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방에서

by RECO

언제부턴가 숨을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 후 우하고 짧게 내뱉는 것이다. 최소한으로 살아가자라고 다짐해 보지만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키며 사는일이 숨을 거칠게 한다. 태어나자마자 할 것은 정해졌다.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닌 정해진대로 학습해나 가는것이다. 공부 학교 취업 결혼 출산 내집마련 경조사 인간관계 그리고 이것이 또 자식에게도 적용되어 자식의 공부 학교 취업 결혼 출산 집사주기로 연결된다. 심지어 각 단계마다 레벨도 있다. 어떤 학교? 취업은 어디? 결혼할 사람은 누구? 직업은? 결혼식장은? 집은 어디 지역? 보이지 않는 눈금이 그어져 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외로워 보인다. 아등바등 그 눈금에 닿기 위해 그들도 짧은 숨을 뱉어낼까.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오징어게임 속에서 탈출구는 판타지 카툰이다. 판타지에는 관심이 없는 나는 친구에게 "현실감이 없는데도 재밌어?"라고 물으면 그녀는 "현실감이 없으니 재밌지" 라며 천진스럽게 웃는다. 나는 친구를 바라본다.


빨래방을 검색하려 휴대폰을 여니 어제 본 조깅화가 눈앞에 있다. '너의 터치'를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졸졸 쫓아다니며 눈앞에 아른단다. 거대공룡기업들의 테일러주의가 불법 추심만큼 끈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구글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젠 마음까지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니 혼자있으면서도 두리번댄다. 도구를 만든 자의 도구를 쓰고 있는 노예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까지 다 뺏긴 나는 또 후 우하고 짧은 숨을 내뱉는다.


빨래방에 가기 위해 내려온 지하 주차장엔 카메라를 가진 차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시동건지 5분도 안되어 신호등에 걸리고 또 1분도 안되어 속도 30을 제한하는 카메라를 만난다. 주차금지 표지를 보고 나는 또 고개를 떨군다. 산타할아버지처럼 이불을 메고 빨래방에 도착한다. 우두커니 기계 앞에 한참 서있다가 일부러 32킬로 세탁기의 power 코스를 선택했다. 문을 닫고 바로 앞 의자에 앉아 세차게 돌아가는 이불을 바라본다. 부피보다 큰 세탁기 안에서 거품으로 범벅된채 여유롭고 돌고있는 이불이 신나 보인다. 조깅 후 쉰 냄새를 풍기는 몸뚱이를 씻어내듯 상쾌한 기분까지 든다.이불도 짧은 숨을 뱉어냈을까. 인간이란 때론 말도 안 되는 감성놀이로 하루를 버텨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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