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ewha May 17. 2020

환기

서점, 오후 네시, 넘치도록 충분한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왔다.
환기를 위해 잠시 문을 열어 둔 사이 서점 안으로 쑥 들어와 맞은편 벽에 어깨를 탁 부딪치고 다시 반대로 날아가 쇼윈도에 ‘퍽’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사방에 투명한 곳은 모두 전력 질주해 머리를 박았다. 작은 몸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연거푸 네댓 번 내고 나서야 비틀비틀 창가 의자 밑에 자리를 잡고 섰다. 앉거나 누운 것이 아니라 꼿꼿하게 발끝에 힘을 주고 섰다. 그렇게 쉽게 날아 들어왔는데 도대체 출구는 어디인가. 사방이 활짝 열려있고 밝았는데 나갈 수가 없다. 투명한 창을 사이에 두고 건너갈 수 없는 숲 속 저 편을 망연자실 바라보며 영원처럼 아득하고 아찔한 생과 사의 기로에 제 키보다 몇 곱절은 큰 그림자를 드리워내며 한참을 그렇게 머물렀다.

“새야, 출구는 이쪽이야.”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열려있는 문 안팎으로 발을 반쯤 걸치고 조심스레 허리를 숙여 의자 밑을 들여다봤다. 여전히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뒷모습이다.

‘부딪칠 때 충격으로 귀가 안 들리나, 큰 부상인가?’

“새야! 내 말 들리니?”

정지된 화면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갤러리에 전시된 현대 미술 오브제 같았다. 리모컨의 정지 재생 버튼을 순간적으로 눌렀다 뗀 것처럼 스타카토로 간간이 움직이는 머리 덕분에 살아있구나 안도했다.

“새야 괜찮니?”

새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크고 육중한 몸을 납작 숙여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엉금엉금 기었다. 새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는데 순식간에 휘 두두두 어깨너머로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자신이 향하는 방향이 어딘지 판단한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출구를 찾아 숲으로 훌쩍 날아 사라졌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했을까. 때맞춰 안으로 열린 문이 많이 원망스러웠을까.

당황한 작은 새.
가여운 작은 새.

새는 손바닥보다 작은 몸으로 짧은 순간 폭풍우처럼 유리창 안의 세상을 광광 뒤흔들고 홀연하게 사라졌다. 새가 떠난 자리는 진공의 유리관처럼 먹먹했다. 느린 속도로 부유하는 먼지 사이를 뚫고 새가 있던 창가 자리에 서서 잠시 눈을 감고 햇빛 샤워를 했다.


오후 네시, 내게도 책들에게도 넘치도록 충분한 환기가 되어버린 시간, 혹시라도 놀라는 작은 동물이 있을까 진공의 속도로 천천히 문을 닫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