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오, 위천, 우지 — 세 청년이 들려준 결혼·취업의 이야기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리장 호도협에서 만난 21살 ‘지하오’,
윈난 샹그릴라의 한 식당에서 마주친 27살 ‘위천’,
그리고 고속열차 옆자리에서 친구가 된 26살 ‘우지’.
결혼, 취업, 문화, 정치…
한국 MZ가 만난 중국 MZ.
우리가 익히 떠올리는 ‘중국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던,
그들의 현실과 목소리를 담아봅니다.
1편은 결혼과 취업,
2편은 정치와 빈곤에 관해 다룹니다.
1. 취업? 우리도 '쉼 청년' 천지야!
21살 지하오는 나와 호도협 등산을 시작으로 쓰촨, 광저우까지 동행한 '여행 메이트'다. 그는 이른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마카오에서 1년째 디자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어린 나이에 왜 자국이 아닌 타국을 선택했냐고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많은 중국 청년들이 이미 중국을 떠나 마카오, 싱가포르 등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어. 지금 중국에서 좋은 회사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야."
"너흰 나라도 크니까 회사도 그만큼 많을 거 아니야?"
"코로나19 이후 많은 회사가 도산했어. 그 때문에 좋은 월급을 보장해 주는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살아 남고 중소기업들만 넘치고 있지.
내 친구들만 봐도 업무 강도가 매우 높고 5.5일 근무는 기본이야. 야근 수당 안 주는 곳은 태반이고. 중국은 열심히 일한 만큼 돈 벌 수 있는 구조야. 다만 산업 자체가 하향세고 망하는 회사들이 워낙 많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어."
중국 정부는 1990년 후반부터 대학 정원을 늘리고 고등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등 교육 정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이로 인해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 진학률이 크게 늘었고 현재 대학 진학률은 50~60%를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고소득·고기회가 집중된 도시로 몰리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생활비는 높아 생존 자체가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젊은 층 사이에선 ‘백링(躺平, 드러눕기)’이나 ‘네이쥔(内卷, 과잉 경쟁)’ 담론을 통해 현실 회피 또는 체념의 정서를 공유 중입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발전 속도는 굉장히 빠르잖아. 텐센트는 글로벌 게임·플랫폼 산업을 주도하고 있고, SMIC 역시 중국 반도체 핵심으로 성장 중이지."
"맞아. 중국은 현재 반도체와 전자기기(핸드폰 등), AI, 플랫폼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 정부도 하웨이나 텐센트 등 IT회사가 몰려 있는 선전(深圳)에 집중 투자하고 있고.
하지만 이런 첨단 산업은 고급 인력이 꼭 필요한 분야야. 문제는, 고학위 인재는 많아지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 원하는 인재와는 맞지 않는다는 거야."
중국 정부는 2010년대부터 “디지털 대국에서 디지털 강국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 주도의 대규모 IT 산업 육성을 본격화했습니다. 또 디지털 인재 양성 집중하며 'AI 고급 인재 양성 10년 계획'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청년 고용은 구조적 불균형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중국 내 대학 졸업자는 최대를 기록했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10%를 넘는 수준입니다. 교육 시스템과 산업 현장의 괴리, 빅테크 감원, 경기 둔화 등으로 인해 중국판 '쉼 청년'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지하오는 함께 빙수를 먹던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눈빛에는 묘한 씁쓸함이 맴돌았다. 그의 나이 스물 하나.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 나이에 취업 걱정을 짊어지고 있었다.
문득 한국 청년들이 떠올랐다. 입학과 동시에 토익, 자격증, 인턴을 준비하던 대학생 친구들. 우리 청춘들의 풍경은, 국경 너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화야, 생각해 봐. 한 해 대학 졸업자 수만 어마어마한데 노동 시장은 엉망이야. 그냥 취업 안하고 시골 가서 쉬는 게 시간 절약 아니겠어?"
[중국취업 참고 뉴스]
1. AI·로봇 빛 볼 때 디플레 짙어졌다…두 얼굴의 中경제 | 한국경제
2.[글로벌 청년실업] 일자리 갈증에 애타는 중국 청년들…침묵 속의 위기 - 이투데이
2. 결혼? 연애? 우리도 안 해
"한국은 남녀 갈등 심하지?"
윈난성 샹그릴라의 어느 작은 전통 식당. 우지와 밥 먹다 체할 뻔했다. 한국에서 젠더 기사를 다수 작성했던 내겐 친숙한 주제지만, 외국인 입에서 먼저 나왔단 점이 충격이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니 우지가 "역시"하며 흥미로운 웃음을 짓는다.
"중국 뉴스에서도 너네 젠더 갈등 진짜 심하다는 보도가 자주 나와. 너네 4B(연애, 성관계, 결혼, 출생을 거부하는 여성주의 운동)도 한때 우리 온라인상에서도 유명했어.
샤오홍슈(小红书, 중국판 인스타그램)에서도 자기네 나라 이성이 싫다며 자신과 결혼해 줄 중국 남녀를 찾는 한국인 게시글이 이따금 이슈가 되곤 해."
우지가 최근 실제 이슈가 된 게시글을 보여주며 말했다. 자신의 얼굴과 신체 스펙, 경력들이 줄줄이 나열된 구혼글에 얼굴이 벌게졌다.
"너네 나라는 어때?"
"우리도 너네만큼 젠더 갈등이 심해. 남자들은 중국 여자들의 콧대가 높다고 생각해. 성형이나 PS(사진 보정술)가 유행 돌면서 외적인 미의 기준은 물론 사회진출이 늘면서 직장에서의 여성 지위도 올라갔어. 그렇다 보니 남자를 보는 기준도 점점 높아졌지. 우리도 타국에서 애인을 찾는 사람들 흔치 않게 있어.
남자 입장에서 말하면 좀 억울해. 우린 연애할 때도 대게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모두 내는 편이거든. 여자들을 잘 대해야 한다고 교육받기도 하고. 성평등에 관해선 남자들은 평등하거나 오히려 여자 쪽이 더 입지가 높다고 생각해."
중국은 법적으론 법적으로는 성평등을 보장하고 있으나, 고용·가사·정치 참여 등 사회 전반에선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역할 고정이 여전합니다.
2023년 기준 중국 여성의 취업 비율은 60%로 50%대인 미국과 영국보다 높지만 중간 관리자 직급 비율은 20%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정 내에선 출산과 양육 등 전통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혀 있습니다. (2025년 4월, 로이터 기사 참고)
"결혼율은 괜찮은 것 같던데. 아직은 중국 여자 평균 결혼 나이가 20대 중후반이잖아."
"그렇진 않아. 결혼율은 물론 출생률도 점점 떨어지고 있어. 물론 인구가 워낙 많아 지장은 없지만."
"너는 결혼할 거야?"
"지금 내 월급으론 결혼 꿈도 못 꿔! 아직도 혼수를 남자가 해와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그리고 결혼해 봤자 국가 지원금도 턱 없이 적어."
중국의 2023년 기준 결혼 건수는 약 683만 건으로 2013년 1347만 건에서 10년 새 절반 이하로 급감했습니다. 집값 폭등, 대도시의 생활비 상승 등의 여파와 결혼이 '자아실현'을 제한한다는 인식 확산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 정부도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으나 주택·보육·노동시장 등 근본적 해결책은 부재한 상황입니다.
내가 놀랐던 건 두 가지. 첫째, 우리 사회의 갈등이 국경을 넘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 둘째, 결혼과 출산 문제가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것. 저출산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수없이 물었지만, 결국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화 속에 담긴 무력감과 체념, 그리고 간절함은 분명 같은 결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는 선언 속에서 우린 어쩌면. 각자의 청춘을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결혼 참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