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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by 이은

정적이 흐른다. 새하얀 가운에 검붉은 피가 지저분하게 튀었다. 피를 토한 아이는 그대로 쓰러진다. 아이를 끌어안은 여자가 가운을 움켜쥐며 살려달라 애원한다.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가면서도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객석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움켜쥔 부분이 마치 장미 같다. 어린 왕자가 버리고 간 그 장미.


이딴 거 하는 게 아니었어.

아니, 애초에 나한테 선택할 자격이나 있었나.


나는 보름달이 뜨는 날 자정이면 병을 치유할 수 있다. 자정에서 1분이 넘어가는 순간 그 능력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메시아라고 말한다. 이름까지 구원이라니 아주 안성맞춤이 아닌 가. 정작 당사자는 신이라는 작자에게서 아무 전달받은 게 없다.


부모님의 권유로 어린 나이 때부터 생중계를 하게 됐다. 물론 수익은 부모님이 받는 것으로 계약이 되었다. 그들은 하와이에 집을 여러 채 사들이더니 그곳에 아예 눌러앉았다. 나는 계약의 문제로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 나에게 위로랍시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TV로 너 안부도 알고 얼마나 좋니.


알고 있다. 그들은 TV 속에 나를 밀어 넣고 유기한 거다. 값비싼 베이비박스에 들어가 있던 나를 보살펴 줄 만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생중계는 형평성 문제로 추첨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다. 아까 그 여자는 추첨되어 대기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아깝게 시간이 지나 기회를 놓친 거다. 이번에 놓쳤다고 해서 다음에 편의를 봐줄 수는 없다. 규율이 그렇다니 나조차도 어쩔 수가 없지만 아이의 상태로 봐서는 봐준다 해도 다시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차로 향하는 동안 주차장은 사람들로 순식간에 난잡해졌다. 이제 그들을 무시하는 건 일도 아니다. 차량이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무리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분명 그 여자다. 아이는 어디 갔는지 혼자 서서 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재수 없게.”


운전하던 매니저는 백미러를 통해 내 안색을 살핀다.


“그 애, 결국 죽었다네.”

“나 때문이래?”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저기 있던 사람들은 원이 너 좋아해. 솔직히 네가 무슨 잘 못이 있니. 다 지들 운이 나쁜 탓이지.”


그는 유능한 매니저이지만, 이럴 때 보면 거짓말을 참 못 한다.


인간들은 어리석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왜 받아들이질 못 하는 걸까. 그렇게 살아서 선한 일이라도 하면 모른다. 내가 살린 이들 중에는 마약, 알코올 중독은 물론이고 살인까지 저지른 이도 있다. 그들이 낸 사고에 내 책임이 들어가 있다고들 한다.


잠재적 범죄자를 살린 구원자. 그게 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매니저가 다음날 일정과 잔소리들을 읊는 동안 잠시 소파에 기대 눈을 감는다. 여자의 눈이 떠오른다. 그 초점 없는 눈. 휘청이며 쓰러지던 작은 몸. 검붉은 피. 움켜쥐던 손. 절규 소리.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여자의 검은 눈은 나를 발가벗겨 놓았다. 맨 살을 더듬거렸다. 알 수 없는 기시감이 자라나 조여 온다.


급하게 일어나 테이블 위에 있던 약봉지를 집어 든다. 얼마 전 새로 처방받은 신경 안정제다. 생중계를 시작한 후로 불면증까지 시달리고 있다. 나는 왜 하필 이렇게 태어났을까. 나는 구원자일까. 아니면 괴물일까.

다시 눈을 뜨니 거실 한 편으로 새벽이 어스름이 내려앉아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집 안이 묘하게 불쾌하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가 안 보인다.


“하루야.”


고양이를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탁실 구석에 누워있었다. 자주 숨어있던 곳이다. 아이를 안아 드는데 몸이 축 늘어진다. 그제야 바닥에 피가 조금 튀어 있는 게 보인다. 사람들 눈을 피해 시골동네로 이사 온 건 큰 실수였다. 그 흔한 면허도 따두지 않았던 것도.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퇴근해서 자고 있을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의사 좀 불러줘. 빨리."

"알겠어."


그는 어떤 영문인 지 묻지 않았다. 나 또한 잠자코 기다렸다. 아니, 기다리려고 이 악물고 노력했다. 1분 1초가 아까웠다. 그새를 못 참고 아직 오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찰나였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왜 이제야 온 거냐며 다그치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눈앞에 수의사를 보고 그럴 수는 없었다. 한쪽으로 눌린 머리카락, 유행 다 지난 재킷 안으로 보이는 잠옷. 무엇보다 이 추운 날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그는 간단히 목례하고 빠르게 밀고 들어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시계를 보니 연락하고 10 분도채 지나지 않았다.


한참을 진찰하던 그는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나를 향해 돌아봤다.


"구원님이시죠. “

“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을 보는 순간 내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아뇨. 자, 잠시만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누워있는 아이를 본다. 가쁜 숨을 내쉬며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다. 작은 스티로폼 박스에 버려져 있던 아이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수의사의 맨 발이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물집이 잡히고 터져 성한 데가 없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콱 막혀있던 무언가가 울컥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서러움도, 죄책감도 아닌 수치심이었다. 발이 이 지경이 되면서도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 하나만으로 이곳에 온 거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생중계 때 기회를 놓친 그 아이. 그 아이를 치유해줘야 할 순간에 잠시 망설였다. 저 의사처럼 먼 곳에서 달려올 수고도, 각종 기구도 필요 없었다. 손만 얹으면 됐었다. 그게 뭐라고 망설였던 걸까. 화상 흉터가 뭐라고.


구원자니 괴물이니 하는 고민은 오만이었다. 나는 능력이 있어도 제때 쓰지 못하고, 저 작은 생명 하나도 살리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 나약한 인간이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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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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