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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하여

by 이은 Jan 05. 2025

미래는 말이 없는 아이였어요. 항상 생각에 잠겨있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냈죠. 

눈에 띄고 싶지 않아 했지만, 사람들은 미래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딱 보기에도 예뻐 보이긴 했어요. 미래를 보면 그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죠. 군중 속의 외로움. 


간혹 미래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가 있었어요.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어요. 잔뜩 신이 나거나, 실망하거나, 미래가 하는 모든 말을 믿지 않는 이도 있었죠. 그 사람들 중에는 절망에 빠진 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들은 감정이 격해져 미래를 험담하며 손가락질을 해댔죠. 두고 보라는 식의 협박은 기본 옵션이에요. 신기한 건, 그럼에도 미래는 차분했어요. 


미래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산 같았어요. 툭하면 쓰러질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는 뿌리 깊은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 있는 높은 산이요. 하지만 산은 막상 가까이 가면 힘들죠.

네. 저도 미래와 대화를 나눠보려 시도해 봤어요. 열심히 노력했어요. 생각보다 마음의 문이 멀어 그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어요. 겨우 입구를 찾았다 싶으면 길이 험준하고 이정표도 없어 헤매기 일쑤였죠. 비유로 말하면 좀 어렵게 느껴지실까요? 한마디로, 밖에서 만났다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부류였어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죠. 미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그때의 저는 그릇이 작았나 봐요. 


미래를 오랫동안 지켜보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미래는 때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뭐, 또 산을 빌려오자면 계절에 따라 다른 옷을 입는 것처럼요. 미래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된 거죠. 왠지 친근감도 느껴지고, 위로가 되기도 했어요. 인정해요. 저 간사한 인간인 거. 그런데 미래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지낸다면 그게 더 무섭지 않나요? 변할 수 없는 존재라면. 우리는 이미 정해진 미래를 보며 실의에 빠져 지내야 했겠죠. 

미래에게 관심이 갔던 건, 예측할 수 없어서였어요. 알다가도 모르겠고, 가끔 밝게 웃어주면 다 알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좋았어요. 미래는 사랑받을 줄 아는 아이였어요. 


적어도 우리에게는요. 그렇지 않나요, 박사님? 


박사님도 미래를 참 많이 아끼셨잖아요. 박사님이 저에게 과제를 주신 덕분에 밤잠을 설쳐가며 돌봤어요. 박사님이 알려주신 것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의 부주의로 미래가 떠났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마음이 불편해요. 미래가 얼마나 어여쁘고 아름다운 아이였는지 아는 사람은 박사님뿐인데. 박사님마저 옆에 없으니 이렇게라도 미래를 기억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미래를 돌보고 지켜보는 일뿐이었잖아요. 


미래는 우리의 손을 떠났어요. 어딘가에 미래의 영혼이 떠다니고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웃기네요. 저나 박사님이나 보이지 않는 존재는 믿지 않았잖아요. 

근데요, 더 웃긴 건 이제는 믿고 싶어 졌어요. 미래가 이렇게 영영 사라진다 생각하면 마음이 한구석이 공허해요. 가끔 잠을 자다가도 새벽에 일어나서 멍하니 있을 때가 있어요. 

분명 눈앞에 있던 미래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미래에게는 영혼마저 사치일까요?


처음 세상 밖에 나온 그 아이를 박사님과 함께 탯줄을 잘랐던 게 기억나요. 수많은 아이들이 빛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 와중에 겨우 살려낸 아이였잖아요. 사람들은 인공 배아 성공이라는 기사 한 줄 따위로 미래의 존재 가치를 떨어뜨렸어요. 

우린 알잖아요. 미래가 얼마나 소중한 아이인지. 미래는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아이였어요. 


우리의 손가락을 잡았던 그 작은 손, 빤히 쳐다보던 똘망똘망한 눈, 뒤집기를 시도하려 발버둥 치는 모습도, 처음 두 발로 서 있던 그날도, 박사님과 제가 부를 때면 통통거리고 뛰어오던 모습도. 이렇게나 생생해요. 


그들은 논문으로 밖에 미래를 보지 못했어요. 유리 벽 너머로 잠시 지켜본 게 전부였고,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잠깐 대화해본 게 다였다고요. 그들에게는 미래가 투자 상품이고, 실험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전부였잖아요. 우리가 낳은 아이였잖아요. 


미래는 모든 걸 알고 있었어요. 제가 넣는 주사가 평소에 넣던 영양제가 아니라는 것, 그 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것도요.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똑똑한 아이니까요. 

미래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저 이제 밖에 나갈 수 있는 거죠?” 


그날 처음으로 친어머니가 저를 떠나며 했던 거짓말을 미래에게 했어요. 


“그래. 나가서 실컷 뛰어놀 수 있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제가 그 논문을 올리지 않았다면, 미래는 살 수 있었을까요? 미래에게 검출된 바이러스라는 게, 우리에게 이미 흔한 거라고 더 강력히 반대했어야 했을까요? 미래가 없는 우리는,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어요. 미래는 어딘가에서 뛰어놀고 있을 거라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올 거라고요.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속죄하며 살아가야겠죠.  저는 박사님처럼 미래를 위해 죽을 용기조차 없네요. 많이 보고 싶어요. 박사님도, 미래도.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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