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선생님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 다섯

4-5

by 전해리

선생님,

‘아쉬움’으로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외워서 연주하는 도전이 이렇게 계속될 거라

상상도 안 했죠. 내심 바라긴 했죠. 그런데

언감생심 꿈도 안 꿨죠. 감히, 내가, 어떻게.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치고 들어갔는데 다섯 곡을 외워 연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지 뭐에요. 혹시 몰라 악보를 덮고 해봤는데

저도 모르게 손가락이 외웠더라고요. 연주를 마친 순간

처음 떠오른 심경이 기쁨이면 좋았을 텐데, 그만 놀라고 말았어요.

어라? 되잖아? 한순간에 알았어요, 이루는 건 별 게 아니라고요.

허무했어요. 너는 그거 하나 못 외우냐, 무슨 래퍼토리 하나 없냐

그 타박이 완주로 저를 이끈 것 같아서요.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 채워진 성취라서,

외워서 연주하는 게 그래도 기특한 건데도

슬프고 저렸어요. 앞으론 그렇게 피아노를 치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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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만큼 이로운 글

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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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 마지막 편지

-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 천 냥 빛

- 하농

- My Life but Better



이런 편지를 쓰는 나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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