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가 당신과 헤어진 이유

그래서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_ 환상

by 전해리

*이 작품의 모든 글은 해당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문 대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번역을 존중하되

독자적 영화 해석에 따른 필요로 인해 필자 본인이 되도록 직접 번역합니다.

*조금 더 원활한 설명을 위해 때론 직역하거나

원래 대사의 의미를 차용했음을 감안해주세요*

*작품 제목과 작품에 나오는 대사, 작품 속 고유명사에는 작은따옴표를 달았습니다*

***해석은 얼마든지 바뀝니다.

고로, 절대적이고 완벽한 해석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썸머가 당신과 헤어진 이유

: 그래서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_ 환상


- 중점적으로 다룰 영화

영화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 노트북 _ N차 관람, 영화관 _ 1차례 관람

- 글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 : 문서화 _ 5시간


썸머(Summer)는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여자였다. 그런 썸머는 과연 누구와 사랑에 빠질까? 그리고 그 누구는 왜 내가 될 수 없었을까.

먼저 사랑에 빠진 쪽은 톰(Tom)일지라도, 사랑에 노력한 쪽은 썸머였다. 어쩌다 드러난 사랑을 어쩌지도 못하는 톰이 답답하다는 듯 썸머는 과감하게 회사 복사실에서 그에게 키스한다. 복사실에서의 키스하며 이케아 데이트하며 야한 영화 따라 하기하며, 물론 같이 갤러리에 가고 영화를 보는 평범한 일상까지 나누는 톰과 썸머의 모습은 얼핏 보기엔 일반 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사이가 삐그덕대는 모습도 꼭 지당해 보인다. 연인끼리 말다툼할 수도 있는 거지, 이런 식으로. 덩달아, 진지한 관계는 싫다는 썸머의 태도가 여자친구라면 취할 태도처럼 보이지 않고, 영화를 보는 마음은 톰의 마음 따라 불안해진다. 우리 남들 사귀는 것처럼 할 거 다 해놓고 친구라는 게 말이 돼? 그러나 서로를 연인이라 인정하는 건 ‘준비’ 하고 ‘땅 하는 순간 달려가서 허들 몇 개 넘은 다음 결승선을 통과해 1등 도장을 받는 달리기 경주와는 딴판이다. 쉽게 말해, 사랑은 무슨 퀘스트 깨듯 단계가 중요한 게임이 아니다. 만나서 차 마시며 얘기가 좀 통한다고 해서, 음식 취향이 비슷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러다 둘 중 한 명이 고백하고 손 잡고 데이트하고 키스까지 한다 해서 사랑이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은 구색 맞추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 썸머는 복사실에서 톰에게 키스했다. 톰은 얼떨떨하지만 좋고 기껏해야 이를 연애에 대한 썸머의 긍정 의사로 받아들일 뿐이다. 톰은 키스에 취해 정작 키스보다 중요한 걸 포착하지 못한다. 썸머는 그냥 키스하고 싶어서 키스한 게 아니라 톰이 자신을 좋아하는데도 영 용기를 못 내는 걸 알고 먼저 다가가 준 건데, 톰은 모른다. 두 사람 간 첫 대화의 물꼬를 튼 것도 썸머였다. 회사 동료가 말을 걸었는데도 쌩했다던 썸머는 더 스미스(The Smiths)를 듣고 있는 톰에게 먼저 자신도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며 공감하고 음악 취향을 치켜 세워준다. 어디 그뿐인가, 썸머는 몇 년을 카드 문구 쓰기를 하면서 막상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건축은 제쳐 두는 톰에게 건축에 관해 물어보고 팔에 건물을 그리게 한다. 건축가로서의 꿈이 좌절된 톰 스스로가 건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우쳐 주며 다시 꿈에 도전하는 삶을 살도록 지속적으로 격려한다. 남들은 건축이 카드 문구를 쓰는 톰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건축에 대한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톰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설령 질문했더라도 ‘아, 그렇구나’ 하는 데 그칠 것이다. 썸머는 톰의 내면까지 알고 싶어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규정되지 않은 관계에 불안함을 느낀 톰과 싸우고 난 뒤 먼저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도 썸머였다. 썸머는 항상 먼저 톰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의 세계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러나 톰은 썸머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았다.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톰이 사랑한 여자는 톰이 보는 썸머였을 뿐이다. 톰은 친구들이나 동생에게 썸머에 관해 이야기할 때부터 오직 감탄만 늘어놨다. 둘 간의 어떠한 소통이 아니었다. 감탄은 일방향적 반응이다. 한술 더 떠, 한때는 썸머의 웃음, 머리, 무릎, 하다 못해 점까지 찬양했다. 전부 외양에 불과한 것들이다. 시간이 흐르면, 혹은 다른 감정이 생기면 외양에 대한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러니 톰이 썸머를 원망하게 되자 웃음, 머리, 무릎, 점도 덩달아 미워 보인다. 썸머가 톰에게 들려준 과거 이야기도 결국은 썸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톰이 들려 달라고 조른 결과에 불과하다. 썸머가 링고스타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도 톰은 링고스타에 관해 대화를 유도하지 않고 자신의 감상을 씌우기만 했다: “누가 링고스타를 좋아해?” 그러고는 썸머에게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준다. 톰의 자기중심적 사랑은 썸머가 초대한 파티에서 절정을 이룬다. 톰은 ‘기대(Expectations)’와 ‘현실(Reality)’ 속에서 선물로 똑같이 건축에 관한 책을 들고 간다. ‘기대’와 ‘현실’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판이하나 단 한 가지 장면만 동일하게 공유한다. 바로, 썸머가 고마워하며 선물을 받아들였다는 것. 비록 열정적인 정도가 약간 다르긴 했지만, 톰은 아마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썸머가 건축 책을 받아들이는 ‘기대’는 말그대로 톰의 기대이지만, 썸머가 건축 책을 받아들이는 ‘현실’은 아마 톰을 배려하는 썸머의 마음에서 비롯했으리라. 끝까지 이기적인 톰에 반해, 썸머는 톰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나서도 진심으로 아낀다. 톰 본인이 진정 원했다면 건축가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사람들 앞에서 촌언하는 썸머의 모습은 건축 책을 선물로 주거나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톰의 모습과 확연히 대조된다. 내면적 소통이 내내 부재했던 연애의 쓰라린 결말은 자업자득이다. 이렇게, 톰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한 썸머는 톰이 만든 환상이었다. 톰이 사랑한 썸머는 마그리트(Magritte)와 호퍼(Hopper)를 좋아해서, 본인과 하나의 주제로 20분 간 대화가 통했다는 이유로 ‘어메이징(amazing)’한 썸머였다. 그런데 톰, 마그리트와 호퍼를 좋아한다는 걸 과연 썸머가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아예 없었을까? 썸머가 한 가지 주제로 다른 사람과 20분 넘게 대화한 적이 톰 네가 처음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썸머가 어떤 여자인지 잘 모르겠더라. 영화가 속속들이 톰의 관점으로 채워져 있으니 말이다. 하나는 알겠다, 썸머가 정말 외로웠겠다는 것.

썸머는 누군가의 여자친구도 싫다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 그 누군가는 톰이 아니다. 그 누군가는 식당에서 썸머가 읽고 있던 도리언 그레이(Dorian Gray) 책에 관해 물어보고 대화한 사람이다. 톰의 여동생 레이첼(Rachel) 말마따나 나랑 취향이 같다 해서 당신이 내 영혼의 반려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레이첼이 모르는 한 가지가 있다면, 어떤 물건이나 노래는 나의 세계로 들어오는 입장권이 된다는 것이다. 바깥에 서서 이 세계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직접 그 세계로 입장하여 탐색하고 탐구하는 것이 사랑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알아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만약 당신이 내가 링고스타와 도리언 그레이를 왜 좋아하는지 몰랐다면, 당신은 이 사랑에 실패했다. 나는 당신에게 팔까지 내주었는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사랑을 한다. 특별한 이유나 원인은 없다. 아니, 그 어떤 이유나 원인도 특별하지 않다. 그저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글쓴이의 코멘터리

이 영화의 초반에서는 나도 사랑이 하고 싶어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다가, 중반과 후반에 이르러서는 과거 나의 잘못이 떠올라 마음이 욱신거리게 됩니다. 당신은 톰이었나요, 썸머였나요? 혹은, 어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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