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멈추지 않던 최종 학점

by 이음

드디어 성적이 나왔다.


이른 아침 친구의 메시지에 잠이 깼다.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왔다고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락다운 중인데 너무 잔인한 거 아니냐고.

그럴 만도 했다.

모두가 극한의 상황에서 시험을 치렀으니까.


그런데 이 친구는 영국에서 쭉 자란 영국인이었고

이미 졸업 전에 로펌 취업까지 확정된 상태였다.

그런 아이가 이렇게 말하니,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떡해. 나도 망했구나....


손끝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심장이 콩닥콩닥 마구 뛰었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이 저릿저릿했다.

한 과목, 한 과목

조심스럽게 스크롤을 내렸다.


First.
한 과목만이 아니었다.

다섯 과목 모두 First였다.

1학년 때 들었던 과목까지 포함해도,

넉넉한 First Class 졸업이었다.


헉.... 해냈다.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 입학 허가 메일을 받았던 어느 새벽,

덜컹거리던 버스 안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를 만나러 가듯,

지난 2년이 한순간에 휘몰아쳤다.


미칠 듯이 외롭고 불안했던 시간들.

감옥 같던 락다운.

숨 쉬기도 힘들었던 기말고사.

모든 기억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조기 유학도 아니고,

영어가 네이티브도 아닌 내가

First를 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들 했다.

계속되는 불합격원서는 마치

그들의 예측이 맞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넌 안 될 거야.

그 목소리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서 더 간절했던 First.

그토록 바라왔던 그 한 줄.

화면 속 First Class라는 단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그건 단순한 성적이 아니었다.

혼자 울며 책상 앞에 앉았던 수백 번의 순간,

그리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모든 순간들의 증거였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울음을 삼키는 엄마의 모습이

눈 앞에 선했다.

엄마, 나 성적 나왔어. First야!!
그래… 우리 딸, 정말 고생 많았어.
엄마는 항상 네가 해낼 줄 알았어.
자랑스러운 우리 딸.

그렇게 한참을 우리는 수화기 너머로 훌쩍거렸다.


코로나로 매일 수만 명이 목숨을 잃던 나라에서,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낯선 땅에서 혼자 버티고 있는 딸을 보며

엄마는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괜한 걱정만 끼쳐드린 것 같아 죄송했지만

오늘만큼은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여전히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이 시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했지만,

마치 낭떠러지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준 것 같았다.


런던에 온 지 2년.

수없이 후회하고,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

“내가 여기 온 게 맞는 선택일까?”

오늘만큼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잘 왔다.

정말 잘 버텼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곳에 온 내 선택에

조용히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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