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중국 소도시에서 삶의 본질을 찾다-샹그릴라(1)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번 중국 윈난 샹그릴라입니다.
중국 윈난성을 여행해본 분들 가운데, 샹그릴라를 가장 인상 깊은 여행지로 꼽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히 멋진 풍경 때문은 아니랍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 지, 글을 읽으며 함께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요번 시즌 태계일주 샹그릴라편 나오기 전 사전 공부 차 추천드려요!ㅎㅎ)
1.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샹그릴라
새벽 다 된 시간에 중국 윈난성 샹그릴라에 도착했다.
이전 여행지였던 리장보다 쌀쌀한 날씨에 외투를 꺼내 입었다.
손을 호호 불며 숙소 문을 열자 티베트족 사장이 웃으며 맞아줬다.
“你辛苦了,欢迎你“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환영해요!
*샹그릴라는 중국 윈난 티베트족 자치구에 위치한 지역이다. 티베트족을 포함해 여러 소수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해발 3000m 이상의 고원지대라 4월 봄에도 패딩을 껴입을 만큼 기온이 낮다.
고단한 몸을 정신없이 누이고 잠에 들었다가,
아침 일찍 어디선가 들려오는 동네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안녕-!” 한국말로 인사하니 팝핑캔디 터지듯 “꺄하하” 하고 도망간다.
숙소 천장에 매단 오색 빛의 타르쵸(불경이나 만트라가 적혀 있는 오색 천 깃발)며.
용을 발목에 꿰고 있는 여성 보살 그림이며.
눈에 닿는 모든 곳에 티베트 문화가 강하게 배여있다.
샹그릴라, 여긴 뭐든 게 시나브로다.
아침을 먹으려 거리를 떠돌았지만 문 연 식당은 찾기 힘들었다.
중국에서 흔히 보이던 아침 노점상도 없다.
주인 잃은 개들만 컹컹 짖지도 않고 꼬리를 살랑이며 지나간다.
구시가지를 두어바퀴 돌았을까.
나처럼 길을 헤메는 듯 두어차례 마주쳤던
한 젊은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기…아침 식사 할 곳 찾아요? 저도 못 찾고 있거든요.”
그렇게 아침밥 찾기 여정(?)에 동참한 중국인 '위천'.
전력공사 직원인 그는 비지니스차 샹그릴라에 왔단다.
우린 구시가지 끄트머리에 위치한 식당을 간신히 찾아내
김이 모락모락나는 야크 고기 국수, 칭크어삥
그리고 야크 요구르트 한 잔을 주문했다.
"샹그릴라는 독특하네요.
이전에 윈난성의 쿤밍과 다리, 리장도 다녀왔는데
여기만 시간의 초침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요."
청크어삥을 손으로 잡아 뜯으며 말하자 위천이 웃으며 답했다.
"샹그릴라는 바람이 부는 대로, 꽃이 피는 대로.
천천히 걷는 삶을 좋아해요.
어제 처음 이 곳에 왔다고 했죠?
오늘 하루만 이 곳에 머물다보면 내 말을 이해할거예요."
2. 열일곱 소녀처럼 뛰어다니다닌 나파해
진분홍 머리장식을 둘러 싼 소수민족 할머니들과
화려한 티베트 불교 장식이 어울러진 소담한 건물들,
그리고 바람결이 깃발을 스칠 때마다
축복이 세상에 퍼진다는 타르쵸들.
지상 낙원을 뜻하는 도시명처럼
마치 새하얀 꿈 속에 스며든 듯했다.
귓가에 낯선 언어가 스칠 때야
비로소 이 곳이 중국이란 걸 실감하곤 했다.
샹그릴라의 대표 관광지는
해발 3000미터 고원의 ‘나파해(纳帕海)’다.
호수지만 바다처럼 넓어 해(海)가 붙었다.
나파해는 습지와 초원이 계절마다 얼굴을 바꾼다.
4월 봄에 방문하면 야크와 말들이
푸르른 초원을 뛰어 노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손을 벗어난 동물들의 발굽 소리엔 맑은 자유가 서려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열일곱 소녀처럼
나파해를 어지러이 뛰어다녔다.
고원지대의 부드러운 한기가 두 볼을 어루만졌고
발끝을 스치는 풀잎마다 반짝이는 이슬이 튀었다.
서울 살이 5년차,
이렇게 넓은 자연을 철없이 나뒹굴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눈부신 야경도 휘황찬란한 건축 양식도 필요없었다.
높은 하늘과 낮은 초원,
그 사이의 시간은 가장 느리고 다정하게 흘러갔다.
3. 광장춤을 추며 소수민족의 삶 속으로
저녁 식사 시간을 맞아 구시가지에서 위천을 다시 만났다.
그는 자기 삶에 외국인은 처음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인근 윈난 전통 식당에서 자국 청춘들의 고민을 나눌 무렵,
샹그릴라 구시가지 중심인 시방제(十邦街) 광장에서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식당 창문으로 내다 보니,
수 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남은 야크 고기를 입에 쑤셔넣고는 시방제로 뛰어나갔다.
이곳 주민들은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시방제 광장에 하나 둘 모여든다.
그리고 밤 9시까지 광장 한복판에 둥글게 서서
티베트족 전통춤을 함께 춘다.
세대도 다양하다.
하얗게 센 머리로 유연한 춤사위를 뽐내는 어르신부터
티베트 전통 옷을 입고 장단을 맞추는 청년들까지.
“너도 해 봐, 내가 영상 찍어줄게!”
위천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둥근 원 안으로 들어섰다.
흥의 민족 한국인으로서 어깨가 안 들썩일 수 있나!
처음엔 어색했지만 앞 사람 리듬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춤은 단순했다. 반복되는 동작, 발 맞춰 둥글게 돌아가는 사람들.
누구도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내게 이방인이냐 묻지도 않는다.
그저 함께 하나의 원을 만들어나갈 뿐이었다.
”我现在好幸福啊!”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영상을 찍는 위천을 향해 나도 모르게 와락- 외쳐버렸다.
양 볼을 스치는 시원한 저녁 바람, 몸을 타고 흐르는 전통 음악.
눈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향해 활짝 지어 보이는 응원의 웃음.
그 순간, 머리 속에 서울이 떠올랐다.
서로를 향한 혐오와 손가락질로 가득한 광장.
매일 아침마다 스케줄에 쫒기고
효율이란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사는 사람들.
이 소도시의 사람들은
하루를 축제처럼, 춤을 추며 마무리한다.
어떠한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나파해에선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달리고, 숨 쉬고, 살아간다.
이들의 삶엔 ‘속도’가 없다.
오직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향’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광장이 이토록 부러운 이유는.
우린 언제부터 ‘춤추는 삶’을 잃어버렸나.
우리 역시 언젠가,
어떠한 이념도 갈등도 없는 광장에서
모두가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함께 춤을 출 수 있을까.
마냥 허상일지라도,
샹그릴라에서 춤을 춘 나는
감히 그 ‘이상’을 꿈꿔보리라.
4. 좐진통을 돌리며, 작은 소원을 빌다
밤이 깊어질 무렵,
위천과 함께 하루의 마무리로 샹그릴라 구이산공원에 향했다.
이 곳엔 세 바퀴를 돌리면 행운이 찾아든다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이 깃든, 좐진통(转经筒)이 있다.
오직 사람의 손으로만 돌려지는 거대한 소원 바퀴다.
“나 올해 꼭 취업되게 해주세요!”
“우리 아들 장가 가게 해주세요”
“매일 행복하게 해주세요!”…
중국인들이 좐진통을 돌리며 속삭이는 수많은 기도들 위에,
나도 조심스레 작은 바람 하나를 얹었다.
불안정한 미래 속에서 냉소만 남았던
서울의 나를 잠시 내려 놓고,
이 낯선 땅에서도-
이방인의 소원이, 멀리 멀리 닿을 수 있길 바라며.
리우화의 여행지도
[백계사(白鸡寺, Bai ji si)]
샹그릴라 티베트 불교 사원. 대형 사찰보단 규모가 작지만 현지인들에겐 매우 소중한 기도 공간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 스님이 절을 지을 자리를 찾던 중 하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자리를 발견하고, 이를 신성하게 여겨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오색빛깔의 타르초가 푸른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며, 길고양이처럼 돌아다니는 흑돼지와 닭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오전에 방문하면 티베트 주민들의 아침 의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좐진통(转经筒, Juan jin tong)]
좐진통은 티베트 불교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기도 도구입니다. 통 형태의 원통 안에는 《옴 마니 반메 훔(嗡嘛呢叭咪吽)》 등의 불경이 새겨져 있습니다. 작은 손돌림용부터 사람이 직접 손으로 밀어 돌리는 대형 통까지 크기가 다양하며, 지역 주민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이 기도통을 돌리며 수행합니다.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원칙.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외운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다고 믿습니다. 샹그릴라에 있는 좐진통은 약 21미터(7층 높이)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도통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타번호스텔(Tarven Hostel)]
관광지는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머무르는 샹그릴라 유스호스텔입니다. 블로그에 올린 뒤 네이버 추천 게시글에 뜰 정도로 인기를 얻은 곳인데요. 한국인 사장님과 티베트족 아내분께서 함께 운영 중입니다. 사장님께서 영어와 중국어 모두 유창하십니다. 숙소 1층에는 소수민족 전통 방식으로 커피를 데워 마실 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마련돼 있습니다. 방인 6인실, 5인실, 2-3인실 등으로 마련돼 있으며 6인실 기준 1박 7000원입니다. 숙소 관련 자세한 정보는 블로그에 걸어놨으니 참고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