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을 나르는 새

삶은 어디서부터 기록되고 있었을까.

by RECO

사람은 내면 속에 새를 키우며 살아야 한다. 창공을 나르는 크고 아름다운 새.

새는 사유하고 질문을 던지고 거울앞에 서게한다.

그 순간은 좌표가 되고 점들은 새의 경로가 된다.


11평의 서민아파트에는 방이 두 개이다. 한방을 쓰는 언니와 나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나는 공부를 해야 하니 불을 켜고 언니는 불을 안 끄면 잠을 못잔다는 거다. 엄마는 돈을 버는 언니가 잠을 자야 하니 불을 끄라고 하신다. 언니는 보조개가 생기도록 입을 삐쭉거리더니 "불 꺼"라고 말하며 이불을 뒤집어쓴다. "꼴 보기싫....."


나는 욕실로 향한다. 변기뚜껑은 책상이 되고 목욕탕 의자는 걸상이 된다. 새벽녘에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욕실밖에 서 계신다.


맵도록 추운겨울에 합격소식을 들은 엄마는 방을 데굴데굴 구르셨다. 기쁨의 세리머니 치고는 독특해 보였는데 난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엄마 그만 굴러. 어지럽겠다" "웨메 워메" 엄마는 전화기부터 든다. 엄마가 꽤 싫어하지만 늘 통화를 하시는 외숙모에게 전화하기 위해서다. 엄마는 외숙모와 통화할 때면 액젓을 마신 사람처럼 인상을 쓰시는데 목소리는 여간 다정하여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했었다."성님 저녁 드셨어요?" 늘 자식자랑을 달고 사시는 외숙모가 삼성에 다니는 첫째 자식 얘기를 하실 때면 엄마는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올 것처럼 씩씩대면서도 "와따잉 오지구만" 하시면서 여간 듣기가 고까운지 전화기를 귀에서 떼 아예 등뒤로 가져가셨다. 마치 김연자 선생님이 고음을 치실 때 입에서 마이크를 떼는 제스처와 비슷했는데 그래도 외숙모의 목소리는 들렸다. 기어이 엄마의 반격의 순간이다. " 우리 막내가 대학에 합격을 해버려 가지고.. 성님은 무신 축하요~~ 아이고 뭐가 대단허요.. 말이사 바른말이지 목욕탕의자 깔고 화장실에서 공부해 갖고 저렇게 대학에 딱 붙어 분께 나가 참말로 감격을 해버렸소.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똑순이 같은지. 지 엄마 힘든지 알고 독서실 한번 끊어달라고도 안 하고잉~" 눈을 지그시 감고 오늘이 장날이구나 열변을 토하시는 엄마의 붉은 볼은 당신이 좋아하는 6월의 복숭아 같다. 엄마는 전화기선을 베베꼬며 그 후로도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셨다.

아버지는 벽에 걸어 두었던 북방색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가셨는데 후일 엄마에게 들으니 삼삼오오 모여 화투 치시는 동네사랑방에 누런봉투가 젖도록 튀겨진 통닭과 막걸리를 그냥샀다며 던지셨단다.


돌아보면 눈물겨운 장면이다. 힘든 일하시는 두 분께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온 행복의 순간이라니.. 그 행복유발자가 나라는 것이 그저 복되고 영광될 뿐이다. 그때의 엄마와 아빠는 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두해 만에 학교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자 아빠는 콩나물국을 드시다 말고 돌하루방처럼 굳어버리셨다. 밥상이 엎어질까 봐 괜스레 상의 모서리를 닦는 엄마의 튼 손. 속살을 보이며 반듯하게 누워있는 고등어. 그리고 내가 보름달빵보다 더 좋아하는 갓담은 김장김치가 슬로우에 걸린듯 찬찬히 기록되었다.


나는 좌표를 찍었다.

훗날에 닥칠 거친 파도가 무엇이든 항해를 하다가 직각으로 꼬꾸러진다해도 신대륙을 찾고야 말겠다는 15세기 사람들처럼.


예상밖으로 아버지는 그 길을 허락해 주셨다. 내 동공 속에 횃불을 보셨을 수도 있고 내 안의 새가 알을깨는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 엄마는 상이 엎어지지 않은 것과 내입에 고등어 속살이 들어가는 것이 신나는사람이므로 고등어를 일으켜 가시를 바르고 그제서야 김장김치를 손으로 죽죽 찢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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