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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May 18. 2023

#17. 빨간 고양이 켄넬 안에, 꾸깃꾸깃 강아지

떠돌아다니는 강아지를 직접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전!

유기견 보호소나 임시 보호 중인 강아지를 입양하는 경우는 종종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근데, 직접 잡아온 사람을 찾기란 어려웠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등의 안내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예컨대, '길을 걷다 심정지인 사람을 만나면, 두 손가락으로 경동맥 맥박을 촉지하고 호흡을 확인한 다음 주변에 있는 특정 인물을 시켜 신고를 부탁한 후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와 같은 인정받은 프로세스 같은 게 어딘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요? 그런 건 없었다.  (심지어 방금 챗 지티피는 알까 해서 물어봤는데,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란다. 쩝)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우리는 정말 무턱대고 시작했다는 거다. 만약 조금 더 사려 깊었거나, 생각을 앞세웠다면 행동하지 못했을 거다. 대~강 이렇게 하기로 했다.

1. 시저로 유혹해서 잡는다 2. 고양이가 다니던 동물병원에 가서 미용&치료를 받는다 3. 데리고 집에 온다.


거뜬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 봐도, 그때 난 뭔가에 단단히 홀려있었다.

"그 개를 데리고 와야겠어!"라는 그 일념 하나에 사로잡혀서.


그래도 나름 준비를 했다. 우선, 고양이와 분리하여야 했기에 베란다 문틀에 안전문을 설치했다. 만약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온다면, 당분간 있을 곳은 베란다였다. 안타까웠지만 몸에 어떤 움직이는 것들(!)을 달고 올지 몰랐고, 어린 나이에 머릿니를 경험해 본 나로는,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 베란다. 원래는 화분이 한 20개쯤은 있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침대 밑에 보관해 놓았던 또치의(고양이) 켄넬을 챙겼다. 미리 강아지 켄넬을 사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그곳에 강아지를 잡으러 갔을 때, 개가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 장비를 풀세트로 준비해도, 주인공이 없으면 죄다 당근행일 게 뻔했다.


우리는 첫 배를 타고서 섬으로 향했다.  사실 가면서도 확신이 없었다. 개가 그곳에 있을 거란 확신.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주말이었고 작업자분들도 안 계실 테니 자유로운 그 개가 세상모르고 섬을 뛰어다니고 있다면, 우리는 해뜨기 전부터 카페 하나 없고 할 것도 없는 섬에서 데이트를 한 게 돼버렸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빠, 개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작은 섬도 아닌데 우리가 찾는다고 찾아질까? 있었으면 좋겠는데..."

"없으면 우리 인연이 아니었던 거지. 걔는 그럴 팔자가 아니었던 거야."

이런 내용의 얘기를 가는 내내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공사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강아지는 공사 현장에서 홀로 있었다. 차의 엔진 소리와 울퉁불퉁한 길을 다니는 소리를 듣더니, 멀리서 멍멍 짖으면서 우리를 지켜봤다. 그래도 애인과는 구면이어서 그랬을까, 우리가 강아지를 유혹하는 소리(예컨대 이런 소리들, 오 쪼쪼쪼쪼~! 우쭈쭈쭈쭈! 올로로로로!)를 내니 덥석 잘 다가왔다.

어어~ 그대들 오셨는가, 어떻게, 나를 잡으러 오셨다고?



그리고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시저. 10살 때부터 20년간 강아지를 키워온 나조차도, '저게 도대체 무슨 맛이길래 저렇게 환장을 하고 먹는 거야?" 싶던 강아지 간식 캔을 꺼내 켄넬 안으로 쓰윽 넣었다.  


그리고,

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게 잡혔다!


미간 가운데에 콕 박힌 건 진드기였는데, 이는 10일간 소리를 지르게 될 예고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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