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그리고 헤어짐

그리운 아이들을 생각하며

by 정은영

후덥지근한 날씨가 몇 주째 이어지고 있다. 아침부터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는 열기가 뜨거운 햇살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양산 밑으로 후비고 들어온다. 위, 아래로 뜨거운 열기를 당최 어찌 막는단 말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인근 지역아동센터..

4주간의 실습교육이 끝나간다. 평택모지역아동센터에 4주간의 교육훈련을 받으며, 처음엔 아동분야는 나와 너무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실버분야 실습기관 섭외를 시도해 봤지만 집 근처에 있는 실습 가능한 기관이 이곳 지역아동센터 밖에 없어서 신청했지만 4주간의 훈련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사회복지사의 길을 너무 쉽게 본 내 탓이 큰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로 버텼던 여기 지역아동센터...

초등저학년에서 고학년 아이들 29명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데, 이곳 아이들은 유난히 실습교사들을 잘 따르며,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 "하며 내 품에 꼭 안긴다. 센터의 특성상 저소득층 아이들이 이용하는데, 조손가정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물론 일반가정도 있지만 다문화 가정, 위기가정 등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다. 초1 A여아의 엄마는 한국인, 아빠는 팔레스타인으로 알고 있는데, 아이랑 놀이학습을 진행하면서 아이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가족 관계를 이야기한다.

작은 얼굴에 동그란 눈망울은 사슴처럼 내게 찡끗하며, 밝게 웃는 아이..

짙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이 움직일 때마다 인형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이 아이와 함께 놀이학습을 진행하면서 현재 아버지의 부재가 느껴지게 하는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졌다. 메모리게임, 할리갈리게임 등 한 번도 내 아이와 놀아보지 못했던 게임들을 이 아이와 함께하면서 왠지 모를 짠한 감정이 내 속을 훑고 지나갔다. 할리갈리 게임을 할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선생님을 이겨보겠다고, 벨을 빨리 치려다 내 손등과 부딪혀 오른손 중지가 살짝 뒤로 꺾인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큰 눈망울에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고여 있었다. 나는 당황하였고. 괜찮은지 상태를 재차 물어봤다. 곧 진정이 됐는지 아이는 울음소리를 내질 않았으나, 약간의 통증이 남아 있음에도 계속 게임을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울다가 웃는 아이... 휴....

아무리 본인이 괜찮다고는 하나 나는 센터장님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이의 엄마한테 연락하여 설명을 부탁드렸다. 승부욕이 강한 아이.. ^^ 그날은 져줘야 했다.


오늘이 이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날이다. 4주간의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게 될 줄 몰랐다.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초6학년 남자아이들 중 신체적으로 성장발달이 빨라 변성기가 오는 아이, 키가 165가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는데, 왠지 아이 같지 않아 징그럽다고 여겨졌다. 6학년 남자아이 중 덜 징그러운 아이가 더 정이 갔던지, 실습교육이 오늘로써 종료되는 날이라 이 남자아이에게 "OO야? 지금처럼 밝고 멋있게 자라라. 잘 지내고.." 나의 마지막 인사에 덜 징그러운 이 아이가 순간 얼굴이 경직되어 "왜요? 다음 주에 안 나오세요? 왜요?" 아이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선생님이 오늘 교육이 끝나서..." 나의 말끝을 흐리면서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그냥 다니시면 안 돼요?" 하는 아이의 눈은 슬퍼 보였다. 아이는 벌떡 일어나 내 등 뒤로 서더니 이마를 내 등에 기대고, 양손으로 내 양 쪽 팔을 지그시 잡았다. 순간 울컥해서 눈물을 쏟을 뻔했다. 절대 아이들 앞에서는 울지 않을 것을 다짐했기에...

다음 주에 봐요 하면서 인사하는 아이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마음이 먹먹했다.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꼭 끌어안고, 잘 지내라며 인사를 하며, 나는 마지막 센터장과 면담을 하기 위해 면담실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시던 센터장님은 한숨을 내쉬면서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네. 벌써 시간이 빨리 지나갔어요." 하면서 센터장님이 쓰시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내가 찍어준 사진액자를 발견했다. 최근에 핫했던 AI 프로필 컨셉 사진을 프린트해서 놓아둔 것이었다. 센터장님과 복지사님.. 관계자분들을 사진 찍어서 드렸더니 배꼽 잡고, 웃고, 떠들었던 추억이 담긴 그 사진을 보노라니.. 그간의 추억들이 떠올라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센터장님은 그런 나를 보시고 의자 밑으로 얼굴을 숨기셨다. 금테 안경 너머 휴지로 눈물을 훔치시고, 나에게도 휴지를 건네셨다.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했던 이 일에 나는 무게감과 책임감을 실감하게 되었다.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고 아이들이 건넨 새끼손가락을 걸고 덜컥 약속했던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너무 쉽게 약속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꼭 다시 보자는 약속을 받아낸 아이들은 안심하고는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신나게 뛰어갔다. 부족한 나에게 다가와준 아이들이 고마웠고, 미안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마지막 빛을 발하며 꺼져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의 하루도 저물어갔다.

작은 약속은 누군가에겐 희망이
그 희망은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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