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음식 : 마스카포네 티라미수 (투썸플레이스)
영화 : 말콤앤마리 Malcolm & Marie (샘 레빈슨 Sam Levinson 감독)
노래 : 시를 위한 시 (이문세 노래, 이영훈 작사작곡)
겪어 보면 알겠지만,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요즘 다들 멀쩡하고, 말끔하고, 화려하고, 심지어는 그럴 듯하게 포장까지 잘한 외양을 곧잘 갖추곤 하니까 덕분에 첫인상에서 신뢰가 덜컥 생긴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한다. 이런 현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알고 보니 넌 별로야.” 조금 매정해서 문장을 풀어 쓴다: “더 이상 사랑하기엔 무리야.” 사랑을 지속하는 건 사랑을 시작하거나 끝내는 것보다 백배 어렵다. 사랑의 시작과 끝엔 이유 같은 것, 예를 들면 변명이나 핑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린 그저 사랑에 빠졌다가 빠져나올 뿐이다. 따라서 사랑에 자꾸 이런저런 명목을 가져다 대는 순간 그 사랑은 끝이라 보면 된다.
‘말콤앤마리’는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 스타일리쉬함은 다른 영화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이라 불러도 좋다고 본다. 영상엔 명암이 드리우고, 전개엔 재즈 리듬이 더해지고, 대사에선 애증이 찐득찐득 묻어난다. 이토록 근사한 요소에도 영화가 끝났을 때 영화의 감정 과잉에 물리고 질린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말다툼을 한 건 주인공들인데 정신이 너덜너덜한 건 나였다. 좋아할 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차마 사랑에 빠지진 못하고 끝냈다. 나는 하필 그때 투썸플레이스의 티라미수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한 조각이 아니라 케익 하나를 통째로!
어쩔 수 없이 케익을 골라야 했고, 하는 수 없이 마스카포네 티라미수를 골랐다. 아직 본고장에선 먹어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한국 안이라면 어디서 먹어도 기본값을 하는 건 오직 티라미수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배신한다고? 원래 티라미수는 어지간하면 먹을 만한데 이 티라미수는 예외였다. 카카오 파우더, 크림, 시트, 이 3박자가 어긋나 그야말로 묘한 맛이 났다. 시트는 너무 촉촉하고 크림은 묽디묽었다. 촉감과 식감은 어떻게 참을 수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견디기 힘든 건 식초에서 날 법한 신맛이 전체적으로 강했다. 당황스러워서 몇 입 못 먹고 포크를 좌절스레 내려놓았다. 참고 먹자니 혀가 힘들고, 안 먹자니 마음이 힘들다. 결국 곤경을 이겨내기로 결정하고 내가 시련을 이겨내는데 으레 써먹는 방법을 응용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싫어하는 걸 해야 할 땐 좋아하는 걸 악착같이 챙기는데 이번의 경우엔 커피와 영화였다. 커피와 영화만 있으면 뭐든 괜찮았고, 함께라면 티라미수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했다. 하지만 뭐든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이라고 티라미수에 이어 영화까지 내가 고대했던 바와 다를 줄 꿈에도 몰랐다. 주인공들의 권태와 티라미수의 맛은 함께 고조되었다. 연인이라면서 살벌하게 서로를 물어 뜯는 그들의 싸움에 ‘이럴 거면 질긴 고기를 곁들일 걸 그랬나’ 뒤늦게 고민했고, 디저트라면서 도무지 유해지지 않는 요상한 신맛에 ‘이럴 거면 아예 레몬을 같이 먹을 걸 그랬나’ 때늦게 고뇌했다.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어느새 영화를 다 보고 티라미수를 어느 정도 먹었다. ‘말콤앤마리’, 티라미수 그 어느 하나 강렬하지 않은 게 없어 정신과 혀가 동시에 얼얼했지만 기분이 퍽 좋았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엄밀히 따지면 영화도 음식도 맛없었다. 그렇지만 정작 영화도 잘 보고 음식도 잘 먹었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오히려 내가 신명나게 느낀 건 재미와 식미(食味)의 존재였다. 그러니까 영화와 음식엔 맛이 있었다. 영화도 음식도 끝장을 볼 수 있는 핵심은 맛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맛을 느끼느냐다. 그 맛을 온전히 알려면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맛이 아무리 질색할 정도로 갑갑하고 넌더리날 정도로 지루해도 말이다. 그 맛을 알게 될 찰나 사랑을 계속할 용기가 난다. 동시에 너무 늦었다고 깨닫는다. 영화는 이미 끝났다.
사실 그 배우를 꽤 자주 생각한다. 말 그대로 모든 걸 뒤로하고 떠난 그녀를 좋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사진까지 몽땅 처리하기까지 했건만 그 마음까지 미처 버리진 못했다. 그녀를 불현듯 떠올리면 마음이 아리지만 외로움이 가신다. 웬만한 추억거리는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출연했을 라디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낯설고 좋았다. 그때도 어쩜 목소리가 그렇게 희미한지, 개미도 그것보다 크게 말할 것 같아 웃음이 났다. 그녀는 전매특허의 들릭락말락 조근조근하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좋아하는 노래 세 곡을 소개했다. 지금 들어도 혀를 내두를 만한 노래였다. 그녀의 탁월한 감각은 좀처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라디오를 다 듣고 오도카니 찬 바닥에 무릎을 끌어안으며 앉아 절로 상념에 잠겼다. 왜 사람은 사람을 미워할까, 사는 게 이렇게 짧은데,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삶은 너무 짧은데. 나는 그녀가 라디오에서 수줍지만 차분하게 계획없이 부른 노래를 찾아 들었다. 온 세상에 그녀의 목소리만 남은 것처럼 들렸다.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그 노래는 이문세의 ‘시를 위한 시’다. 언제까지 그대를 사랑해요.
영화는 끝나고 그녀는 갔어도 나는 여전히 혼자 남아 남은 티라미수를 꾸역꾸역 삼켰다. 내가 아는 맛의 스펙트럼에 층을 더했다. 떠나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는 맛. 그 맛은 슬프다. 말콤과 마리가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 주면서도 ‘헤어지자’ 한 마디를 입에 올리지 않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랑을 지속하는 게 힘들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잖아. 지속하기 힘든 사랑을 지속하는 것도 사랑인 거겠지. 마치 맛없지만 맛이 있는 영화와 음식을 음미하는 것처럼. 그게 과연 사랑이 될까 알기 위해선 영화는 첫 장면부터, 음식은 첫 입에서 시작해야 하듯 사랑은 사랑을 해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맛있게 먹는 법
덕분에 티라미수를 먹는 색다른 방법을 고안했고 꽤 효과적이었다. 시트가 아무래도 초근초근한 것이 너무 걸려 포크로 티라미수를 떠서 혀 위에 거꾸로 얹어 버렸다. 코코아 파우더가 혀에 먼저 닿게 말이다. 그 다음 곧바로 커피를 들이킨다. 그랬더니 마치 티라미수와 커피가 하나의 형체로 느껴진다. 크림의 부드러움이 커피만으로는 불가능한 바디감을 자아내고 초콜릿, 커피, 마스카포네가 결합된 풍미는 극대화된다. 해볼 만한 정도가 아니라 공들일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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