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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새끼 백호

by 이은

2022년 7월 21일 모임.


꿈에 동물들이 나왔다.

비현실적으로 큰 독수리와 아래의 폐허마을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꿈을 꾸고 난 후 찝찝한 마음이 컸다.


<독수리는 뭘 봤을까>

가족들과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내가 운전하고 있지 않다. 나는 뒷좌석 오른쪽에 앉아있다.
왼쪽에는 모르는 남자가 가운데에 연예인 윤아가 있다.

마을 하나를 지나고 있다.
그 위로 커다란 독수리가 마을을 제자리에서 날갯짓을 하며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독수리 크기가 마을을 덮을 정도로 크다.
폐허 마을이다.

독수리를 지나고 얼마 후 작아진 독수리가 어디선가 날아와 차를 맴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다.
뒷좌석에는 새끼 백호가 있다.
독수리가 백호를 노리고 있는 거 같다.


1. 고속도로와 승용차


자동차 내부 상황

우선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는 것은 인생길, 하나의 여정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뒷좌석에 타고 있다.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징한다. 뒷좌석 어디에 앉아있는지까지도 반영한 세심한 투사가 이어졌다. 오른쪽 자리는 운전석을 볼 수 있는 자리다. 운전하고 있는 아빠와의 관계성이 보인다. 나는 아빠를 경계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도 아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조수석으로 옮겨져 있다.

조수석은 운전자를 위해 편의를 봐줘야 하고, 대신 길을 봐주거나 주위를 살펴야 한다.

이 여정에 조금 더 주체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외부 상황

차가 달리고 있는 곳은 고속도로다. 현재 나의 인생 길이 험한 산길처럼 위험한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는 속도를 내야 하며 차간거리가 필요하다.

사람들과 너무 밀접하게 지내기보다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안전하다. 사실 어느 길이든 간에 거리가 필요한 건 마찬가지지만 고속도로 특성상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다른 도로보다 더 넓은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돌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다행히도 이 꿈에서는 거리가 너무 좁거나 위험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현실의 나는 거리를 유지하며 잘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동물


꿈에서 동물이 나오는 것은 본능적인 에너지를 상징한다고 한다.

개인적 연상으로 독수리는 하늘을 지배하며 이곳저곳을 넓게 돌아다니는 특성이 있고, 호랑이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 공통적으로는 강인하며 영험한 존재들이라고 봤다.


융의 이론으로는 각각 어떤 상징이 있는지 살펴보자.


독수리 : 고귀함과 영적 통찰, 의지와 힘, 죽음과 재탄생, 남성적 에너지
새끼 백호 : 순수함과 잠재력, 자연과 본능적 에너지, 희귀성과 독특함, 감수성과 연약함



이러한 상징들을 꿈으로 연결해 본다면 나의 남성적 에너지는 마을을 덮고, 하늘을 영위하는 동물로 투영되었다. 사냥을 위해 머리를 써야 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한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한 곳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에 뒷좌석에 타고 있는 새끼 백호는 나의 여성성과 연결이 된다. 더 성장해야 하는 연약한 상태이며 순수한 잠재력으로 보인다. 그 잠재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게 아닌 희귀하고 독특한 것이다.


동물로 투사를 하니 오히려 쉬워진다. 나는 나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작가로서의 기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랜만에 이 꿈을 품어보니 동물들에 대한 새로운 투사가 떠올랐다. 독수리나 호랑이 둘 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나의 본능적 에너지는 독립된 개체의 에너지가 더 강하다고 보인다. 이 부분은 고속도로의 특성과도 연결이 된다.


나의 기질이 독립적이거나, 독립적인 에너지가 필요하거나. 둘 다 일수도.


3. 폐허 마을


독수리의 상징 중에는 죽음과 재탄생이 있다. 이 꿈이 말하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내면의 한 부분이 폐허가 되었다. 수많은 죽음이 있는 곳. 과거의 상처를 의미하며, 죽음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났다.


나는 그 마을을 직접적으로 통과하고 있지 않다. 고속도로를 통해 저런 곳이 있구나 인지하는 정도다.


폐허 마을은 즉, 과거의 일은 현재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인다. 하지만 직접 운전을 해서 갈 정도의 상태는 아니다.


나의 외부 에너지, 독수리가 정체되어 있던 것은 과거의 아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몸집이 커져 버려서 높은 빌딩들이 있는 도시를 다니기에 불편하니 사냥도 할 수 없다. 외부 에너지가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감으로 독수리는 차를 향해 날아온다. 몸집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일을 털어내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만약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였다면, 시골의 비포장길이었다면. 그 마을을 직접 통과해야 하니 과거의 영향이 현재에도 크게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투사로는 과거의 아픔을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 있었나 생각해봐야 한다. 폐허 마을이 될 정도로 큰 일인 거다. 계절은 돌고 돌듯이 그날의 봄, 그날의 여름이 또 내게 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폐허 마을이 되었다.


이때가 6년을 넘게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7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고, 나만의 인생을 꾸리려 많은 노력을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처음 만나고 사귀던 때가 7, 8월이었다. 그 사람이 없는 여름이 낯설었다. 오랜 기간 만났다 보니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앞으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게 버겁고 막막했다. 뭘 해야 하지, 나는 뭘 잘하지. 워낙 다정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지라 그에게 맞춤형이 되어 주체성도 떨어져 버렸다.


물론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런 애인이 있다 한들 나는 나대로 쌓아왔어야 했는데 오직 그와의 결혼, 그와의 미래만을 위해 올인해 버렸다.


꿈을 통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덕분에 나의 잠재력도 알게 되었고, 작가라는 꿈도 되찾았다.

어쨌든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거다. 앞으로의 여름은 온전히 나만의 여름일 것이고 그 사람은 내 인생에서 더 멀어져 점이 되어 사라지겠지. 사라지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한때 나도 그런 사랑을 해봤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저 이 꿈을 꿨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참 애쓰며 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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