이고 옷장 속으로 들어간다. 하긴, 팀은 과거로 갈 수 있는 거지 미래로 갈 수는 없으니 돌발 상황을 예측할 리 만무하다. 하여간 인간의 삶 속에선 무엇이 일어날지 모른다. 비 오는 날 결혼식을 올리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비가 와도, 실수가 난무했어도, 때론 난감했어도 결혼식은 완벽했다.
인간은 그 무엇에도 미리 준비할 수 없다. 모든 일은 기습적이고, 그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반응한다. 사람 마음이 그래서 이왕이면 기쁜 우연만 왔으면 좋겠다 싶은 거다. 물론 아무리 기쁜 우연이라도 책임이 따른다. 예를 들면,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나에게 썩 내키지 않는 우연이 오면 마찬가지로 책임이 발생한다. 보통 그 우연은 괴로워 나는 책임감을 죄책감으로 착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이 아픈 건 그 우연으로 고통을 겪는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빠인 팀은 사랑과 안정을 찾은 본인과 달리 점점 엉망이 되는 동생 킷캣(Kit Kat)을 차마 그대로 지켜보지 못하고 그녀의 삶에 기어이 개입한다. 팀은 킷캣이 과거의 특정 지점, 그러니까 선택이 킷캣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목도하도록 몸소 함께 과거로 향한다. 그 인연은 네가 아니었어도 됐어, 그건 순 우연이었어, 네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우연은 인연이 되지 않고 그냥 사라졌을 거야, 어떤 존재를 사랑할지 선택권은 너에게 있어. 그러고는 킷캣이 제이와 연결되도록 노골적으로 그녀의 시간에 우연을 끼워 맞춘다. 한 마디로, 킷캣의 의지 없이 그녀의 인생을 고쳐 버린다. 킷캣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팀은 다시 현재로 돌아오지만 아뿔싸, 내가 아는 딸은 없고 웬 아들이 있다. 인간의 욕심이 끝도 없더니 팀은 그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팀의 인생이 또 틀어진 것이다. 비 오는 결혼식도 완벽하다 말했던 메리는 일찍이 팀에게 조언한 바 있다. 본인의 인생엔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If it’s gonna be fixed, I think she probably has to do it herself”). 즉, 인간은 다른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나 자신에게 생이 있듯 당신에게도 생이 있고, 나 자신에게 우연 선택권이 있듯 당신에게도 우연 선택권이 있으므로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불행을 자초할 우연을 선택하는 모습을 나는 막기는 커녕 지켜봐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그리 두면 나 또한 마음 찢어지는 불행을 겪게 될지라도, 우린 불행을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 그 불행도 삶을 구성하는 일부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삶은 부분의 합은 아니다. 삶은 인간의 몸뚱아리와 같아 불행을 떼어낸다는 건 나의 장기를 떼어낸다는 것과 같다. 불행이 이 자리에 있어야 삶이 움직인다. 이 불행이 없어져도 다른 불행이 불행의 자리로 차지한다. 이 불행이라도 차라리 있어야 나의 행복도 이 자리에 있다. 이 불행이 사라지면 이 행복도 사라진다. 따라서 단 한 순간도 어긋나면 안 된다는 것을(“But the exact sperm at the exact moment got you this particular baby, so if you do anything the tiniest bit different, you’ll have a different child”), 이는 곧 고통마저도 도리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맥락으로 이 질문은 무의미하다: 지금 이렇게, 낯선 사람에게 문 한번 못 열고, 초인종과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벨 소리에도 청심환을 마셔야 하고,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밥 한번 먹자고 말도 못하고, 주저와 인내를 구별하지 못하고, 혼자 견뎌야 할 외로움과 공포가 너무 많고, 인파가 몰리는 곳에 가기가 힘겹고, 감정의 널뛰기에 홀로 진땀을 느끼고, 나는 평범한 사람인데 평범한 삶을 못 누리거나 나의 평범이 다른 이들의 평범과 다를 때가 다분하고, 이른 나이부터 기가 죽어 늘 위축되고, 끊임없는 우울과 피곤에 찌들어 살아가고, 매일 마음에 지진이 나고, 기억과 꿈의 구분이 잘 안되고, 기쁨을 공감하지 못하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줄 모르게 될 줄 알았다면 나는 그날 그때 다른 선택을 했을까? 아니, 그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선택을 내렸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이기 때문이다.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같은 행동을 취할 것이다. 그게 나다. 다른 선택을 내린다면 내가 아니다. 다만, 그 우연은 나의 잘못으로 생겨난 게 아니다. 그냥 사람의 삶이라는 게 그런 거다(“Life’s a mixed bag, no matter who you are”). 마치 아버지가 폐암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애당초 담배를 피지 않았더라면 폐암에 걸릴 일도 없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지금까지의 행복도 없던 일이 되고 만다(“And anyway, your mother definitely wouldn’t have gone out with me, if I hadn’t been such a sexy smoker”). 불행이 있다는 건 삶이 불행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로, 나는 돌아갈 수 없다. 나는 못 돌아간다. 그 불행들이 있어서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이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내가 무언가를 깨닫는다고 해서 삶이 기적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안다. 삶은 그대로다. 여전히 많은 짜증스러운 세상사에 지치기 일쑤고, 삶은 대단하고 화려한 일상이 아니라 별 볼 일 없고 지루한 일로 꽉 차 있고, 뭐든 좋게 끝나면 그저 다행일 뿐이지 기뻐할 여력이 없다. 이러한 삶을 바꿀 수 없다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삶을 다르게 사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에겐 해석 능력이 있지 않나. 짜증나는 일에도 유머를 잃지 않길, 사소한 고마움에도 인사를 잊지 않길, 흔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길, 기쁜 일엔 과할 정도로 기뻐하길, 그렇게 한다면 이 삶이 원래 얼마나 빛났는지 보인다(“Very good day, actually, as it turns out”). 우리의 삶은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순간순간은 저마다 의미를 지닌다. 삶을 사는 인간의 역할은 그 순간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는 곧 삶을 감사히 여기고 즐기는 데 있다. 그렇기에, 두려움과 긴장을 내려놓아도 괜찮더라. 삶은 어차피 한 번밖에 없다지만 한 번만 살아도 충분히 값진 삶을 살 수 있다(“I just try to live every day as if I’ve deliberately come back to this one day to enjoy it as if it was the full, final day of my extraordinary ordinary life”). 이리 살다가 때때로 마음 아파할 우연이 닥쳐 또 눈물 흘리게 될지라도 우리에겐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따뜻한 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해내면 다 지나갈 수 있다. 그리고 가끔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오면, 나의 삶을 이끈 소중한 시간들처럼 돌아가고 싶을 만큼 혹은, 돌이키고 싶지도, 무르고 싶지도 않은 시간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이 선택이 나를 어떤 우연으로 이끌지 모르지만, 단 하나는 확실하다: 삶은 놀랍고 우린 그저 사랑하면 된다(“We’re all traveling through time together every day of our lives. All we can do is do our best to relish this remarkable ride”).
매일 심장을 토닥이며 스스로에게 애걸한다. 그래도 하루만 더 살자. 한 번만 더 사랑하자. 그 어떤 상처도 날 망가뜨린 적 없는 것처럼 사랑하자.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계획이다. 사랑에 용기 내 얻은 이 놀라운 삶 속에서, 나는 여전히 놀라고 싶다. 그러니 사랑하라,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비하인드컷
글쓴이의 코멘터리
이 글을 쓰는 동안 팀의 심정을 매순 공감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글을 약 5년 전부터 쓰고 싶었는지라 이렇게 글 한 편 한 편 쓰는 기분은
마냥 진척되어 기쁘다기보다는 도중에 그만둘 일이 발생하지 않고 한 편 한 편 마칠 수 있어
참 애틋하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영화에는 장면 하나하나가, 인생에는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하듯
글에는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합니다. 이 문장들 하나하나를 저는 팀처럼 기억하겠죠.
이 <<그 영화를 살고 그 영화를 쓴다>>가 책으로 나올 때까지
앞으로 써야할 글이 적게는 수십 편, 많게는 수백 편에 이를 것이고,
감상해야 할 영화와 겪어야 할 경험도 그만큼 되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첫 시작이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을 자축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읽어준 분들 감사하고, 앞으로도 <<그 영화를 살고 그 영화를 쓴다>>를 찾아 주세요.
<<그 영화를 살고 그 영화를 쓴다>>의 첫 타자 <나는 놀라고 싶다> 시리즈는
이렇게 '사랑하라,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으로 끝이 났습니다.
앞선 에피소드는 이와 같은 순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eerouri/138
https://brunch.co.kr/@eerouri/159
https://brunch.co.kr/@eerouri/168
https://brunch.co.kr/@eerouri/173
<<그 영화를 살고 그 영화를 쓴다>>는 다른 글로 찾아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