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래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길다. 그 이름을 다 부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평생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그것도 너무 짧은 기간이라 말한다. 몇 백 혹은 수천 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불러야 겨우 호명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도 누가 정말 그걸 다 불렀다면 그때 그가 발견하는 건 내 이름의 길이가 배로 늘어났다는 사실일 거라 말한다. 내 이름을 듣고 나도 내 이름을 잊었다. 내 이름이 궁금할 적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를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면 어렴풋이 몇몇 단서가 떠오른다.
(바깥은 여름 단편집 中 "침묵의 미래" 김애란)
여름의 소나기, 살갗을 찌르는 바람 소리, 은하수를 향해 떠오르는 입김들. 그 안에는 천진난만한 웃음이 있고, 손끝의 애절한 마음이 깃들어져 있다. 솟아오르는 불길을 덤덤하게 보다가도, 짧은 정적에 몸이 녹아내리는 기이한 영혼이 숨죽이고 있다.
*
앙상한 가지 위로 시린 계절이 쌓였다.
창밖의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화분에 물을 주려 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분무기를 들었다. 가지치기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새로운 가지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머리만 살짝 내민 채 간을 보고 있다.
“외삼촌네 옆집 살던 애 있잖니. 걔가 그렇게 공부를 잘했대.”
할머니는 내가 안 듣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지 하고 싶은 말을 끊임없이 했다. 분명 눈이 왔다며 운을 뗐던 거 같은데, 언제 옆집 얘기로 넘어왔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외삼촌네 옆집 살던 그 애는 나와는 일면식도 없다.
할머니의 대화법은 늘 그래왔다. 한 번 맞장구쳐주면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낸다. 집중해서 들어본 적도 있지만 주제가 워낙 중구난방으로 튀고, 낯선 이름들만 나열되니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끄덕거리는 게 다였다.
“할머니. 저 나가야 해요.”
결국 할머니의 말을 자르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다녀오라 한다. 늘 그랬듯이.
*
“할머니 치매란다. 그럴 줄 알았어. 으휴, 노인네. 거기 가서도 아니라고 박박 우기더라니까.”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점심때마다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할머니는 결국 주간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엄마는 일을 쉬지만 종일 할머니를 돌보고 싶지 않아 했다. 어릴 적 기억의 할머니와 엄마의 기억 속 할머니는 너무도 달랐다. 엄마의 말은 대부분 알아듣기 편하고 내가 아는 이야기들이지만 반응하기 어려운 건 똑같았다. 오히려 더 난감하다.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동안 그렇게 싫어하던 설거지를 제일 잘하게 됐다. 이곳에서는 조금이라도 게으른 모습을 보이면 압박이 가해져 온다. 공부는 잘하고 있니, 고양이 냄새난다 치워라. 잔소리가 듣기 싫어 성질이라도 내면 할머니가 받던 조롱과 비난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어쩌면 할머니와 난 이 집에서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엄마와 아빠의 끈질긴 인연 속에 우리 둘은 걸림돌인 거다. 평온하고 안락하지 못하게 훼방 놓는 존재들.
할머니가 무쳐준 봄동 맛있었는데.
엄마가 해주는 밀키트 음식보다 계절마다 돌아오는 할머니의 반찬들, 장독에서 갓 꺼낸 장과 김치가 그리울 때가 있다. 중앙동 집이 팔리고부터 장독을 버려야 했고, 생연동 집을 거쳐 송내동 집이 팔리고 나니 할머니의 기억이 버려졌다.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이번 봄동은 제때 오지 못 할 거 같다.
어쩌면 영원히 오지 못 하겠다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싱크대로 흐르는 물소리에 의지해 울음을 터뜨리려다 겨우 참아낸다. 이 집에는 갑작스러운 울음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
“너, 그거 너도 잘못한 거야. 어느 한쪽만 잘못한 법은 없어. 남자 좀 제대로 보고 만나. 이상한 놈 만나서 질질 짜지 말고.”
자취할 때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 들었던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는 강인한 사람이라 감정적인 위로는 하지 않는다고 둘러대곤 한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이 닥치면 맨 살에 얼음덩이로 문지르는 느낌이 든다. 효과가 있긴 했다. 정신이 확 차려지면서 모든 감정이 초기화된다. 내가 지금 누구한테 전화를 건 거지. 어느 곳에도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나서야 깨닫는다.
다 기억하면 상처만 늘어난다.
*
할머니는 겨울을 못 견디고 돌아가셨다. 문을 꼭 닫아두고 지내던 작은 방에 조용히 잠들어 계셨다. 아빠가 가장 먼저 눈치챘다. 왜 가느냐고 투정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울음소리가 집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엄마의 겨울은 이제 시작이었다.
엄마는 장례식이 있을 때마다 진두지휘하여 일을 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방 안에 쉬고 있는 엄마 대신 나와 언니가 손님들을 맞이해야 했다.
엄마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들도 간간히 느껴졌다. 할머니를 못살게 굴었다며 수군거렸다.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냈었다며, 지금도 눈치 볼 사람 없으니 방에서 쉬고 있지 않냐며.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떠들었다. 옆에서 방치한 책임을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해서 양심에 찔려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엄마가 아무리 할머니에게 모질게 대했다 한들, 나는 할머니 저녁 한 끼 챙겨주는 것도 귀찮아 잊어버린 척한 적도 있다. 할머니는 내가 챙겨야 하는 날이면 먹었다며 거짓말을 하곤 했다. 한 번은 저녁 먹어야 하지 않냐며 물어오시는 것을 대충 얼버무리며 무시했었다. 저녁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부모님이 나가고 나서야 거실로 나와 말을 걸었던 할머니의 애고를 모른 척했다.
화장터에 도착했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긴 복도에 수십 개의 공간이 전부 들어찼다. 죽은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대기하는 동안 뿔뿔이 흩어져 앉아 정적을 삼킨다. 그럴듯한 위로나 허무맹랑한 대화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 가족을 모이게 한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곧 불길 속에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면 다시 모일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멀찍이 떨어져 앉은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모니터 화면에 할머니의 이름과 함께 초록 불이 떴다. 시작한다는 의미다. 주섬주섬 일어나 아까 봐뒀던 자리로 간다. 옅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유리창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할머니의 관이 굴속으로 들어갔다. 불길이 확 타오르며 솟구쳐 오른다. 사방에서 울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울고 있는데 나 혼자만 덤덤히 모든 과정을 눈에 담았다.
나는 울 자격이 없다.
*
할머니의 방은 아빠 방이 되었다.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할머니의 물건을 싹 다 치워버리더니 밤새 TV를 볼 때마다 쓰고 있다.
물건들과 함께 특유의 나무 냄새도 자취를 감췄다. 생신 선물로 사드렸던 향초 냄새였다. 빨리 떠나고 싶으신 건지, 떠나보낸 건지. 모든 흔적이 지워졌다. 훨씬 쾌적해졌지만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중앙동 집은 부모님 방 빼고 할머니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반면 이 집에서 할머니의 흔적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간절했다. 싱크대에 빈 그릇 서너 개와 대충 그릇째로 덮어놓은 반찬, 귤이나 체리, 떡, 옥수수 같은 것들이 들어있던 검은 봉지.
이 집안을 살렸다며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일했던 이야기, 어른들에게 맞아가며 했던 험난한 시집살이는 모두 중앙동 집 한정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남겨두었다. 나 아직 여기 있다고. 자식, 손주들 나눠줄 생각에 검은 봉지를 들고 힘겨운 걸음을 뗐을 것을 생각하니 손끝이 저려왔다.
방에서 작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 연예인들이 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가짜 힘듦을 지켜보다 보니 방구석에 틀어박혀 보고 있는 내 모습이 한탄스럽게 느껴진다.
"너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자고 있는 거야? 시끄럽게."
노크도 없이 불쑥 찾아온 아빠는 불만을 터트렸다. 한두 번 곱지 않은 말투가 오고 가더니 언성이 높아졌다. 이 싸움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꺼내 버렸다. 중앙동 집에 버리고 왔던 그 장독.
"왜? 이젠 나도 필요 없어졌어? 쓸모없으니까 버리고 싶어?"
*
꽃이 필 거 같다.
봉오리가 조용히 올라와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부터 찾아온 정막이 집까지 쫓아왔다. 현관문이 열리며 풀 냄새 섞인 바람이 매섭게 들이닥친다. 여전히 겨울을 지새우는 집에 생명이 넘실거리며 들어온다. 누군가의 첫 호흡, 마지막 숨, 수많은 기억이 바람이 되어 왔다. 어릴 적 기와지붕에 살았다던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빨간 댕기가 흩날린다. 정처 없이 떠돌던 기억들이 계절을 이끌고 왔다. 사라져 버린 할머니의 향이 온 동네를 떠돌다 이곳까지 온 거다.
문득 지키지 못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놀러 나가고 싶을 때 함께 가주겠다던,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던 약속들. 아무것도 지키지 못 한 손녀에게 단 한 번도 다그치지 않았다. 할머니의 침묵은 바람이 되어 왔다.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내 손녀라며 자랑하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냉장고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반찬통 하나를 꺼냈다. 봄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곰팡이가 곳곳에 피어 있다. 너무 오래 방치해서 다 쉬어버렸다. 이파리 하나를 들어 입에 넣는다. 시큼한 맛에 혀가 마비되는 느낌이다. 이파리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잘근잘근 씹으며 최대한 오래 음미한다. 몇 번의 헛구역질이 지나간다. 남아있던 봄동을 모조리 입안에 털어 넣는다. 다 먹지도 못했는데 기어코 울음이 터진다.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