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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선생님께 보내는 마지막 스무번째 편지

4-20

by 전해리

선생님,

뭐든 듣지 말고 직접 해 보고 판단해야 해요.

드뷔시의 ‘달빛’은 제 취향도 아닐뿐더러

왜 그렇게까지 사랑을 받는 걸까 의아했어요,

제가 직접 치기 전까지는요.

지금은 이 곡의 대중성보다도 감수성이 제 관심의 대상이에요.

한 사물, 깊게 들어가서 한 물성이 예술에 담긴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체득하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음표들을 조심조심

따라가는 매번 달라지고 변화하는 음상(音像)이 가히 환상적이에요.

그래서 그 어느 곡보다 첫 마디와 바로 그 다음 마디를

아주 신중하게, 또 음미하면서 치고 있어요. 그 두 마디가

곡의 끝까지 좌우해요. 그러니까, 그 두 마디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그 달빛과 그 밤이 지배되어요.

저는 명료한 달밤이길 바라는데, 다소 흐릿해요. 그나저나

달을 보면 내일의 날씨를 알 수 있다는데

내일의 날씨는 ‘맑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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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만큼 이로운 글

언제까지고

당신을 맞이합니다


<둥글게 둥글게>


-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 마지막 편지

-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

- 하농

- My Life but Better


이런 편지를 쓰는 나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고 싶다면

https://brunch.co.kr/@eerouri/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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