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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Nov 23. 2019

살아남은 자의 슬픔

퇴사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퇴사와 관련된 책과 이야기들이 범람하는 세상이다. 서점가에 진열된 책들은 모두 퇴사한 사람의 입장과 시각에서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번에 난 퇴사한 주인공보다 그 주인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 주변인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누구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사실 우리 대부분이 주인공을 부러워하는 주변인의 역할을 맡을 때가 더 많다. 다른 이들이 주인공을 조명할 때, 그 주인공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나와 같은 주변인들의 모습을 담아보고자 했다.


멋진 결단을 한 주인공에게 위로를 해야 할지, 혹은 축하인사를 건네야 할지 나조차 모호하다. 마치 회사에 멀쩡히 잘 다니는 내가 왠지 미련해 보이고, 나만 마치 부당함에 항거하며 저항하지 못하는 변절자처럼 이따금 느껴질 때도 있다. 그나마 알량한 마음의 위안은, 그나마 내 주변에서는 일어나고 있지 않은 일이었다는 점 정도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내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퇴사를 한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도 있는 법, 이 간단한 사실을 아주 잘 아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헤어짐'에 익숙하지가 않다.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의 정도는 그 상대에 대해 갖고 있던 애정에 비례함이 맞지 않을까. 정작 상대 역시 내게 애정이 있고 없고는 별 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기실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상대에게 갖고 있는 아쉬움이니 말이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엄청나고도 돈독한 우애를 쌓았던 건 아니었다. 같은 공간이었을 뿐, 그가 느꼈을 고민의 크기와 그 끝에 마주했을 암담함을 나는 미처 몰랐으니 말이다. 단지 내가 아는 건, 아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다는 정도이지 않을까. 과거의 나 역시 그와 같이 퇴사를 결심하고 결행에 옮겼던 적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느꼈을 고민과 좌절의 깊이까지 알 순 없는 노릇이다. 누구도 감히 안다고 할 수 없다. 결코 그래서도 안된다.


고작 8개월 남짓 함께 일한 것이 전부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짧은 시간일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긴 시간일 수 있다. 다만, 하루에 8시간을 한 공간에 있다 보면 원하던 원치 않던 적지 않은 것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8개월만큼은 매일같이 얼굴을 대면하고 마주 했을 테니 말이다. 감히 누군가를 함부로 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이런 사람 아니었겠느냐며 조심스레 나의 지레짐작을 이야기해 볼 순 있겠다. 적어도 그는 나를 비롯한 회사 동료들 모두에게 호인(好人)이었다.


유능한 반면 성격이 모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품은 나무랄 데 없건만 능력이 받침 되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이 있다. 그에 반해 그는 유능하면서도 사람 좋은, 근래 보기 드문 그런 호인(好人)이었다. 가진 재능을 십분 활용해서 그는 회사를 위해 일했음은 물론, 그가 있는 곳엔 늘 사람들이 모이곤 했으니 다들 내가 느낀 바와 비슷한 공감대가 있을게다. 그런 그가 퇴사를 선언했으니 모두가 느꼈을 그 박탈감은 대동소이하지 않았을까. 회사는 성실한 인재 한 사람을 잃은 셈이다. 물론,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업무적으로 비슷한 기능(機能)을 못하리란 법은 없다. 다만, 나를 비롯한 남은 사람들에게 그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런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는 앞 날을 걱정하기도, 한 편으론 기대하는 듯 보였다. 푹푹 찌는 듯한 한 여름날, 우리 모두 벗지 못하는 두꺼운 외투를 그는 마침내 벗어던졌으니 그 얼마나 시원할까. 다가올 서늘한 가을과 추운 겨울은 당장 걱정할 것이 못된다. 지금은 오로지 그 해방감을 즐기길 바란다. 어딜 가나 환영받을 사람이니 지금 당장 적(籍)이 없음을 걱정할 필요 없다. 여느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어떻게든 삶의 활로는 보이게 되어 있으니 현재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떠나는 동료에게 으레 건네는 덕담이 결코 아니다. 장담하건대 그런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


그렇기에 그의 퇴사는 회사는 물론, 남겨진 우리 모두에게 큰 손실일 수밖에 없다.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닌, 좋은 시간을 만들어 그에게 감사해야 함옳을까, 아니면 조금 버티지 그랬냐며 타박을 해야 했을까. 이도 저도 아니면 그가 의지할 작은 언덕조차 되어주지 못했음에 사과라도 해야 했을까. 분명한 건, 그와 함께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만큼 우리 모두 그를 추억할 게다.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가 모두의 마음에 생기리라. 물론 시간 지나 다시금 마음의 그 빈자리는 메워지겠지만 우리 모두 그때 그 시절을 이따금 회상하지 않을까. 좋은 사람과 더불어 일했던 좋은 시절이 있었노라고 말이다.


퇴사를 이야기한 그에게서 모습이 일순 보였다. 한편으론 나에게서 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방울의 차이일까. 일순 궁금해졌다. 쥐어짜 낸 용기의 차이를 가늠해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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