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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비구니 사찰에서 절밥 먹는 한국인

15. 창산 아래 작은 사찰, 지자오안에서 절밥 먹는 법-다리 창산(1)

by 리우화

안녕하세요, 오랜 닉네임이었던 한제인에서 리우화(流花)로 바꿨습니다:) 어디 광저우의 동네 이름인데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내 중국 이름 해야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리 여행 마지막날 아침. 제 몸 만한 배낭을 짊어진 뉴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세계 여행 중인 스물넷의 이탈리아인 릴리다.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잠깐 아침먹고 돌아오니 방 안이 시끌벅적하다.


출처 : 챗GPT

"I just want to know if this accommodation provides towels. Do you understand what I'm saying?(나는 이 숙소에서 수건을 제공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내 말 이해했어?" "我只会说中文。 你到底在说什么?(난 중국어 밖에 못해. 도대체 뭐라는 거야?)" "Oh my God. Towels, towels!(맙소사. 수건. 수건!)"


지금 둘이 뭐 하는 시추에이션? 위씨와 릴리의 창과 방패 같은 대화가 한창이었다. 어째서 누구도 번역기를 쓰지 않고 각자의 언어만 고집하고 있는가.


슬쩍 껴서 릴리의 질문에 답을 하자 그녀는 "드디어!"를 외치며 한숨을 쉬었다. 릴리는 길에서 마주치는 주민들도 모두 영어를 못한다며 답답해했다. 사실 언어로 인한 불편은 비단 릴리만 느끼는 건 아니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서양인들이 현지인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은 숱하게 봐왔다. 상하이같은 대도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언어의 기본은 영어가 아니던가.


그 답은 마라톤 같은 대화(?)를 마치고 물을 들이켜던 위씨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우린 수많은 소수민족이 있고, 그들의 언어는 모두 보통화와 다르지. 우리 언어를 먼저 깨우쳐야 남의 언어를 배울 수 있지 않겠어?"


그녀의 말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방언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배운 적 있었나. 한국어 맞춤법도 곧잘 틀리면서 남의 나라에 영어는 왜 못하냐고 핀잔하는 꼴이라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떠들썩한 아침을 보내고 다리의 마지막 여행지인 창산(苍山)으로 향했다. 다만 본격적인 등산에 앞서 할 일이 있다. 한국인은 밥심이 아니던가! 지역 맛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중국 절밥부터 먹어보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다.


창산 아래에는 ‘지자오안(寂照庵)’이란 작은 비구니절이 있다. 이곳은 하루에 두 번(점심 11:30-13:00, 저녁 17:30-18:30) 일반인에게 절밥을 판매한다. 사찰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만든 채식 요리인데 꽤 맛있다고 정평이 나있다.


얼하이 호수 아래 쪽에 있으며 감통사와 붙어 있다. 식사 후 감통사 케이블카를 타고 창산을 등산하면 된다.


전날 만난 택시 기사 롱산은 대기줄이 매우 기므로 식사 배급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라며 단단히 일러뒀었다. 다만 아침 소동으로 뒤늦게 숙소를 나선 나. 절밥이 이미 다 매진됐을까 걱정만 잔뜩 안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지자오안 가는 법 : 지자오안 택시 정류장에서 하차. 감통사 케이블카 티켓 판매소를 지나 노점상들이 위치해 있는 거리를 지나면 먼저 감통사가 나온다. 감통사에 난 작은 길을 따라 15~20분 정도 위로 올라가면 지자오안을 만날 수 있다. 길이 헷갈리면 중국 지도앱 ‘고덕지도(高德地图)’를 보면 정확하다.


감통사는 굉장히 작은 사찰로 크게 볼 건 없다.
붉은 꽃이 가는 길목마다 화사하게 펴 있던 지자오안


불교문화가 자리해 있는 중국은 매 여행지마다 사찰이 필수 관광지로 껴 있다. 다만 대게 크고 화려하며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기 때문에 영 감흥이 없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 방문한 지자오안은 오랜만에 편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선물해 줬다. 지자오안까지 가는 길은 조금 가파르지만 꽃도 보고 노점상도 구경하다 보면 금세 다다른다.



아뿔싸, 우여곡절 끝에 식사 배급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건만! 이미 절 안은 절밥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혹시 식권이 동났을까 안내소 역할(?)을 하고 계시던 스님께 물어보니 다행히 오늘은 사람이 적어 기회가 있단다. 스님은 외국인이 여길 어떻게 알고 왔냐며 토끼눈을 지었다.


*안내소 스님 tip : 점심에 방문할 경우 오후 12시까지는 대기줄이 매우 기나 이후로는 눈에 띄게 사람이 줄어드므로 기다렸다가 절밥 받길 추천. 평균 대기 시간은 30~1시간이다.


따로 예약 없이 현장에서 식권을 받으면 된다. 어른은 20위안, 아이는 10위안.


리장으로 가는 밤 열차를 타야 했던 나는 시간이 촉박해 무작정 대기줄에 섰다. 대기하는 이들은 거의 모두 중국인이다. 이게 바로 현지인들만 알고 가는 왕홍디엔(网红店, 인터넷에서 유명한 곳을 이르는 말) 아니겠는가.



30여 분 끝에 식권을 내고 흰 그릇을 받았다. 급식처럼 여러 재료를 배급받아 비빔밥처럼 비벼 먹는 식이다. 재료는 애호박과 두부, 강낭콩, 양배추, 튀긴 마늘 슬라이스다. 마지막에는 고추장처럼 빨간 소스를 뿌려 주는데 은근 매콤하지만 먹을 만하다.



역시 절밥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맛있구나. 담백하면서도 빨간 소스 덕분에 감칠맛도 살렸다. 채식으로만 이뤄져 속에 부담도 없다. 그간 여행하면서 기름지거나 짠 요리로 위를 혹사시켰던 터라 간만에 행복한 점심을 마쳤다. 양도 꽤 많이 준다. 그래도 음식 남기면 죄악이지. 마지막 밥톨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지자오안은 창산에 오르는 케이블카 중 감통사 케이블카와 가장 가깝다. 사찰에서 올라온 길을 그대로 내려가 감통사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등산을 시작하면 된다. 다만 창산 케이블카는 오후 5시에 모두 운행 중지되기 때문에 전 구간 등산이 목표면 지자오안 식사는 시간이 애매할 수 있다. 식사를 일찍 마치거나 등산을 마치고 저녁 절밥을 먹는 일정을 짜 보는 것도 괜찮겠다.


밥을 다 먹은 자들을 위한 미탕(米汤). 우리나라처럼 밥을 다 먹고 물 부워 먹는 것과 똑같다. 아무런 맛은 나지 않는다.
다시 봐도 예쁘고 아담한 사찰, 지자오안. 언젠가 다리에 오면 꼭 다시 절밥을 먹으러 가고 싶다.

문득 나의 지난 해외여행 경험들이 떠올랐다. 지금껏 현지 식당은 늘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추천하는 곳으로 갔었다. 그 방법이 가장 실패 없이 식당을 고를 수 있는 지름길이었기 때문. 그러나 막상 식당 문을 열면 이곳저곳 한국인 테이블이 가득해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다만 윈난성은 웹 상에 여행 정보가 적어 현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추천 식당이나 유명 먹거리를 물어봤다. 그 덕에 이번 지자오안은 물론이고 중국 여행을 마칠 때까지 소위 ‘현지인 맛집‘이라 불리는 식당들을 여럿 방문할 수 있었다.


요즘은 번역기도 잘 되어 있지 않은가. 여행 준비할 때 맛집 찾는 수고도 덜 들여도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디든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꼭 그들에게 용기 내어 물어보자. "여기 맛집이 어디예요?"라고. 밥 찾는 외국인에게 냉담할 현지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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