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과는 다른 일들
지효는 수업 전에 미리와 앉아있다. 단발머리를 곱게 빗어 귀뒤로 넘기고 무표정한 얼굴로 책을 펴서 밑줄을 긋는다. 진중하게 필기를 하고 수업시간에는 집중한다. 교재의 여백에는 그날 배운 개념들이 정리되어 있다. 이런 성실함으로 지효는 레벨업을 했고 최상위반에서 학습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지효의 얼굴이 굳어있다. 표정이 없는 편이지만 결이 다른 어둠이 보인다. 눈은 내려 깔려있고 입이 굳어있다. 수업이 끝나면 입은 더 꾹 다물어지고 교재를 정리하는 모습이 거칠어 보인다.
다음 수업시간에도 지효의 입은 닫혀있다. 불만이 있는 모습이다. 강사는 신경이 쓰인다. 혹시 수업이 쉬운가? 자체 체크를 한다. 최상위반은 수업료가 높아서 수업의 질은 늘 최우선 과제이다.
지효의 얼굴이 나아지지 않는다. 강사는 조바심이 난다.
이것도 쉬운가? 강사는 끈질기게 어려운 지문을 찾아 수업한다. 분기마다 진행되는 강평이 이제 곧 시작인데 평가도 평가지만 최상위반 학생들이 수업에 만족을 못할까 봐 걱정을 한다.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는 지효를 두고 볼 수 없어 강사는 상담일정을 잡는다. 지효와 마주 앉는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지효 요즘 공부 잘 돼 가?"
"......."
"요즘 수업시간에 지효 보면 뭔가 표정이 어둡던데? 수업이 너무 쉬운 거야?
"......."
"선생님한테 말해봐 그래야 샘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지효가 울음을 터뜨린다. 중학생이지만 키가 큰 편이라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지효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까만 속눈썹을 적시며 지효가 입을 연다.
" .. 어려워요.하나도 못알아듣겠어요"
아....... 강사는 그동안의 지효의 표정을 되살려본다.
"다 아는 내용을 왜 반복하지?"
강사는 지효의 표정을 이렇게 해석했는데
"이해가 안가.. 다시 설명 해달라고 할까?다른 애들은 다 아는거 아니야? 나만 모르는거면 어떻하지..." 지효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거다. 강사는 맥이 풀린다.
"다음에는 언제든지 말해줘. 수업시간이 부담스러우면 직접와서 물어봐도 돼. 샘이 몇번이라도 설명해줄꺼야 " 지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강사는 전에 TV에서 본 유명 연예인의 일화를 떠올린다. 토크쇼에 출연해서 토크를 나누는데 방청석에 한 청년이 자신을 빤히 보더라는 것이다. 녹화 내내 팔짱을 끼고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는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인가 보다.. 어쩔 수 없지.. 마음을 내려놓고 녹화를 마쳤고 무대를 내려오려는데 그 청년이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싸인 좀 해주세요. 팬입니다." 순간 놀랐다고 한다. 녹화 내내 박수를 치며 웃어주던 방청객들은 나갔는데 그 청년만 남아 싸인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싫어해서 노려보는 줄 알았는데 자신의 팬이었다니.. 애꿎은 오해를 품고 지레짐작한 자신을 반성했다는 에피소드였다.
모두가 퇴근한 교무실에 강사는 의자 깊숙히 앉아있다.
복사기가 위잉위잉 소리를 내며 프린트를 토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