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이부시게 Aug 31. 2024

돈이 아까워서 읽었던 책

깨달음

10여 년 전쯤, 서점에 갔다가

'내겐 너무 ****'이란 제목이 맘에 들어서 산 책이지만 정말 읽기 싫었다.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위한 지고지순. 지극정성의 표현은 너무 단순해서

재미와 감동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또한 아내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써 내려간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단편도 아닌 1권의 장편!

줄거리를 생각하면 엄청 감동적 이어야 하는데...


가령, 이런 느낌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오늘은 소풍 가는 날이다.

점심으로 엄마가 싸준 김밥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

보물 찾기를 했다.

참 재미있었다.


글쓰기를 정말 싫어하는 초등학생이 숙제 검사를 받기 위해 억지로 쓴 일기

(요즘은 사생활침해로 없어졌지만) 같은 느낌.

그러나 '논픽션'이라는 점과 '돈'의 아까움이 인내심으로 책장을 넘기게 했다.




부부 페인트공이 교회 지붕을 도색하다 사고가 났는데, 부인이 사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낙상으로 식물인간이 되고 말았다. 남편은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남편에게 아내의 병실은 병실이 아니고 곧 집이다.

아내는 식물인간이지만 남편은 '병상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 아내'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 일 없는 부부처럼 일상의 대화를 한다. 듣던 못 듣던, 반응 없는 아내에게. 아침이면 일을 나가기 전, 젖은 수건으로 얼굴과 손 발을 깨끗이 닦아주고 머리를 곱게 빗겨주고 볼에 입을 맞추며 "사랑해" 라며 병실을 나선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하루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며 미동도 없는 얼굴을 보듬고 손을 어루만지며 사랑타령을 한다.

꼭 엄마가 유치원 다니는 사랑스러운 딸 대하듯이...

이런 반복되는 일상이 1년이 넘었을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고요히 흐르는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손가락의 움직임이 있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결말이다.

클라이맥스라고는 첫 장에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충격적인 사고와 마지막장에 아내의 흐르는 눈물과 미세한 손가락의 움직임. 

차라리 다큐로 방영이 되었더라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단순한 문장과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의 글이 날 지루하게 했지만, 분명한 건 남편의 지고지순. 지극정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만약, 내가 식물인간이 됐다면 내 남편도 과연 이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재미도 감동도 느끼지 못 한 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은 책은 나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건 “이 남편 대단하네!”라는 일곱 글자.




그리고 한 일주일 뒤,

재미도 감동도 없이 지루했다고 불평불만만 했던 그 책이

내 머리를 세차게 한 대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깨달음은 내 삶의 새로운 한그루 모토를 심어 주었다.


난 왜 미쳐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내가 언제 말을 못 하게 될지.

내가 언제 소리를 못 듣게 될지.

내가 언제 세상을 못 보게 될지.

내가 언제 음식을 못 먹게 될지.

내가 언제 냄새를 못 맡게 될지.

내 몸이 언제 어떻게 될지.

상대의 몸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난 미욱하게도 내가, 내 가족이, 내 주변 사람들이, 지금처럼 늘 곁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좀 더 현실적으로는 노병으로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 것이다.


아름답고 예쁜 것도 보고, 미운 것도 보고.

아름다운 소리도 듣고, 듣기 싫은 소리도 듣고.

꽃향기나 침샘 자극하는 음색 냄새도 맡고,

코를 틀어막아야 할 만큼의 고약한 냄새도 맡고.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고.

두 팔 벌려 꼬옥 안아 주고.

망설이며 맘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해야겠구나!


내 오감이, 그의 오감이 살아있을 때...


직장관계로 독립해 있는 딸과 아들.

난, 주말이면 본가라고 찾아오는 그들을 두 팔 벌려 꼬옥 안아 맞이 하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때도 어김없이 꼬옥 안아 주며 '사랑해'라고 속삭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